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개 기관을 4시간만에, 졸속 중 졸속 국감
공운법상 기타공공기관으로 인한 현장 목소리 외면
출연연 문제 원인 들여다보는 의원 없이 호통만

출연연 국정감사가 18일 오전 10시부터 IBS에서 진행됐다.[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연연 국정감사가 18일 오전 10시부터 IBS에서 진행됐다.[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을 활용하기보다 고성에 반말, 맥락없는 질문까지 공부 안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질문을 정쟁에 활용하는 의원의 모습도  여전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감이 18일 IBS(기초과학연구원)에서 열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이공계특성화대학부터 정부출연연구기관까지 54개의 기관 국정감사를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4시(이후 항우연 방문)에 끝내는 일정이다. 

점심시간 2시간(12시 20분부터 오후 2시 20분)을 제외하면 54개 기관의 국감을 4시간만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한 기관당 5분(4.4분)이 채 안된다. 위원장을 포함한 과방위 위원 20명이 질문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여건인 셈이다. 실제 질문 중에 의원들의 마이크는 꺼졌고 국감 증인, 참고인들은 인사만 하고 답변을 할 수 없는 국감이 되고 말았다. 졸속 중에도 가장 졸속의 과방위 국감이라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다.

문제는 출연연 국감에 최근 불거진 카카오 먹통 사태 질문이 주를 이뤘다는 점이다. 의원의 절반은 이종호 장관에 카카오 사태를 물었다. 의원마다의 같은 질문, 이종호 장관의 같은 답변이 반복됐다. 

그나마 몇몇 의원이  출연연 연구자 임금과 처우개선, 기술료와 보상, 인력확보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맥락은 없었다. 국감때마다 단골로 올라오는 질문의 반복이었다. 전후 상황은 모르는 질타를 위한 질문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이 같은 질문을 하기전에 왜 그런 문제가 생겼을까를 들여다 본 의원은 아쉽게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런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연구현장에서는 출연연을 기타공공기관에서 제외해 줄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정부는 2008년 도입한 공공기관 운영에 대한 법률(이하 공운법)안에 따라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공공기관을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했다. 출연연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됐다. 강원랜드, 대학병원 등과 같이 분류되며 동일한 법, 제도가 적용됐다. 이윤을 창출하고 고객만족도를 평가받아야 했다. 임금피크제가 적용되고 블라인드 채용 대상이 됐다. 

연구현장의 우수 인력들이 대학으로 빠져 나갔고 국내외 이공계 우수인력은 출연연을 기피했다. 성과중심 평가로 연구환경은 황폐해졌다. 연구몰입 환경을 조성하고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공약은 그야말로 헛구호가 됐다.

출연연의 기타공공기관 제외를 위한 공운법 개정 필요성은 2010년부터 제기됐다. 민병주 전 의원, 이상민 의원, 오세정 전 의원, 신용현 전 의원 등 연구현장을 알거나 경험이 있는 의원들이 출연연의 기타공공기관 제외 개정안을 지속적으로 발의해 왔다.

하지만 안건은 반복적으로 무시됐다. 국회 소위에서는 법안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과방위 의원들조차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인지하더라도 중요성을 몰라서)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공운법 개정안은 2018년에야 빛을 봤다. 연구 현장 출신의 신용현 전 의원이 과방위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하고 설득해 겨우 안건에 올랐고 연구목적기관으로 새롭게 분류됐다. 하지만 기타공공기관 아래 연구목적기관으로 분류됐다. 여전히 출연연이 기타공공기관의 법,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다. 

이날 의원들은 연구환경 개선과 연구 자율성이 왜 안되는지 과기부 장관만을 질타했다. 인력 확보를 왜 하지 못하느냐는 웃지 못할 질문도 나왔다. 전 정권은 두자리수 비율의 인력 충원이 이뤄졌는데 현 정권은 왜 못하느냐는 맥락을 알수 없는 질문도 있었다. 출연연이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되며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거나 관심을 가진 의원은 보이지 않았다. 전체적 흐름과 맥락을 보면서 질문하는 의원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오전까지 상황).  

법 개정 문제는 국회의 몫이다. 의원들이 쓰는 경비는 모두 국민 세금이다. 출연연에 투입되는 예산도 국민의 세금이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감이라고 의원들이 과학기술계 인사에 막말, 반말을 하는 게 역할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강대국간의 패권다툼 등 과학기술이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고도 한다. 과학기술계 종사자들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법, 제도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에서도 일회성이 아니라 긴 안목의 관심으로 실질적인 연구환경이 마련될 수 있는 법, 제도 마련에 힘을 쏟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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