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신동지구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에 가다···부지 29만평 '축구장 130개' 규모
2020년 건물시공 마감···2021년 장치설치 완료 "본격 기초과학 난제 도전"
동산으로 향하는 황톳빛 2차선 도로에는 건설 장비와 차량이 분주하다. 차량을 따라 초대형 동산으로 향했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거쳐 건설 현장으로 가는 길만 한참이다. 거칠 것 없는 벌판을 지나는 봄바람은 거셌다.
단군이래 최대 연구시설로 꼽히는 '한국형 중이온가속기' 구축 현장. 입구에서부터 웅장한 기운이 느껴진다. 레미콘 트럭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멘트 반죽을 실어나르고 수십 대의 굴착기와 장비들이 굉음을 울리며 건축 현장을 누비고 있다.
◆ 가장 큰 곳에서 가장 작은 것을 연구한다 "국내 '기초연구 닻' 오르다"
중이온가속기 주요 연구시설인 가속기터널의 길이는 630m에 달하며 벽 두께만 4.7m다. 가속기터널의 폭과 높이도 각각 7m에 이른다. 방사성 물질이 사용되는 중이온가속기의 안전을 위해 진도 6.9의 지진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이온가속기는 수소·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를 이온화해 빠르게 가속시킨 뒤 표적 원자핵에 충돌시킨다. 충돌 이후에는 원자보다 작은 세계를 볼 수 있으며 새로운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하게 된다.
희귀동위원소는 매우 희귀하고 수명이 짧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동위원소다. 우주 진화과정에서 아주 짧은 찰나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구상에는 극히 미량만 남아있거나 존재하지 않아 인공적으로 생성·발견해야 한다. 전 세계 과학계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소보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희귀동위원소가 더욱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대전류 저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은 가벼운 원소이온을 가속해 무거운 원소표적에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많은 양의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할 수 있다. 반면 소전류 고에너지 동위원소 빔 생성방법은 무거운 원소이온을 가속해 가벼운 원소 표적에 충돌하는 방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할 수 있다.
먼저 ISOL로 희귀동위원소를 생성한 뒤 IF로 다시 가속해 더욱 새롭고 희귀한 동위원소 발견 가능성을 높였다. 중이온가속기 연구시설에는 630m 규모의 가속장치를 중심으로 희귀동위원소 생성장치인 ISOL동과 IF동이 구축돼 있다.
조장형 시설건설사업부장은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지거나 희귀동위원소가 발견될 때마다 그동안 기초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라며 "기초과학의 한계를 넘고 새로운 연구 분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출발은? '은하도시포럼' 이야기
중이온가속기 구축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충청권 공약으로 추진돼 2009년 과학벨트 종합계획에 포함됐다. 하지만 입지 선정을 두고 정치적으로 논란이 일면서 당초에는 올해 완공 계획이었던 사업이 5년이나 미뤄졌다.
우여곡절 많았던 중이온가속기연구시설 건설사업.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뿌리는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前 이사장 등 과학·예술·인문학 교수들이 지난 2005년 결성한 '랑콩트르(Rencontre·만남)' 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랑콩트르 모임에는 세계 일류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연구할 수 있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는 2006년 4월 당시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은하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9월 랑콩트르 모임은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 포럼'으로 공식 출범했다.
이듬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한나라당은 그해 11월 '은하도시'의 범위에 산업과 교육 등을 추가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란 개념을 만들어 이를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 분야 대표 공약으로 확정했다.
이후 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인수위에 과학벨트 TF팀이 꾸려졌고, 2008년 10월 교육과학기술부·지식경제부·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들로 구성된 과학벨트 추진지원단이 출범했다.
2009년 1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추진지원단이 공청회 등을 거쳐 만든 과학벨트 종합계획을 심의·확정했고, 정부는 과학벨트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과학벨트는 세종시 등 정치·지역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선 사안과 얽히면서, 사실상 표류하게 되는 등 지역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다가 2011년 거점지구와 기능지구(세종·청주·천안) 등으로 정해졌다.
거점지구는 중이온가속기가 들어서는 신동지구를 포함해 유성구 둔곡지구, 도룡지구 등 3곳이다. 거점지구 과학벨트 조성사업은 2021년까지 추진되며 총사업비는 5조7044억원이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가 신동지구에 자리잡으며 기초연구에 닻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순찬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 단장은 "미지 원소를 찾기 위한 도전이다.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가야 한다"라며 "새로운 지식이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기초과학 연구시설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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