"과학 알면 탈퇴 못해···이래서 우리는 과학을 배워야"

국내 기후변과 관련 과학자들, 트럼프 결정에 당혹 속 '안타까움'
선진국 위상에 반하는 '선택'···"증거기반 정책 위해 과학계 지속 목소리 내야"
윤병철·조은정·이원희 기자 bravodv@hellodd.com 입력 : 2017.06.02|수정 : 2017.06.07
"트럼프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이슈는 미국의 이슈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이슈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상당히 격렬한 논쟁을 넘어 큰 싸움이 예상된다."

"과학적 상식에 반하는 정치적인 행동이다. 미국이란 선진국 입장에서는 더더욱. 협약 탈퇴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지만, 실현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기후관련 연구소는 독자연구를 지속할 것이다."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 탈퇴에 대해 국내 기후변화 관련 과학기술자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정된 지구 기후를 위한 탄소 배출의 억제라는 것이 충분히 그럴만한 과학적 증명과 세계적 합의가 된 사항인데, 미국이 탈퇴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이어온 국가적 위상의 손실에다 그 실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기후변화 정책에 항의하고 나선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 전세계 네트워크는 지난 지구의 날 지구촌 각지 600여 곳에서 진행된 행진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과학행진을 주도한 김승환 포항공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증거 기반의 정책을 위해 과학기술계가 지속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앞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시 큰 틀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기까지 상당히 격렬한 논쟁을 넘어 큰 싸움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과학자는 이번 트럼프 결정을 '법 보다 주먹'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남극과 마우나로아에서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동이 매년 증가하는 것을 증명한 '킬링 곡선(Keeling Curve)'도 한 정치가의 선택에는 소용없는 팩트가 되고 말았다"며 이번 사례를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되지 못하는 한 단면이라고 봤다. 

그는 "트럼프 곁에 올바른 과학자가 없었는지 또는 알고도 무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인과관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탈퇴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은 법 보다 주먹처럼 과학을 무시해왔다. 이래서 우리는 과학을 배워야 한다"며 "더 이상 인간이 무지한 상태로 답보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 미국의 리더십에 금이 갔다

트럼프의 기후협약 탈퇴 결정은 미국의 기후변화를 비롯한 과학기술 리더십에 타격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 관측이 적지 않다. 

기후변화 정책전문가 전은진 녹색기술센터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에너지정책 변화에 따른 세계적인 동향도 심상치 않다고 평가했다.

전 선임연구원은 이번 이슈를 두고 그동안 세계를 이끌어 온 미국의 리더십이 유럽과 중국으로 넘어가는 신호탄으로도 해석하고 있다고 세계 동향을 설명했다.  

지난 5월 23일 미국의 예산안이 발표됐는데 그 안에서 미래에너지를 연구하는 기관들에 대한 예산이 전액 또는 절반 삭감됐다는 것은 트럼프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정의했다.

대체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미 공화당은 응용연구는 줄여도 기초연구는 지원해 왔는데, 이번 예산안은 이마저도 깍은 것으로 미국 내 연구자들은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의 협약탈퇴 선언 직후 '프랑스는 미국 인재를 유치한다'며 'MAKE OUR GREAT AGAIN'이라는 트럼프 패러디 캠페인까지 내걸었다. 

◆ 트럼프 입장과 달리 실현 어려울 것
 
트럼프 정부의 이번 선언이 우려할 만큼의 파장을 일으키진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래에너지를 연구하는 이재구 FEP(미래에너지플랜트)융합연구단장은 트럼프의 결정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의 계산으로는 이산화탄소의 증가보다 당장의 이익을 주는 자원 활용을 선택한 것인데, 기후협약은 충분한 배경과 논의를 거친 세계적 합의로, '미국'답지 않은 근시안적인 결정이라고 진단했다. 막상 협약 탈퇴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지만, 상당한 저항에 부딪혀 쉽지 않을 것으로도 전망했다.

이 단장은 "탄소 에너지의 문제는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이를 저감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안전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방식과 활용을 연구하는 것"이라며 "물론 기존 화력 에너지와 신재생 에너지는 모두 장점과 약점을 안고 있지만, 이를 서로 보완하며 극복해 나가면서 결과적으론 지구 기후변화 억제 목적에 다가가는 것이 세계적인 큰 흐름"이라고 정리했다.

김진석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대기환경표준센터 박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협약 탈퇴 선언과 별개로 미국이 온실가스 저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줄이지는 못할 것"이라며 "미국 내에는 엘 고어 前 부통령처럼 기후변화에 대해 건전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트럼프가 하필 그 '일부'일 뿐, 이전과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측정 주관기관인 세계기상기구(WMO)가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미국 연구기관은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미국 스크립스해양연구소(SIO) 등이다.

김 박사는 "온실가스 측정의 실질적 연구기관 모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과 같은 예산 수준을 유지했고, LA와 뉴욕 등 대형 도시에서도 온실가스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며 "NOAA 등 연구기관들은 '우린 우리 갈 길을 가련다' 식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트럼프 정부가 이번과 같은 결정을 한 배경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지속될 경우 미국 내 대기업들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날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아니겠냐는 게 김 박사의 관측이다.

김 박사는 파리기후협약 역시 국가 간의 약속이므로 트럼프 정부의 탈퇴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 온실가스저감 대비 시간을 벌었다

전기원 한국화학연구원 탄소자원화연구소장은 이번 이슈가 우리나라에겐 호기일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전 소장은 "탈퇴 선언은 했지만, 실제로 탈퇴까진 4~5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트럼프가 기후협약의 큰 흐름은 바꿀 수 없지만, 속도는 늦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중의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워싱턴·뉴욕주가 '기후 동맹'을 맺는 등 미국 내부적으로 탈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며 실제 탈퇴로 이어지지 못하거나, 차기 정부에서 철회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했다.

전 소장은 "트럼프가 영향력을 미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 역시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 대해 더 효율적인 준비를 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의 150여개 도시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변화협약 탈퇴 등을 비판하는 '진실을 위한 행진' 시위가 열렸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애플의 팀 쿡을 비롯해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자들이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트럼프의 경제자문위원 일론 머스크도 자문위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 엑손모빌, 포드 CEO들도 자발적으로 파리협정을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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