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광식 기초지원연 신임 원장…"국가장비 거점 역할 할 것"
세계적 장비 운영으로 글로벌 도약…"탈추격형 장비 생태계 구축" 강조

"국가적으로 매년 거의 1조원에 이르는 예산을 외산 연구장비 구입에 쓰이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방치돼 있는 고가의 연구장비들도 적지 않습니다. 국가적으로 연구장비 효율화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연구소가 먼저 연구장비 개발 국산화와 효율화에 깃대를 꽂고 국가 총괄 콘트롤타워 역할을 이끌겠습니다. 추격형 장비 활용 시대에서 벗어나 직접 장비를 개발하고 세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연구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이광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신임 원장의 포부다.

이 신임 원장은 연구소 창립멤버로 27년간 연구원 역사와 함께 성장해 온 순수 기초지원연 출신이다. 기초지원연 수장 자리는 이정순 전 원장이 내부 출신으로 기관장을 역임한 이래 약 11년 만에 내부 인사가 맡게된 것이다. 연구소 초창기부터 인연을 맺고 순수 기초지원연 인사가 원장 선임이 된 것은 이번 이광식 원장이 처음이다.

1990년 당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등학교 앞 낡은 건물 3층에 '기초과학지원센터'에서 설립됐고, 이광식 원장은 창립멤버로 합류했다. 당시만 해도 고가의 연구장비들을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4억~5억 원 수준의 연구장비들이 구축돼 있었던 서울 기초과학지원센터의 연구환경에 매력을 느껴 기초지원연과 이광식 원장의 첫 인연이 시작됐다.

이 원장은 '내가 할 수 있는 연구', '내가 해야만 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기초지원연에서 본격적인 연구인생을 시작했고, 환경 동위원소 분석장비를 활용해 방사능 식품 안전에 기여와 농산물 원산지 판별 연구 등에 주력해 왔다. 최근 4년간은 연구소 부원장직을 맡아 정광화 전임 원장과 호흡을 맞추며 연구소 경영에 매진했다.

이 원장은 "기초지원연의 저력을 자산으로 기관 발전과 성장을 위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며 "투명성, 신뢰, 팀워크, 소통, 존중, 배려, 협력을 중요한 경영가치로 여기고 구성원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갈 것"이라고 목표를 내걸었다.

◆ "장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연구"…국내 연구시설·장비 효율화 '첫 카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모든 연구장비의 가격이 10조 원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해마다 구입하는 장비는 8000억 수준에 이릅니다. 장비의 운영효율을 높이고 장비 개발까지 이어져 국력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이광식 원장은 임기 중 역점사업으로 '연구시설·장비 활용 극대화 및 연구장비산업 생태계 조성'를 꼽았다.

우리나라 산·학·연에 사용되는 범용 과학 연구장비들이 수없이 많고, 공유할 수 있는 같은 종류의 장비들도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연구문화는 빠른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바로 성과가 나올 수 있는 검증된 외산 연구장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연구장비 개발과 활용의 악순환 늪에 빠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원장은 "외산 연구장비에 대한 연구자들의 의존으로 연구장비 국산화가 많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이는 국가적 큰 문제"라며 "이제는 연구 문화와 정책적 개혁을 통해 장비를 직접 개발하고 고도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이 원장은 2009년도에 설립된 NFEC(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 조직 중심으로 고도화된 장비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국가적 장비 활용도·저활용·인력문제 등의 조사 계획을 세워갈 방침이다. 이 원장은 "과학자들이 연구 생산성·의욕 등에 피해를 주는 규제·평가 정책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나 과학계가 연구장비를 개발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이 이 원장의 평가다. 오히려 외산 장비 대비 같은 성능의 장비를 더 작게 만들거나, 같은 크기의 장비를 높은 성능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우수하다.

