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스티븐 이얼리, 역: 김명진, 출판: 그린비, 원제: Making Sense of Science

저: 스티븐 이얼리, 역: 김명진, 출판: 그린비, 원제: Making Sense of Science.<사진=YES24 제공>
저: 스티븐 이얼리, 역: 김명진, 출판: 그린비, 원제: Making Sense of Science.<사진=YES24 제공>
◆ 과학과 사회는 어떻게 만나고 얽혀 드는가

과학이 그저 객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 하나의 '상식'이다. 한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촛불집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만한 폭발력은 아니더라도 항상 꾸준히 제기되어 온 핵과 환경 이슈, 메르스와 조류독감 같은 보건 이슈, 최근 부쩍 잦아진 지진이라든가 자동차 급발진 사고를 둘러싼 논쟁 등은 과학의 객관성조차도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실감케 해주었다.

다만 그러한 '상식'이 지나치게 일면화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에게 여전히 과학은 '진리'(혹은 '팩트')의 동의어이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라는 라벨은 일상에서도 광고 언어에서도 '종결자'처럼 기능한다.

이처럼 '실상은 객관적인 과학'이 정치나 이해관계 따위에 발이 묶여 그 빛나는 객관성을 잃고 왜곡된다는 과학에 대한 상(像)이 그 상식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을 부인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식 구성의 상호적 맥락 및 과학과 사회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평면화할 위험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스티븐 이얼리(Steven Yearley)의 『과학학이란 무엇인가』(Making Sense of Science)는 그러한 평면을 다시금 입체화하여 과학에 대한 인식 자체를 정교하게 쇄신할 단초를 제공한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 '과학학'(science studies)이라는 학문은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등 '과학 그 자체'를 연구하는 여러 세부 학문을 포괄한다. 저자는 사회의 온갖 부문을 타깃으로 삼는 사회학이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기술에 응당 돌아가야 할 만큼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며, 과학을 사회학의 주요 주제로 적극 도입하고자 한다.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과학과 사회가 서로를 어떻게 추동하는지 살핌으로써 과학학의 기본 개념과 쟁점을 독자들에게 개괄해 준다. 다양한 사례연구들, 그것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들, 거기 참여했던 논자들, 그들의 '학파'가 공유하는 개념들과 접근법들이 꼼꼼하게 서술되어 있는 이 책은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학적 맥락을 살피고자 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출중하고 탁월한 길잡이 역할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과학 속에서 사회학을 읽어 내다

'천연 비타민이 인공 비타민보다 몸에 좋다'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묻는 영국에서의 설문 문항에 70%가 참이라고 답했다는(즉 오답을 말했다는)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대중의 과학 지식이 얼마나 얕은지를 생생하게 폭로하는 예일까?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자가 원자보다 작다'라는 항목에는 (정답자는 31%로 비슷하지만) 모르겠다고 답한 이가 45%라는 점과 비교해 보면, 사회학적으로 다른, 혹은 더 중요한 시사점을 읽어 낼 수도 있다.

오답자들이 "천연 비타민이 뭔가 다른 점이 있으며 건강에 더 좋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믿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것. 즉 "비타민에 대해 무지했다기보다는 과학적 관점과 의견을 달리했거나 그것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였다"라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하고 유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226쪽).

과학 전문가들 또한 조건과 상황의 제약 속에서 각자의 신념 체계를 수립하고 정교화하는데 이를테면 '곰팡이는 공기 중을 떠다니던 포자가 달라붙어 자란 것인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인가'를 두고 다툰 19세기의 파스퇴르-푸셰 간 논쟁은 무균 상태를 가공할 수 없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양쪽의 실험 모두 정확한 결과로 이어질 수 없었고 재연되어 검증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승리자는 파스퇴르였는데,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파스퇴르의 입장을 지지했고 푸셰가 논쟁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때로 과학적 논쟁이 해소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다툼이나 의견 대립을 중단하기로 결정했(거나 그렇게 강요받았)기 때문이지, 자연이 승리한 쪽을 뒷받침하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공표를 했기 때문은 아니다."(75~77쪽).

이처럼 과학에서, 과학적 진리에서, 그것을 둘러싼 지식 구성의 과정 속에서 읽어 낼 수 있는 사회적·사회학적 해석은 다양하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더욱 세밀화하고, 설득력 있게 하고, 유용하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이 책은 '과학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라는 과학철학의 고전적 논제에서 출발해 과학학의 출발점을 이룬 문제의식과 주요 학파들(이해관계 접근, 행위자 연결망 이론, 페미니스트 접근, 민족지방법론 연구 등)을 소개한 후 그것이 과학과 사회가 만나는 여러 지점에서 생겨난 난제들에 어떤 통찰을 던져 주는지를 살펴본다.

학파들을 개관한 2부의 꼼꼼한 정리도 탁월할뿐더러 법정에서의 증거 능력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회의 '위험' 요소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과학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룬 3부는 이 책을 실천적 응용까지 나아가게끔 한다는 점에서 특히 유용하고 빛난다.

"오늘날의 사회를 다루면서 과학적 아이디어나 과학기술의 작동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사회학은 별다른 가치를 가질 수 없게 됐다"(5~6쪽)라는 저자의 표현은 현상을 서술한 것이라기보다는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사회학은 과학을 '암흑물질'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사회학에 과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과학의 성찰적 이용' 같은 일면적 요약과 당위적 호소를 뛰어넘어 과학이라는 독특한 학문 분야가 어떻게 사회와 만나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과학학이란 무엇인가』는 독자들이 과학적 인식의 사회학적 지평을, 또한 역으로 사회학적 인식의 과학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글: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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