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열린 KAIST의전원 토론회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인 잘못된 신념들
상황 왜곡하면서 문제 해결 가능성 막아
향후 논의, 올바른 질문에 더 할애해야

지명훈 기자(편집국장). [사진=대덕넷DB]
지명훈 기자(편집국장). [사진=대덕넷DB]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방침으로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의 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출사표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1일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바이오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글로벌 의사과학자·의사공학자 양성 토론회’가 열렸다. 
  
발표자와 청중 간 질의응답 시간. 의료전문 매체 기자와 포항시 공무원이 던진 질문들에는 과기의전원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 종합하면 이런 거였다. 

 ‘한국 사람들은 경제적 성취를 가장 중시한다. 진료의사(임상의)는 의사과학자 보다 돈을 훨씬 많이 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서도 높은 수준의 수입이다. 따라서 과기원이 양성한 의사과학자의 상당수는 진료의사로 진로를 바꿀 거니 대책이 필요….'

 KAIST 의과학대학원 김하일 학과장이 자신의 표현대로 다소 공격적인 답변을 내놨다. "지금 말씀하신대로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인 성공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한다면 아마도 이 자리에는 100% 실패한 분들만 앉아 계신 거다."
 
순간 좌중에 폭소가 일었다. 토론회장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의사과학자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의사과학자 양성협력 프로그램 ‘HST(Health Sciences and Technology)’ 책임자인 볼프람 고슬링 하버드대 교수, 췌장 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의사과학자인 김성국 스탠퍼드대 교수,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KAIST의 의과학대학원 교수 ···.
  
김성국 교수는 "저는 제 일을 가장 사랑한다"고 김 학과장의 답변에 화답했다. 

고슬링 교수는 "저도 김 교수님처럼 제 일을 사랑한다"며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과학으로 평가 받고 싶어한다. 의사과학자들은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 인간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산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람들이 유사한 성향과 가치를 가진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다른 결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됐다. 기대는 크게 엇나가지 않았다.

김 학과장은 "진료 보다 연구가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동일한 유형의 인재들을 선발해 교육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며 "실제로 KAIST 의과학대학원 졸업생(180여명) 가운데 진료의사로 진로를 바꾼 건 10%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그는 "의사과학자 지원자를 상대로 40분 정도 집중적인 인터뷰를 하면 이들이 결국 어느 길로 나아갈지 예측할 수 있다. 우리 대학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뿐이다"며 "우리는 의사과학자로 성공하려는 학생들을 선발해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해가면서 교육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스탠퍼드가 운영하는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 ‘MSTP(Medical Science Training Program)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지난 55년 동안 MSTP  졸업생 가운데 70%가 연구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며 "KAIST 같은 이공계 기반의 교육기관이 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우리는 의사과학자 프로그램을 거친 뒤 진료의사로 경로를 바꾸는 것을 큰 실패로 여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미국 등 외국에서는  이를 권장하지는 않더라도 반드시 실패라고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의외의 성공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대한다. 

지난달 31일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바이오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글로벌 의사과학자·의사공학자 양성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볼프람 고슬리 하버드대 교수,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 김성국 스탠퍼드대 교수. [사진=지명훈 기자(편집국장)]
지난달 31일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바이오 의료산업 발전을 위한 글로벌 의사과학자·의사공학자 양성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볼프람 고슬리 하버드대 교수,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 김성국 스탠퍼드대 교수. [사진=지명훈 기자(편집국장)]

김 교수는 "MSTP 졸업생의 일부는 스타트업을 만들었고 MIT와 협업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다른 경로를 선택한 사람들이 학교에 돌아와 학생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우리는 이걸 결코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과기의전원 도입에  정부는 긍정적이지만 의료계는 반대 입장이다. 부속병원을 가진 국내 10개 거점국립대 총장들은 지난 9월 모임을 갖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과기원의 성공 모델인 '선택과 집중' 전략의 퇴색이라는 반대 명분을 내세웠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들이 과기의전원을 진료 영역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국내외 상황은 공방에만 머물러 있을 만큼  한가롭지 않다. 지난 25년 동안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37%, 글로벌 10대 제약사 책임자의 70%가 의사과학자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연간 배출되는 의사 가운데 의사과학자는 1% 미만이다. 게다가 거의 수입에 의존하는 의료 진단·치료 기기 개발자인 의사공학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라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기회의 땅인 연간 2조 달러의 바이오 의료 헬스 시장이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다. 
 
고슬링 교수는 과기의전원 논란을 벌이는 우리 사회에 대해 "경제적인 성공이 중요하다거나 과거에 과기의전원이 실패했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다른 대안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미래의 그 어느 날, 지금 잃어버린 기회, 지금 선택하지 않은 기회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는 "한국이 전기·전자·자동차 분야에서 잘하고 있고 15년 전에 쓰지 않던 삼성 휴대폰이 널리 쓰이고 있다"며 "실패와 지탄이 두렵다고 새로운 프로그램 도입을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토론회장을 나오면서 “생존 방법을 한 시간 안에 찾아야 한다면 그 중 55분은 올바른 질문을 찾는데 할애 하겠다”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났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우리 사회가 과기의전원 문제를 다룰 때 반드시 던져야 할 의미있는 질문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성공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다른 생각을 가지면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학생이 교육한 대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실패한 교육으로 취급해야 하는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 잃어버린 기회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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