그는 "기초지원연이 중소기업과 끊임없는 협력으로 장비를 공동으로 개발·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업데이트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갈 것"이라며 "외제 장비를 사들여 모방형 연구가 아닌, 장비 개발하는 것 자체의 연구에 집중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를 위해 기초지원연은 '첨단연구장비 실용화지원사업'을 가동해 운영 중이다. 국내 장비의 활용·인력·방치 등의 문제를 해결하며 국가적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 원장은 연구장비의 글로벌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기초지원연에는 세계적으로 내놔도 손색이 없는 우수한 분석능력을 갖춘 연구장비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장비들을 더욱 세계에 알려 해외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활성화시키려는 야심찬 복안을 갖고 있다.

가령, 현재 우리나라에 딱 한 대뿐이고 세계적으로 20대도 채 되지 않는 SHRIMP(초고분해능 이차이온질량분석기) 장비는 해외로부터 분석 서비스 연구를 통해 1년에 1억 2000만 원까지 벌어들이고 있다. 이 장비를 활용해 해외 연구진과 기초지원연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펼치고 있으며 점차 해외 연구진의 수요가 증가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외국 저명한 학자들이 기초지원연 연구장비를 활용해 논문을 내고 연구성과를 창출한다면, 자연스럽게 기초지원연의 연구 글로벌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략을 이 원장은 구체화시킬 예정이다.

이 원장은 "장비 활용의 선순환 효과를 이어간다면 국제적 명성이 올라갈 것"이라며 "아직은 해외 장비 활용 체계가 부족하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고, 이는 기관장과 연구진이 함께 힘을 모아가야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원장은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연구중심 장비 개발 문화를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선진국에서는 연구 주제가 생기면 연구 장비를 직접 만들어 연구한다. 새로운 장비가 탄생하면 기술을 이전해 상품화로 이어지고 이는 곧 국부로 연결된다"며 "해외에서 기술이 필요하면 일부는 사올 수 있지만, 핵심적인 기술·장비들은 직접 만들어가는 문화를 다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결국 우리 과학계가 해외 장비·기술에 의존한다면 해외에 종속되어 따라가는 연구를 할 수밖에 없고, 한국 과학자들은 영원히 자부심을 갖게 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원장은 "과학자들은 외산 장비에 종속돼 연구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문제의식으로 여겨야 한다"며 "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는 노벨과학상은 커녕 과학기술 경쟁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초지원연의 개혁?"…"소통이 처음이자 끝이다"

이 원장이 조직 내·외부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이 원장이 조직 내·외부의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요셉 기자>
"부원장을 4년 임기하면서 소통이 가장 중요하고, '처음이자 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장은 의사 결정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부원장은 직원들과의 연결다리 역할을 하죠. 그동안 제가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할 준비가 됐었는지 자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한 조직이 변화와 개혁을 이루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 원장의 소신이다. 동의를 못 구할 상황이라면 설명을 통해 이해를 시켜야 하고, 이는 조직이 한 단계 도약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부원장 보직을 맡을 당시 이 원장은 자신의 내부 소통 상태를 점검하고 반성하며,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못했던 내부 구성원들과의 소통에 관심을 두고 움직였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진심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것.

연구부서를 돌아다니며 평가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일부 연구자를 만났고 그들의 의견과 소회를 듣고 꾸준히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결과 제도 개선의 문제가 아닌 공감대 형성의 부족 문제를 체감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동료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원장은 "조직원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며 "쌍방 소통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바꿔놓고 소통의 첫걸음을 만들어 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연구소 발전을 위해 내부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와의 실질적 네트워크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부원장 보직을 맡으면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출연연 경영자과정 수업 등을 이수하며 출연연 부원장들과 소통하면서 실질적인 연구소 경영에 자극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앞으로 다양한 협력관계를 맺어나가는 동시에 일반 대중, 지역과의 소통에도 관심을 갖고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는 소신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조직원이 한뜻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며 "3년의 임기동안 우리 구성원들이 지금보다 훨씬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기관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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