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은 일반행정 NO 과기 진흥육성 논리로 봐야"
"정반대 정책, 탈선하는 출연연···국가 위기로 몰고가"
정년·펀딩·의사결정 등 혁신 주문 "자율성·신뢰 기본"
이달 말 정년 앞두고 15일 UST 대강당서 특별 강연

이달 말 정년 앞둔 노환진 UST 교수가 15일 UST 대강당서 특별 강연을 열었다. [사진=이유진 기자]
이달 말 정년 앞둔 노환진 UST 교수가 15일 UST 대강당서 특별 강연을 열었다. [사진=이유진 기자]
"우리가 과기부에서 일하는 목적은 과학기술행정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다. 훌륭한 과학기술자가 많이 배출되는 바탕을 만들어주고 이 사람들이 불철주야로 연구에 전념해 많은 연구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행정절차가 희생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들을 지원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송곡(松谷) 최형섭 박사-

"과기부 공무원은 연구개발의 속성과 기술발전의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을 꾸준히 설득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출연연은 일반행정이 아닌 과학기술 진흥 육성의 논리로 봐야 한다. 공무원 고위층이 일반행정의 원리를 고집할 때 과기부가 新업무방식으로 '최형섭 원칙'을 제시했으면 한다." 

노환진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이달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과학기술정책 분야서 십수년간 가감 없는 질타를 해오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15일 UST 대강당에서 열린 정년퇴임 특강에서 "과학기술정책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 탈선이다"라며 "탈선의 가장 큰 피해자는 출연연이다. 여러 기능을 갖고 있음에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 탈선한 출연연

"공업연구기관은 독립기관으로 자율적 운영을 보장해 연구기관 운영에 대한 감독 또는 감사 등 정부의 관여요소를 배제해야 한다. 연구개발 업무는 그 자체가 자율적 방식이 아니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투입과 산출의 등식 관계를 사실상 부정하는 연구 업무 과정의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일반적인 감사나 감독 기준 등을 연구기관에 적용하는 데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KIST 초대 소장이자 과학기술처 초대 장관을 역임한 송곡(松谷) 최형섭 박사가 의도한 출연연이다. 공공기관이 아닌, 독립된 주체로서 국가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곳을 그는 출연연이라고 불렀다.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며 그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당시엔 대학 교수보다 출연연 연구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다. 

상위부처인 과기부와 출연연 사이 엇박자가 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다. 노 교수는 "정부가 기술발전의 요소나 연구개발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며 "일반행정의 논리로 과학기술정책을 지휘했다"고 꼬집었다.

이는 곧 1996년 1월 PBS(연구과제중심체계) 도입의 배경이 됐다. 정년도 축소됐다. 2000년대에 들어 총리실 산하 이공계 3개 연구회가 혁신본부 산하로 이관됐지만 출연연에 대한 육성과 활용 이원화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정무업무 평가가 강화되면서 정부 부처 간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현재의 출연연은 설립 초기 정책의도를 너무 벗어났다"며 "출연연의 재원이 출연금인 이유도 연구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라는 의도인데 정작 지금은 공무원보다 유연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 교수 등 과학기술 특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정책에 너무 깊이 개입하고 있다. 이들은 진흥·육성의 논리에 대해 이해가 없으며 오히려 거부반응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PBS에 대해서도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비영리적 자세를 지녀야 할 연구원을 영리적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게끔 했다"며 "협력은 하지 않고 서로 경쟁,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과제가 연구원을 좌지우지하니 실상 기관장의 재량권이 없어지고 연구원들은 소신 발언을 할 수 없게 됐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곳을 떠나는 이유도 PBS 때문"이라고 말했다. 

◆ 과기부의 역할

"출연연의 주인으로서 기관을 이끄는 사람은 정년이 보장돼야 한다. 정규직의 인건비와 경상운영비는 묶음예산으로 지급, 경상운영비엔 기본연구비와 기관 전략연구비가 포함돼야 한다. 기관장 선출부터 이사회 멤버, 임용승진, 예산배분, 내규 제정 등은 원내에서 평의원회와 과학위원회 두 축으로 자유롭게 결정돼야 하고 기관장의 독단적 의사결정은 없다. PBS 또한 없다. 정부감사도 없되 자체내부감사는 엄격해야 한다. 방만하지 않고 동시에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조직운영이 필요하다."

출연연 자율성 보장을 위해 노 교수가 주장하는 법률 제정이다. 그는 정년, 펀딩, 의사결정, 윤리규범 4가지 분야에서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노 교수는 출연연에 대한 육성과 활용의 이원화 정책을 법규화하고, 자율성 보장을 위한 법률제정이 시급하다고 봤다. 그는 "정부부처가 계약을 통해 연구과제를 출연연에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관리기법을 개발해야 한다"며 "과기부는 출연연 연구사업이 아닌 인적자원개발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과기부 역할도 빠질 수 없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출연연 혁신에 있어 주도권은 과기부에 있다. 과기부가 다른 부처와는 다른 트랙을 선택해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 교수는 "과기부는 정부와 반대되는 진흥 육성의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며 "연구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정부 내에서의 과기부 존재 이유가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일환으로 조정관 제도 부활을 들었다. 조정관이란 출연연의 선임, 부장급 연구원이 국장급 공무원으로 파견돼 출연연 관리와 연구개발사업을 운영하던 직책으로 1998년 폐지됐다. 과기부가 조정관제도를 부활시켜 현장의 목소리를 얻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 교수는 "과기부의 설립은 출연연을 육성하기 위함인데, 지금의 출연연은 과기부를 위해 존립하는 형국이다. 부처 이기주의는 편향적 정치체제를 만들고 결국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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