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재완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탈원전, 거리로 나섰던 KAIST생의 3년 기록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사진=대덕넷 DB]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사진=대덕넷 DB]
탈원전의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기후위기라는 세계적 아젠다로 퇴출당할 석탄, LNG 발전소의 공백을 메워주며, 동시에 전기차 시대에 국가 전력망으로 몰려들 에너지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감당할 대규모 무탄소 에너지원이란, 처음부터 원자력뿐이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그 특유의 간헐성으로 인해 결국 보조발전원이 필요한데, 그 발전원으로 쓰이는 것이 석탄과 LNG라, 결국 재생에너지가 늘수록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런 세계적 아젠다를 차치하고서라도 이미 처음부터 답은 원자력이었다. 결국, 국가 전력망을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는 수력, 원자력, 화력인데, 수력은 부지 조건이 매우 제한적이라 증설이 어렵고, 화력은 탄소배출 문제에 더불어 화석연료를 해외수입에 전량 의존하는 특성상, 에너지 안보에 큰 부담요소였다.

이 간단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대중 속에 파고드는 데에 3년이 소요되었다. 최근, 원전 확대 찬성 여론이 원전 축소 여론을 이겼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난 3월 9일의 대선은 여러 의미가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대결임은 물론,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의 대결이었고, 친중과 친미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나와 원자력업계 관계자들에게는, 탈원전과 탈원전 폐기의 대결이었다. 

활동을 시작하던 당시엔 아직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3년이나 남아 있었고, 그래서 가능한 현 정부를 설득해 정책을 수정하게 만들어서, 하루라도 빨리 탈원전을 폐기해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정권의 의지는 완고했고, 그 뒤에는 의심스러운 저의까지 드러나려 했다. 우리는 마침내 대선이라는 정치지형의 변혁에 우리의 운명을 맡긴다는 최후의 선택지까지 내몰렸다.

지금 결과적으로는 보수당이 친원전, 진보당이 반원전으로 갈라진 모양새지만, 우리는 그런 그림을 원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원자력 살리기’라는 기치 아래 모인 만큼 구성원들의 정치성향이 다양했고, 합리적인 면으로서도, 한쪽에 올인하기 보다는, 각 진영이 너도나도 서로 원자력을 살리겠다고 경쟁하는 그림을 더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자력계는 다양한 방법과 채널로 각 진영의 대선후보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보수당은 물론, 민주당과 군소정당에도 자료를 뿌렸다. 이를 위해 '핵공감 클라쓰'를 운영하는 교수님 10분이 각 대선후보 캠프와 후보자 본인이 원자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정책 길라잡이'라는 책을 만들어 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당론으로 굳어져 버린 여당의 탈원전 정책은 확고했다. 당내에서 탈원전을 가장 확고하게 주장하던 인사들이 캠프에서도 영향력을 끼쳐 현 정부와 비슷한 기조의 공약이 이름만 바뀌어 발표됐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도박, 선택하지 않은 편향성으로 내몰렸다. 0.78%,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격차다. 단 22만명의 유권자의 선택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떠받칠 기둥인 원자력이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도박인가. 다행히 성공하긴 했지만, 다시 하라면 절대 못 할 도박이다.

운 좋게 도박에 성공한 우리의 앞에, 우리의 활동목표였던 탈원전 폐기가 마침내 눈앞의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이 사회의 뿌리 깊은 한계와 벽을 절감했다.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석학이 몇 달간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소리쳐도, TV에 나오는 정치 권력 싸움의 부록으로 끼어 있는 이슈보다 세상의 이목을 모으지 못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탈원전 폐기라는 결단은, 대중이 원자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성과가 아니라, 교체된 정치 권력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다. 정치 권력의 의지로 전문가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강행되었던 탈원전과 정치 권력의 의지로 그 오류를 바로잡는 지금, 과연 그 행동의 구조를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더 슬픈 사실은, 이것을 비단 한두 사람 정치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이 그 정치인들의 손에 권력을 쥐여 주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선동가를 동일 선상에 놓고 저울질하고, 지식의 상아탑에 삶을 바친 석학보다 TV에서 얼굴이 자주 보이는 연예인을 더 신뢰하다 보니 그런 정치 권력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이번 대선은 전문가의 입에서 나오는 객관적인 지식보다 권력자의 손에 들린 칼이 더 효과적이라는 잔인한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목적을 달성했음에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다. 

부디 이 잔인한 사실이 오늘의 일로 끝나길 바란다. 차기 정부의 정권교체란 것이 그저 방망이의 주인만 바뀐 것이 아니라, 정치 권력이 지성을 지배하는 구조로부터의 탈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사회적 사안을 결정할 때 진짜 전문가들의 지성에 귀를 기울이는 '상식'이 살아 있는 곳, 내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 조재완 KAIST 박사과정생
조재완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탈원전 정책에 2019년부터 국민속 원자력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를 통해 페스티벌도 열며 국민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무박2일의 철야행군도 펼치며 탈원전 정책이 잘못됐음을 알렸다. 한국원자력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과학적 진실알리기에 고군분투했다.
 

그의 꿈은 높았습니다. KAIST 원자력학과 대학원생으로 연구개발, 산업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도 컸습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전도유망한 학과는 적폐학과로 손가락질 받고 더 이상 후배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졸업한 선배들은 사양산업에 간다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2019년 그는 연구실 대신 거리로 나섰습니다. 시민 한명 한명에게 원자력을 설명하고 설득하며 서명 운동을 펼쳤습니다. 동영상을 만들고 만화도 제작하며 원자력을 알렸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그는 이제야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졸업이 늦어졌지만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본지는 조재완 KAIST 원자력학과 박사과정생(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의 지난 3년 소회를 세번에 나눠 연재하고자 합니다.[편집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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