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관료의 막말, 핀잔에 연구자 자괴감 들기도

50대 후반 출연연의 부장급 연구자. 그는 상위 부처에 연구개발 과제를 설명하러 가는 날이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했다. 자식뻘인 새파란 사무관이 "이런 걸 왜 하느냐" "이게 왜 필요하냐"며 면박을 주는 태도와 언행에 "공부 좀 하라"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예산권을 쥐고 있어 그냥 아무말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자괴감마저 든다고 했다. 

은퇴를 앞둔 연구자도 예외는 아니다. 수십년 연구현장에서 연구개발을 이끌어온 베테랑이지만 상위 부처 젊은 관료에 주눅들기는 마찬가지다. 부처의 관료 중 몇몇은 마치 상왕(?)인양 연구자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말 한마디에도 제동을 건다. 혹시 자신의 인사고과에 피해가 갈수 있다는 염려에서란다. 

출연연 행정부서도 상위부처의 이야기에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정부에 보고하는 문서 하나도 부처의 지시를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과학계의 역할로 정확히 알려야 하는 상황에도 부처의 지시라며 대폭 축소하거나 하지 못한다. 때로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지 않겠다며, 알아서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이 지속되며 연구 현장은 자율성, 창의성 문화대신 서로를 옥죄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몇해전에는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보도자료까지 상위 부처에서 검열(?) 했다. 그러면서 큰 성과는 부처의 성과로 둔갑시켜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부처의 성과로 홍보한다. 재주는 출연연 연구자들이 넘고 과실은 부처에서 갖고 가는 셈이다. 

현장 연구자들은 관련 부처가 세종으로 이사와 그나마 오가는데 빼앗기는 시간은 줄었다며 다행이라고 말한다. 과천에 있을때는 툭하면 올라오라는 관료의 통보에 하루를 그냥 허비하기도 했다. 연구시간마저 빼앗기기 일쑤였다. 그동안 모든 정부에서 소통을 강조했지만 실제 관료가 소통에 나선 사례는 거의 없다. 현장 연구자에게 오라가라는 식의 관행이 여전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관료의 연구자 길들이기라고도 표현한다.

감사라도 받게 되면 연구자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진다.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2018년 출연연 기관장이 감사 후 임기를 남겨두고 중도 사퇴하며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그는 과기부와 국무조정실로부터 친인척 채용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감사를 받았다. 그는 2018년 2월 임기를 남겨두고 사임했다. 그리고 같은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재판부는 비리 내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결론냈고 그는 업무재해로 인정 받았다. 그는 감사를 받는 동안 심한 모멸감에 견디기 어려워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연구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은 관료도 많다. 그들은 연구자 못지 않게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필요성,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연구자가 연구개발에 몰입할 수 있는 연구문화, 환경 조성을 위해 현장과 소통에도 적극 나선다.  제도 개선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를 존중한다. 아쉬운 것은 과거보다 점점 이런 관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차기정부는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겠다고 했다.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의 미래를 만들고 사회, 지역 문제들을 풀어나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연구 현장에서는 거는 기대가 높다. 국정운영의 중심에 과학기술이 놓이는만큼 연구문화, 환경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는만큼 연구자들도 변화가 필요하다. 제도, 규제를 탓하며 성공률 높은 과제에 매달리기보다 연구자로서 도전적 연구, 미래 먹거리가 될 참 연구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역시 머슴정부를 표방한다. 국민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닌 국민을 섬기는 정직한 머슴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윤 당선인의 약속이 위에 머물지 않고 연구현장과 맞닿는 부처의 관료, 국민의 손과 발이 되는 모든 공무원에게도 스미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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