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10년 전국에 연구단 구성하고 거대 시설 구축
두번째 10년은 IBS 구성원들에 힘주는 ‘철학’ 세워야
대한민국 넘어 인류에 희망주는 연구소 기대

'새로운 발견을 위한 10년'이란 캐치 프레이즈로 IBS 10주년 기념 행사들이 개최됐다. 지난 10년이 연구 기반 구축을 위한 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연구와 함께 IBS를 지탱할 IBS만의 연구철학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사진= 대덕넷]
'새로운 발견을 위한 10년'이란 캐치 프레이즈로 IBS 10주년 기념 행사들이 개최됐다. 지난 10년이 연구 기반 구축을 위한 기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연구와 함께 IBS를 지탱할 IBS만의 연구철학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사진= 대덕넷]
기초연구를 표방한 IBS가 10주년을 맞았다. 기초연구 투자가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대대적으로 연구자금이 투입되는 IBS의 지난 10년은 국제 과학계에서도 주목됐다. 네이처에서는 2016년 ‘떠오르는 별’로 IBS를 소개하기도 했다. 

많은 성과도 올렸다. IBS는 10주년 기념 책자에서 대표 성과로 10개를 소개했다. 인공지능 시대 위한 4진수 연산 소자 발견, 암흑물질 미스터리 검증 신호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메모리 원자단위 정보 저장, 현생 인류 최초 발상지와 이주 원인 규명, 탄화수소 활용 신약 원료 물질 합성 성공, 1000배 저렴한 고성능 전자소재 제조, 암세포 림프절 전이 연료 지방산 규명, 공포감 줄일 수 있는 신경회로 발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사용 배아 상태서 유전질환 유전자 교정,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2 고해상도 유전자 지도 완성 등이다. 

거대 과학시설인 중이온 가속기 라온(대전)과 지하 1100m에 건설되는 우주입자 연구시설(강원도 정선)도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강력 레이저인 펨토초 레이저(광주)는 가동중이다.

축하할 일이 많은 만큼 앞으로의 기대도 크다. 앞으로의 10년, 20년이 낙관적이 되려면 IBS가 꼭갖춰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 바로 과학자가 중시되고 동시에 과학자는 사명감을 갖는 IBS만의 연구철학 혹은 정신이다. 

지난 19일 열린 10주년 기념식은 대외행사이기는 하지만 과학계의 중요한 잔치인만큼 과학자가 주역이고, 축하객들은 조연이 마땅했다고 본다. 하지만 예산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 등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졌다. 현장에 참석한 의원은 그렇다고 쳐도 영상 축사한 의원들도 과학자들에 앞서 예우한 것은 과공(過恭)으로 여겨졌다. 많은 과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참석했는데 이들이 IBS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와 협력 방안 등이 짧게라도 논의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10년의 걸어온 길이 연구단 구성과 하드웨어 구축 등 기반 조성에 강조해 이뤄졌다. 이도 필요하지만 IBS가 지향하는 가치와 내부의 공감대 등이 전달돼 IBS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IBS는 獨 막스 프랑크와 日 리켄(理硏)을 벤치마킹한다고 이야기한다. 두 연구소 모두 나름의 운영철학이 있다. 막스 프랑크 연구소는 하르낙 원칙으로 유명하다. ‘뛰어난 연구자를 찾아내 그를 중심으로 연구소를 운영하며 그가 연구에만 집중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율이다.

리켄은 ‘과학자의 낙원’이란 별칭으로 유명하다. 연구원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일본 가속기의 아버지인 니시나 요시오 박사의 ‘코펜하겐 정신’이 그 출발점이다. 그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닐스 보어의 지도를 받으며 세계 최첨단의 양자역학을 스스로 개척하며 물리학자로 성장했다. 닐스 보어 연구실의 문화가 분야와 입장에 관계 없이 철저하게 토론을 거듭하며 연구를 진척시켜 나가는 스타일과 관용의 정신이었다. 이를 '코펜하겐 정신'이라 하여 일본에 소개했고, 연구소 운영에 적용했다. 이런 연유로 자유로운 연구 문화를 만든 리켄은 과학자의 천국이란 평가를 얻게 됐고, 이 정신은 지금도 리켄에 살아 있다.

이런 연구문화가 있어 리켄은 2차 세계 대전과 조직 대규모 축소 등등의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 연구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IBS도 정부에 따라 약간의 부침을 겪어 왔다. 이명박 정부는 산파 역할을 했으나 정권 말기에나 착수할 수 있었고, 박근혜 정부는 시동은 걸었으나 아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권의 일이라며 본원 준공이나 예산 확보 등에 미온적이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과학기술 예산이 늘어나고 국민들이 기초 과학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IBS는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작은 어려움이 아니라 막스 플랑크 연구소나 리켄에 들이닥친 큰 충격이 외부로부터 가해질 경우 IBS는 과연 존립 가능할까? 이제 10년밖에 안된 연구소에 무리가 되는 가정일 수 있으나 그동안 IBS를 지켜보면서는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기도 한다. 막스 플랑크나 리켄에 생겼던 것처럼 과학을 경시 혹은 부정하는 정권의 등장과 전쟁과 같은 외부 변수가 생기면 IBS는 어떻게 대응할까? 

