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서 다시 만난 인연
글 ·그림 ·사진 : 강선희 anger15@nate.com

'놀았다. 게으름 때문에··· 놀았다.'

 학생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정했던 목표를 이룰만한 실천력은 있는데 절박함을 느끼지 않아 그냥 놀았다고, 그 신랄한 팩트를 군더더기 없이 전했다. 저래도 되는 걸까 싶은 와중에, 그 강당에 모여 있던 학부모, 선생님, 학생들로 이루어진 군중들은 그의 위트 있는 PPT와 그 위의 고명 같은 말투에 여러 번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그래도 너무 장난스러웠던 건 아닐까, 곱씹던 중 이어진 한 선생님의 피드백이 나의 머리를 뱅하고 후려쳤다. '나는 무언가가 되어야지'하는 생각에 무조건 바삐 살아가는 것보다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발표가 참 재미있었다고 포근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헐, 나 벌써 꼰대가 되어가고 있나?

얼마 전 읽은, 어느 책의 저자는 회사를 퇴사한 40대였는데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고 주장했다. 왜 사회는 모두에게 부단히 열심히 살라고만 강요하느냐며! 그래서 좀 놀고 싶어 큰 결심을 하고 퇴사를 했는데, 놀지 못한 지난 십 수 년의 시간에 익숙해져 잘 노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구나 체감했다고 한다. 웃픈 일이었다. 노는 게 어렵다니···.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잘 노는 것도 재주다. 특기를 잘 살려, 어쩌면 먼 훗날 저 학생이 제 2의 유재석이나 전현무 같은 끼 넘치는 입담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선희, 네가 대안학교에 다녔다면 우등생이었을 텐데."
"쌤, 저 학교 다시 다닐까요?"
 
쌤은 금산의 간디(중등)학교에서 일하신다. 그래서 이 날, 간디(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의 기말발표를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기말발표란, 학생 스스로 한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고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일종의 학기말과제이다.)

쌤과 나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고등학교 담임으로 부임해 오셨던 그 때, 나는 쌤 반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놀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피 끓는 열여덟, 나는 유난히도 교무실 출입이 잦았다. 늦잠에, 떡볶이 먹으러 가느라, 월드컵 보러 가느라 아침저녁으로 자습을 땡땡이치는 통에, 우린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원수지간으로 전락해 버렸고, 2년 후 졸업을 하면서 영원한 남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2012년, 내가 책을 발간하면서 우연히 연락이 닿은 것이다.

술하다 호프 앞에서 발견한 포근한 풍경이었다.
술하다 호프 앞에서 발견한 포근한 풍경이었다.
뜨뜨미적지근한 안부만 두어 차례 물어오다가 올 해, 14년 만에 쌤을 만나게 되었다. 햇수로 7년째 금산에 있었다는 쌤은 이미 금산 바닥을 주름잡는 샐럽이었다. 

그리고 간디학교를 졸업한 쌤의 제자들은, 농촌 활성화를 위한 활발한 청년사업을 꾸려나가고 있기도 했다. (이런 걸 보고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쓰는 건가!) 

그 대표적인 것이 금산전통시장 내에 위치해 있는 조사장 커피, 안녕하식빵, 술하다 그리고 내가 머물렀던 연하다 여관이다. 식빵집은 아쉽게도 이른 ‘Sold Out’으로 맛을 보지 못했고, 쌤과 나는 조사장 커피에서 가성비 갑의 커피를 마시며 바느질을 했다. 바느질이라니···?!!

14년 전의 원수가 뜻밖에 똑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니 소오름이지 아니한가.

"쌤, 인생 참 몰라요, 그죠? 이러다 설마 우리 절친되는 거 아니에요? 하하."
"그러게, 앞으로도 자주 좀 놀러와. 금산."

열여덟의 내가 몰랐던 교무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제야 전해 들으며 한참을 웃었다.
그 뒤로 금산에 두어 번 더 갔다. 원수와의 재회, 그 처음 한 번이 어려웠을 뿐.

문득 그 날, 기말발표에서 진행을 맡았던 학생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절기 중 가장 뜨거운 날인 소서는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며, 우리도 이 날을 기준으로 더 뜨겁고 열정적인 날들을 보내 보자고 했었다. 가을의 한복판에 서서 유난히 뜨거웠던 지난 여름이 어땠는가 한 번 돌아보는 밤이다. 나는 자알 놀았나? 

연하다여관의 Room '밤'(위)과 손님을 위한 배려(아래).
연하다여관의 Room '밤'(위)과 손님을 위한 배려(아래).
+ 덧

연하다여관의 두 사장 쌀과 솔은 연하다여관에 머문다는 것은 그들의 취향에 머문다는 것과 같다고 소개한다. 작년, 둘이 같이 시작해서 올해 솔은 술하다를 오픈했다. 
매월 넷째 주 금요일에는 금산전통시장에서 월장이 열리는데, 간디학교 학생들이 종종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고 한다. 

연하다 여관(yeonhada.imweb.me)
금산 청년복합문화공간이자 게스트하우스
주소 : 충남 금산군 금산읍 건삼전 3길 5-11층
낮방(도미토리) - 4인실 – 2만5000원
밤방(개인실) - 더블룸 – 5만원
               
조사장 커피
충남 금산군 금산읍 금산천길 98
open 오전 10시 / close 오후 8시 / 일요일 휴무
아메리카노 2500원

술하다
조사장 커피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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