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주역] 박강순 IBS 지하실험연구단 박사
기초 연구 경험 통해 장비, 실험실 구축 주도
디자인과 설계, 제작으로 우수한 성과 기여
"예미랩 건설로 한국 중성미자 성과 기대 커"

박강순 박사가 지하 1000m 아래 실험실 예미랩에서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박강순 박사가 지하 1000m 아래 실험실 예미랩에서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사진= 길애경 기자]
"전국의 산을 둘러봤다. 산에 오르지 않고 땅 속을 본다."

지하 1000m 실험실(예미랩) 구축 총괄의 첫 마디다. 산의 규모, 높이를 보면서 지하에 어떤 실험실을 만들수 있을지 그려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국내 첫 대형 지하실험실 예미랩 건설을 시작하며 직책을 연구위원에서 기술원으로 옮겼다. 박강순 IBS 지하실험연구단 책임기술원.

그는 기초연구자로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기초연구에 필요한 대형 장비, 시설을 누군가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연구 대신 지원으로 바꿨다. 그의 선택은 2006년 분명해졌다. 국내에서 중성미자 분야 첫 대형과제가 만들어졌다. 김수봉 서울대 교수팀이 120억원 규모의 리노(RENO)연구를 시작했다. 박강순 박사도 참여했다. 

결과는 2012년 국내 4.11 총선을 앞두고 나왔다. 영광 원자력발전소 반응로를 이용한 중성미자 실험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국내 연구진이 그동안 실험결과를 얻지 못했던 중성미자의 섞임각중 하나인 θ13을 측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총선 열기가 한창이었지만 전세계 과학계는 한국 과학계의 결과에 크게 고무됐다.

박강순 박사는 "원자로를 이용한 섞임각 θ13 측정 실험은 한국, 프랑스, 중국이 주도했는데 프랑스의 결과는 미미했고 우리의 결과가 의미있는 발견으로 평가됐다"면서 "중국이 집중 투자하면서 우리보다 3주 빨리 논문을 내면서 아쉬움이 남지만 한국의 연구 진척 과정을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늦은 시작에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연구진 모두 밥먹는 시간도 줄여가며 연구했다. 참여 연구진이 1인 2역, 3역을 맡으면서 앞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중성미자 연구는 프랑스와 중국이 한국보다 3년 먼저 시작했다. 한국은 2006년 시작했으니 뒤늦은 출발이었다. 예산과 인력도 그들(중 600억원, 프 350억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박 박사를 비롯해 참여 연구진들이 비좁은 연구실에서 연구 결과를 얻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다. 

◆ IBS 지하실험연구단으로

2012년 힉스 입자가 발견되며 우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졌다. 국내에서는 13년 IBS 본원에 지하실험연구단이 출범했다. 암흑물질, 중성미자 연구로 우주의 구조와 기원에 대한 이해와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시작이었다. 박강순 박사도 합류했다. 

그는 "영광 실험실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중요한 것은 과학의 눈으로 검출기, 설비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예산 절약, 효율성 등을 고려해야 했다"면서 "즉 과학의 눈으로 디자인하고 설계해야 하는 것으로 일반 기계설비전문가들은 할 수 없다. 우리는 양양에 기존 광산을 이용해 지하실험실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지하에 실험실을 구축하는 이유는 우주방사선을 줄이기 위함이다. 양양 연구실은 연구가 지속되면서 검출기, 암측물질 차폐체 디자인, 배치 등 비좁았다. 새로운 지하연구실 구축 필요성이 제기됐다. 설비 개발과 디자인, 연구실 배치 등 기초연구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총괄로 박강순 박사가 정해졌다. 박 박사는 직책을 아예 연구위원에서 기술원으로 옮겼다. 

그는 "그동안 해온 경험들이 재미도 있었고 젊은 연구진은 연구결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니어 그룹에서 하는게 맞다고 봤다"면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조한 장비들이 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서 해볼만 했다"면서 역할 전환 계기를 설명했다.

박 박사는 "우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대형 검출기 시설들이 모두 좋은 성과를 냈다. 세부적으로 정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수준급으로 평가됐다"면서 "검출기는 기성품이 없다. 우리만의 독창적인 장비, 설비를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기계설계 제작자가 아니라 기초과학을 한 연구자가 해야한다는데 공감했고 기꺼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 지하 1000미터 실험실

전국에서 가장 적합지로 강원도 정선 예미산이 들어왔다. 운영되고 있는 한덕철강 갱도를 이용한 1000m 지하실험실 예미랩을 구축키로 했다. 한덕철강의 600m 지하 갱도에서 시작, 경사로(782m)를 통해 지하 1000m까지 내려가는 실험실이다. 그동안 누구도 해보지 않은 방식의 연구실 구축이었다. 

박강순 박사는 "터널을 파서 연구실을 만들어 본적도 없고 지하라는 이유로 등기를 낼 수도 없었다. 물론 소방신고도 안됐다"면서 "무엇보다 광산에 연구실을 구축한다고 하니 모두들 반대했다. 광산을 멈추고 장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문제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터널 구축 기술은 뛰어났다. 하지만 그동안 없는 사례라서 행정적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그걸 넘어서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법령을 해석하고 논의하며 예산을 확보하고 실험실 건설을 이끌었다. 지하실험실이 필요하다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모아지며 예미랩 구축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예미랩은 지난 10월 5일 준공식을 가졌다. 800m 길이의 복도형 터널을 중심으로 중성미자 없는 이중 베타 붕괴 현상을 검증하는 아모레(AMoRE) 실험실과 암흑물질 후보 윔프(WIMP)를 탐색하는 코사인(COSINE) 실험실을 비롯해 외부 연구진이 참여하는 실험실 공간 등 12개 실험실 공간이 마련됐다. 위급시 40명이 72시간 생존할 수 있는 안전 시설도 설치됐다. 

그는 "지하 실험실은 방사능 처리 문제가 중요하다. 예미랩은 막장으로 공기순환이 중요하다. 예미랩 건설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라면서 "이를 차단하기 위해 고순도 검출기로 동위원소 방사선을 체크하고 그에 맞는 페인트를 칠해 차폐하고 시설을 설치했다. 하루에 6~8회 공기 회전을 하고 있다. 실내온도는 26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강순 박사는 예미랩의 집만 완성된 상태로 이젠 내부시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박강순 박사는 예미랩의 집만 완성된 상태로 이젠 내부시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 길애경 기자]
◆ "예산은 삭감됐지만..."

예미랩은 지하실험실로 세계에서 6번째 수준이다. 암흑물질 존재가 확인되며 미국,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지하 거대 실험실을 마련하고 연구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들과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미랩 구축 후 운영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박 박사는 "지금 집만 지은 상태로 내부 시설 구축을 위한 예산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다. 시설을 제대로 구축하려면 그에 맞는 예산이 필요한데 걱정이 된다"면서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해온 일이 헛되지 않은 순간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완성되면 세계적인 실험실이 될 것"이라면서 "기초 연구자로서 문득 간섭없이 연구하고 결과를 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안된다. 인력도 부족해 모두 발로 뛰고 있다. 시니어 연구자로서 해야할 일을 분명하게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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