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우일 한국과총 회장
"과학기술 역량이 국가 경쟁력"
"과거 청산보다 중요한 건 미래"
"과기인, 정치 백안시 하면 곤란"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하며 국정과 경제 성장에 과학기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피력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이 본지와 인터뷰하며 국정과 경제 성장에 과학기술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피력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한국 경제는 1960년 초부터 30년간 '성장 황금기'를 지났다. 그 시기 국가 장기성장률은 8% 이상을 지속했다. 성장 전략은 모방이었다. 선진국이 연 길을 추격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는 '5년 1% 하락 법칙'에 따라 최근 30년간 5년마다 장기성장률이 1%씩 하락했다고 분석했다(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좌우, 보수·진보를 넘어 성장 정체기를 겪고 있다는 의미다. 이 시점에서 성장 전략을 모방에서 창조로 그것도 과학기술 중심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은 지난 8일 "우리가 성장하려면 모방형 인적자본에서 창의형 인적자본을 길러내야 한다"면서 "모방에서 창의로 변모하지 않으면 대변환 시대 위기를 대처할 길이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가 과학기술인임에도 '한국 경제위기론'을 띄우는 이유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한 경제 변화가 불어닥치고 있어서다. 그가 분석한 위기 요인은 ①성장동력 상실 ②지식(4차)산업혁명 ③인구문제 ④기후변화 ⑤코로나19 등이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를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었던 시기는 없지만 저는 지금이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본다"면서 "대변환의 시대를 맞아 구한말에 맞먹는 파도가 불어닥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자는 이제 먹고살 만한데 이 정도로 현상 유지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서 "그러나 제자리에 있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고언을 꺼냈다. '불일신자 필일퇴 미유부진이불퇴자'(날마다 새로워지지 아니하는 사람은 반드시 날마다 퇴보하게 될지니 나아가지도 않고 밀려나지도 않는 사람은 있어 본 적이 없다)라는 말이다. 개인도 국가도 날마다 성장하지 않으면 뒤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그는 "정치 지도자의 과학기술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라면서 "한 국가가 미래 경쟁력을 높이려면 과학기술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청산도 중요하지만 과거 청산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면서 "경제학자들도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우일 회장에게 과학기술 중심 성장 전략과 차기정권에 과학기술이 필요한 배경에 대해 들어봤다.
 

Q. 과학기술인에게 경제 성장 이야기를 들으니 새롭다.

한국 경제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를 스스로 풀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이 5년마다 1%씩 추락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이걸 바꾸려면 과거 모방형 인적자원에 투자했다면 이제는 창의형 인적자원으로 바꿔야 한다. 모방에서 창의로 변모하지 않으면 대변환 시대를 대처할 길이 없다.

국민들 오해 중 하나가 성장 속도다. 예컨대 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가려면 똑같은 스피드로 추격할 수 없다. 선진국 성장 속도는 1배, 2배, 3배처럼 늘어나지 않고, 2배 4배, 8배···수준으로 내달린다. 갈수록 격차가 더 커진다. 

Q. 위기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는데.

대변환의 시대다. 성장동력 상실, 4차 산업혁명, 인구문제, 기후변화, 코로나19 등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문제들에 봉착했다. 구한말에 맞먹는 파도가 불어닥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구한말보다 현재 국력이 훨씬 세졌다. 선진국을 악착같이 따라가야 한다. 정치 지도자의 과학기술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과학기술은 그동안 들러리였다. 장밋빛 미래를 얘기할 때 잠깐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 필요성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중 패권 전쟁 핵심은 과학기술 전쟁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을 인식해 정치 지도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에서 오가는 얘기는 과거 지향적이다. 미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논의가 없다. 안타깝다.

Q. 차기정권이 곧 들어설 텐데 국정에 과학이 필요한 이유는.

이제는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다. 한 국가가 경쟁력을 높이려면 과학기술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잘 먹고 잘사니깐 적당히 살자고 하면 과학기술은 필요 없다. 멈추면 점점 퇴보할 수밖에 없다. 정치 지도자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중요한 이유다. 

Q. 과학기술계 목소리가 결집이 안 되는 인상이 있었다.

그동안 과학기술계 위기의식이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다. 그동안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통합될 수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큰 문제들이 놓여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국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컨센서스(Consensus, 의견일치)가 있다. 

이 시점이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합칠 기회다. 한국과총이 과학기술 단체 목소리를 취합해서 중간다리 역할을 할 예정이다. 앞으로 대선 구도가 정해지면 그분들을 모시고 의견을 들어보려고 한다. 적어도 과학기술을 담당하는 분들이 와서 이야기하고 과학기술계 목소리를 전달할 계획이다.

Q. 국민들은 어떤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미래라고 생각한다. 과거 청산도 중요하지만 과거 청산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거다. 무게중심이 미래에 있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면 과학기술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경제학자들도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국민들이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Q. 정치권이 풀어야 할 과학계 현안은.

국가의 전면에 과학기술이 배치되려면 인재 육성 시스템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람이 하는 거니깐. 그다음 지향할 부분은 자율적 과학기술 시스템이다. 자율, 창의 같은 키워드가 중요하다. 그 키워드를 실현하려면 관료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권한을 위임하고 조율하고 감시할지 솔루션이 새롭게 필요하다. 부처 하나 더 만들어서 풀릴 문제는 아니다.

혁신하려면 지금 같은 체제는 어렵다. 이전까지 혁신은 선진국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갔느냐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걸 버려야 한다. 우리가 새로운 걸 세계 최초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정부 부처별로 '이거해라 저거해라' 식으로 가선 안 되는 이유다. 최소한 20~30%는 처음하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밑에서 위로 가는 혁신이 필요하다.

Q. 과학기술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현재 정치권을 보면 과학기술에 대해 아는 분이 많지 않다. 손에 꼽힐 정도다. 조선시대 세종 때도 집현전에 20~30%가 이공계 백그라운드였다. 그때 과학기술 중심국가를 실현했다. 지금도 그 정도는 정치권에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계도 정치를 백안시해선 안 된다. 정치는 결국 자원의 배분 행위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 계신 분이 미국 하원의원으로 간 일화가 있다. 처음에는 정치권이 과학기술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정치권을 나오면서 한 말이 과학기술인이 정치에 무지하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국가 관점에서 보면 과학기술도 사회의 일부다. 그래서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들어가서 수동보단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

◆ 이우일 한국과총 회장은?

이 회장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서울대 공과대학 학장(2011~2013),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2012~2014), 서울대학교 부총장(2014~2016),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 상임대표(2015~2016) 등을 역임했다.

그는 지난해 2월 한국과총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임기 절반을 코로나19와 함께 보냈다. 한국과총은 온라인을 통해 사회에 과학기술 정보를 발신하고 있다. 매주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사회적 이슈를 논의하는 포럼 등을 개최 중이다. 이 회장은 매달 과학기술 서신을 보내며 사회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 

한국과총은 1966년 9월 과학기술인의 사회 참여 확대와 권익 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공익법인다. 600개 과학기술단체, 395개 국내 학회를 회원으로 둔 과학기술계 최대 연합이다. 회원 수 55만명을 보유해 과학기술계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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