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 온다' KBS 신년 기획서 강의, 2편 13일 오후 10시
"벤치마크 대상이 사라졌다, 기술 주권이 있는가"
"기술 중심국 되려면 정답이 없는 질문 할 수 있어야"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기술선진국 가려면 본질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질적 질문이 달라지면 국가의 전략기술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사진=KBS방송 화면 갈무리]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기술선진국 가려면 본질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질적 질문이 달라지면 국가의 전략기술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사진=KBS방송 화면 갈무리]
기술패권의 시대다. 미래 산업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세계 질서도 재편되고 있다. 한국은 정답이 있는 선진국이 만든 문제를 빠르게 풀고 친절로 포장해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분야에서 추격을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야하는 경계에 서 있다. 추격의 대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 한국은 고유의 기술 주권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에 없는 길, 화이트스페이스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

축적의 시간의 저자, 이정동 교수가 지난 6일 KBS 2022년 신년특집 '다음이 온다'를 통해 현재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 화이트스페이스를 위한 기술 주권 확보를 강조했다. 그 첫 걸음으로 본질 질문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  추격이 통했지만 이젠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국의 산업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방향을 바꾸며 성장을 거듭했다. 60년대 수출품목은 철광석, 돼지털 등 노동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술도 자본도 없는 후진국으로 당연했다. 하지만 80년에 들어서며 의류, 90년대에는 자동차, 선박, 화학, 전기, 전자 등 그동안 없던 품목으로 크게 바뀌게 된다. 주력 산업이 중화학공업으로 바뀌고 선진국 기술을 따라하며 가능했다.

이정동 교수는 이충구 현대자동차 연구개발부문 사장의 기술 확보와 축적 사례를 소개했다. 1974년 현대는 한국 최초로 고유모델인 포니 자동차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 대리였던 이충구 사장은 이탈리아 디자인팀의 설명을 노트에 한줄 한줄 메모했다. 이 메모는 한국의 자동차 디자인의 교과서로 활용됐다. 한국은 시행착오를 넘어서며 독자 모델 자동차 개발에 성공했다. 선진국을 보고 배우던 추격의 결과였다. 한국은 그동안 열심히 추격하고 선진국을 따라잡으며 각 산업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 교수는 "선진국을 보고 배우던 추격 전략은 통했고 한국은 화려한 성장의 길을 걸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과 산업도 등장했다. 그렇게 쫓아간 결과 세계적 수준까지 올라왔다"면서 "하지만 이제 벤치마킹할 대상은 없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각국은 자국에서 물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들 깨달았다. 글로벌 공급체인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미국 내 생산을 늘리라고 요청했다. 국내 대기업들도 투자를 약속했다"면서 "미국의 전략에는 기술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것과 특히 중국을 상대로 기술 우위를 유지해야겠다는 의지가 포함돼 있다. 경쟁력이 무시무시하다. 한국은 빨리 대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길이 없는  '화이트스페이스' 시작

한국의 기술력은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누구도 정답을 보여주지 않는 상황으로 같이 경쟁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특히 중국의 질주는 무서운 속도다. 한 예로 5G 기술은 이미 우리의 모든 일상에 적용되고 있다. 휴대폰, 병원 의료 서비스, 치안, 교통 등 전 영역에 사용된다. 거기에 6G 기술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6G 기술의 특허 중 40%는 중국이 만들고 있고 표준화하고 있다.

이 교수는 "표준이 된다는 것은 제품을 만들때 기술의 기반이 되고 표준을 이용하면 로열티를 내야 한다. 더 두려운 것은 후발 주자는 기술표준의 종속되는 것"이라면서 "중국의 경제 영향권이 넓어지는 것이다. 중국은 세계를 대상으로 표준을 만들고 있다. 자칫 질서가 흔들리게 된다. 미국이 이를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국의 기술 패권 지각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없던 현상으로 한국은 더 이상 어느 편, 어디 하청으로 들어갈 것인가 질문 하기에 앞서 기술주권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기술주권이 있어야 그 나라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 기술 주권, 국가와 국민 삶의 미래 

"기술 주권은 필요한 기술을 의지에 따라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기술 주권이 있어야 그 나라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기술 주권이 없으면 기술 주권을 가진 국가가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기술 주권은 국가의 미래, 국민의 삶을 위한  것이다."

이 교수는 글로벌 퍼즐판에서 우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기술 주권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술 주도권을 가진 나라가 중심부에 퍼즐을 놓고 개발도상국, 추격국가들이 하나, 둘 퍼즐을 놓으며 표준적인 퍼즐판이 만들어진다.

그는 "중간에 있는 퍼즐만이 고유의 퍼즐이고 변방의 퍼즐은 언제 대체될지 항상 불안해 한다"면서 "한국은 이제 선진국 도움없이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곳에 들어섰다. 우주기술 75톤 로켓도 190번의 시험을 통해 실패원인을 찾고 그러면서 우리도 추격의 정점까지 왔다"고 말했다.

오늘의 한국은 길이 없는 화이트 스페이스의 경계에 섰다. 지침이 없는 여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알아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곳에 들어 선 것이다. 이 교수는 "눈밭을 가는데 앞서 간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다. 화이트 스페이스다. 재미있는 것은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면서 미국 DARPA의 정답 없는 문제를 소개했다.

DARPA의 제1회 그랜드 챌린지는 모하비 사막을 무인자동차가 건너는 과제였다. 당연히 모두 실패했다. 이 교수는 "대실패였지만 답이 없는 이 문제에서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생겼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AI, 전기차와 맞물려 산업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선도국은 자기만의 문제를 출제한다. 기술 추격국은 기술 선도국이 낸 문제를 푼다. 우리는 그 경계에 있다"면서 "우리는 추격전략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뒀다. 이제 답안지를 누구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방향을 정해야 한다.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KBS 신년특집 '다음이 온다' 2편은 오는13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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