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성출혈열 원인균 한탄바이러스 발견
예방 백신 한타박스 개발해 인류에 기여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박사가 5일 별세했다. [사진=대덕넷 DB]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박사가 5일 별세했다. [사진=대덕넷 DB]
국내 바이러스 연구의 아버지로 유행성출혈열의 원인균인 '한탄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5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에이즈, 말라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전염성 질환으로 알려진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이를 통해 1989년 유행성출혈열 진단법을 개발했다. 이듬해에는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를 개발, 치사율 7%의 질병을 예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타박스는 국내 1호 신약이다.

이호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의학 석사, 박사를 마쳤다. 1969년 미 육군성의 지원을 받아 유행성출혈열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각국의 연구자들도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다양한 학설만 내놨을 뿐이다. 이 교수는 500여종의 바이러스와 비교 검사해 이 바이러스가 전혀 새로운 종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병원체를 발견한 한탄강의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라고 명명했다. 한탄바이러스는 한국인이 발견한 최초의 병원미생물이다. 

1980년 이 교수는 서울 서대문의 한 아파트에서 채집한 집쥐에서 새로운 유행성출혈열의 병원체를 발견, 서울바이러스라 명명했다. 한국에서 발견된 두번째 미생물이다. 이를통해 도시에서도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교수는 1981년부터 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시작 10여년만인 1991년 유행성 출혈열 예방백신인 '한타박스'를 선보인다. 고인은 유행성 출혈열과 관련해 240여편의 논문을 국내외에 발표했다. 10개의 특허를 등록했다.

이 교수는 40여년간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은퇴 후에는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소장, 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 대한백신학회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이호왕 교수는 

이호왕 교수는 1928년 함경남도 신흥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의학공부를 권유해 함흥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산주의 체제가 맞지 않아 월남, 서울대 본과 1학년으로 입학했다. 월남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중 서울은 장티푸스, 말라리아, 콜레라, 유행성출혈열 등 전염병 시장을 방불케 했다.

병원 실습 중 전염병 환자들을 본 이 교수는 졸업 후 병원이 아닌 전염병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다. 미생물학을 공부하고 미네소타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을 가게된다. 국가에서 보내 준 유학이라는 생각에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한 그는 현지 교수의 추천으로 미국에서 박사과정까지 밟게 된다. 미국에 유학온지 4년 3개월 뒤 그는 박사학위를 받는다. 

1959년 귀국한 이호왕 박사는 서울대 의대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학생들과 미군이 쓰던 건물을 직접 청소하고 미네소타 대학의 교과과정과 같은 강의와 실습을 했다.

이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외국 학자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965년부터 5년간 일본뇌염 연구에 매달렸다. 당시 일본뇌염은 1년 사망자만해도 3000여명으로 각국의 어린이들이 희생됐다. 하지만 일본이 먼저 백신을 내놓으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없게 됐다.

그가 다시 연구주제로 잡은 게 '유행성출혈열'이다. 이 분야는 1952년부터 15년간 230여명의 연구진이 4000만 달러를 투자해 연구했으나 병원체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 교수는 1969년 유행성출혈열 병원체 규명을 위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해 미육군의학연구개발사령부에 제출했다. 그리고 1970년부터 3년간 4만 달러의 연구비 지원을 약속받는다. 

하지만 연구 과정은 6년동안 실패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 군부대 주변에서 들쥐를 사냥하다 무장간첩으로 오인받아 경고사격을 받기도 했다. 연구원 중 전염병에 감염되며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1975년 미육군의학연구개발사령부는 1년 후 극동지구 폐쇄를 통보했다. 연구비도 더 이상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낙담하고 있던 시기 NIH에서 유행성출혈열 연구를 하다가 은퇴한 젤리슨 박사가 소포를 보내왔다.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담은 책자였다. 들쥐의 폐에 기생하는 곰팡이 독소를 살펴보라는 조언도 담겨 있었다.

이 교수는 들쥐의 폐 부위를 조사했다. 마침내 등줄쥐 폐조직에서 혈청과 반응해 밝게 빛나는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 이 교수는 새롭게 발견한 바이러스를 밤하늘의 은하수에 비교했다. 그는 "들쥐의 내장 샘플에 환자의 항체가 있는 혈청을 반응시키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니 밤하늘의 은하수 같이 노란별이 반짝였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976년 4월 이호왕 교수는 유행성출혈열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의구심이 먼저 돌아왔다. 50년이 넘도록 풀지 못한 문제를 과학후진국의 연구자가 해결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미군 중령이 서울에 와서 일주일간 머물며 연구과정을 확인했다. 그제서야 미군 중령은 이 교수를 미국 육군 병원에 와서 강연을 해달라고 초청했다.

이 교수는 200명이 넘는 석학들 앞에서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윽고 강연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미국 코넬대, 예일대 등 명문대에서도 풀지 못한 문제를 그가 해낸 것이다.

미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이 교수는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 중 처음으로 '미 육군 최고시민 공로훈장'을 받았다.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남았다. 국내 그의 연구실은 명실상부한 유행성출혈열 연구의 메카가 됐다.

국내 바이러스 연구의 포문을 연 이 교수는 이제  먼 길을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고인의 빈소는 고려대안암병원장례식장 303호 특실, 발인은 7일 오전 11시 5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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