작은 일로 비춰질 수 있지만 IBS를 지켜보며 아쉬운 장면이 몇가지 있다. 하나는 건물이다. IBS는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과학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연구소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돈이 없어 과거에 하지 못한 기초연구를 이 땅에 사람이 살고 처음으로 제대로 하게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세계사 측면에서도 원조를 받던 나라가 처음으로 기초 연구를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한국 과학의 중심지인 대덕에 연구소가 많기는 하지만 건축학적으로 기념비적인 건물은 없다. IBS는 여러 의미를 담아 건물을 상징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여겨지는데 결국은  조달청 조달에 의한 그렇고 그런 공공건물이 됐다. 

연구자들은 연구와는 상관 없는 일로 여길까? 건축가들은 공간은 사람들의 행동에 다대한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처럼 공간 하나가 지역을 살리고 죽인다. 설립 초기라 IBS 구성원들이 관심 갖기 어려웠을 수 있다. 이후 구성되는 공간은 좀 멋지고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건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하나는 2018년 본원 개원식 때 과기부 국장이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일이다. IBS는 한국 과학의 성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우리나라가 과학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계기는 월남전 참전 결정을 하고 미국이 우리에게 과학연구소 설립 지원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좀 과장일 수 있으나 국민들의 피를 판 대가로 과학연구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 종합연구소인 KIST 설립 초기 해외과학자 유치를 위해 미국에 간 최형섭 초대 소장은 응용 연구를 우선시했다. "노벨상 받을 연구하는 사람은 미국에 남고, 돌아가서 산업화 연구를 할 사람은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이론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의 경우 귀국을 원했으나 "KIST는 기초 연구할 단계가 아니다. 노벨 물리학상 대상이 되고 있는 이 박사는 좀 더 거기에서 머물며 일하는 것이 좋겠다" 회신하기도 했다.

응용 연구로 시작해 국부를 창출하기 시작해 2010년대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했다. 과학에 있어서도 업그레이드 차원에서 기초 연구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에 따라 IBS가 설립됐다. 과거에는 하고 싶어도 못하던 기초 연구인만큼 과학자와 과학계에는 더욱 뜻 깊은 일이었다. 이런 상징성을 가진 연구소가 2018년 본원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계제에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맥락상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본인은 물론 국무총리 장관 차관 등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빠지고 국장이 정부대표로 참석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IBS는 물론이고 과학계에서도 이에 대해 항의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과학자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과민반응일까?

이번 10주년 행사에는 그나마 장관이 참석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가 참석할 수는 없었을까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대통령 후보란 사람들도 과학의 중요성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데 관심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IBS는 한국 기초 과학의 대표 주자이다. 많은 지원이 있는 만큼 책임도 크다. 주어지는 책임보다, 동기부여가 되어 갖는 사명감이 내적 충만감을 높이며 어려움도 극복하게 만든다. 대표 선수로 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도 이해해야 한다. 포스텍과 KAIST를 보며 느껴지는 차이 가운데 하나는 설립정신에 대한 이해여부이다. 포스텍은 조상의 피를 판 청구권 자금으로 출발한만큼 보국(報國)이란 기본 정신이 있다. 그 결과 책임감과 도전 정신이 일반적인 KAIST 학생 보다 크다.

IBS는 KIST에서 시작된 한국 과학이 응용을 넘어 기초를 시작한 것으로 국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받고 있다. 그런만큼 국민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세계적 성과를 내고, 대한민국이 인류에 공헌하는 중차대한 사명을 갖고 있다. 이제 10주년이면 본격적 시동을 거는 기본을 갖추었다고 하겠다. 개인이 뛰어나서 연구단장이 되고 연구원이 되기도 했겠지만 국민들이 연구비를 마련해 좋은 환경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아직 IBS에는 연구 정신이 무엇인지 알수 있는게 많지 않다. ‘인류를 위한 새로운 발견’을 비전으로 이야기하지만 피부로 다가오지 않는다. 연구자와 구성원들을 만나도 좋은 직장이란 생각은 전해지지만 자부심이나 사명감 등과는 거리가 멀다. 

10주년을 맞아 IBS의 정신은 무엇이고, 인류에 대한 기여와 공헌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출발점이 되어 20주년에는 국민들이 자랑스럽게 만드는 IBS를 기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의 수월성에 대한 자부심만큼 연구자들간의 연구 철학과 문화에 대한 공감대, 사회에 대한 사명감이 활발히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도영 원장이 IBS 설립 10주년을 맞아 기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대덕넷]
노도영 원장이 IBS 설립 10주년을 맞아 기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 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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