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과 1세대 벤처人]②박성동 전 쎄트렉아이 의장
"준비된 창업만이 성공, 지식에 매몰되지 말라"
"불 꺼지지 않는 KAIST, 국대 정신 출연연되길"
대덕行 37년 "앞으로 계획 없지만···여기에 남고파"
하지만 그에겐 남은 숙제가 있는 듯해 보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만 봐도 알 수 있다. 박 전 의장은 SNS를 통해 끊임없이 발신하고 있다. 후배 창업가와 모교 카이스트,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최근엔 한국의 우주개발 청사진 염원을 담은 '쎄트렉아이러시'도 출판한 바 있다.
아직까지도 조언을 구하고자 그를 찾는 벤처인들도 끊임없다. 실제 기자가 현장을 누비며 '박 전 의장님처럼 되고 싶다'는 기업 대표들을 여럿 만났다. 여기엔 20대 사장도 포함돼 있다. 박 전 의장의 SNS 소통이 요즘말로 마냥 '꼰대'스럽지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3월 초 신세계 타워 21층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그를 만났다. 후배인 이용관 대표에게 반강제(?)로 요구해 사무실 하나를 내어 쓰고 있다는 박 전 의장. 인터뷰 내내 그의 몸과 시선은 드넓은 통유리창을 향해 있었다. 대덕연구개발특구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 "창업 다시 하라 하면···"
"모든 게 실수투성이었죠. 법인 설립, 투자유치, 하물며 직원 구성까지···연구만 할 줄 알았지 사업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어요. 저 스스로 기업가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배워본 적도 없었고요. 게다가 그때만 해도 연구단지에서 창업한다 하면 패가망신에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는 인식이었거든요. 기술개발을 하며 고객을 만나본 경험에 시장을 조금 알았던 거. 그게 다예요."
그가 지금 후배들에게 든든한 창업선배를 자처하는 이유기도 했다. '국내 최초 우주기업' 타이틀을 쥐기까진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이면엔 본인과 같은 가시밭길을 가지 말라는 애정이 녹아있었다.
"사업자등록을 하고, CEO 명함을 파면 당장 뭐가 바뀔 거 같죠? 바뀌는 건 비용밖에 없어요. 준비된 창업만이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죠. 가끔 그렇지 않은 후배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초기 스타트업 대표는 갖춰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아요. 어디서 북 잘 치고 장구 잘 치는 애들 데려온다고 되지 않아요. 대표 본인이 평타 이상은 다 쳐야죠."
그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창업의 첫발은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팀원'이다. 창업을 원하는 본인만큼이나 똑똑한, 최소한 3명이 도원결의해야 한다는 것. 창업선언문을 기점으로 똘똘 뭉친 '원팀'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인 또한 이러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말도 보태었다.
박 전 의장은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조언했다. 그는 "똑똑한 애들은 거기에 매몰돼 있다"며 "자기만의 사고 안에서 결론을 내리려 한다. 논문 쓰듯이 말이다. 논문이랑 사업은 완전히 다르다. 실험실에만 있으면 논문은 나오지만, 사업은 타인을 설득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 바라는 대덕, KAIST
"학생창업은 여전히 반대한다. 학교에서 곧바로 창업하거나 휴직하고 한 번쯤 해보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이게 아닌 이상 학도병 양산이랑 똑같다고 생각한다. 준비도 안 된 애들에게 총 하나 쥐어주고 전선으로 미는 꼴이다. 물론 살아남는 애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죽는다."
박 전 의장은 오히려 연구단지에 있는 연구원들을 거론했다. 매일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성과를 마주하는 입장에서 사업거리를 못 찾는 게 진짜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기초과학 연구자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는 매년 연구자들이 CES(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에 방문하면서 구경만 하고 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카이스트 학부 1회생으로서 모교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카이스트 연구실이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박 전 의장은 카이스트가 연구원들을 위한 기업가정신 교육장이 되길 희망했다. 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검증하는 '창업 요람'이다.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이 경기에 지면 뭐라고 하잖아요. 왜?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니깐요. 출연연 연구자들도 똑같아요. 유니폼만 다르지 국가대표에요. 당연히 국가에 실질적으로 기여해야죠. 카이스트는 어때요. 최소한 그들(교수) 정도면 실력은 보장되잖아요. 일깨워줘야 해요. 핵융합이든 핵분열이든 카이스트에서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야 해요. 카이스트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정해놓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장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대덕이었다.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다니다 만 19살에 대전을 왔죠. 학부 1학년 때 중앙과학관이 지어지고 있었고, 원래 대덕교회가 저기 보이는 아파트 뒤에 있었을 때에요. 매일 저녁에 친구들이랑 자전거 타고 예배당을 왔다 갔다 했었죠. 대전, 대덕은 제 모든 추억이 담긴 곳이에요. 앞으로 이곳에서 뭐를 할 진 잘 모르겠어요. 다른 걸 하고 싶은데 아직까진 옛날에 해왔던 거에서 벗어나기가 쉽진 않네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려고요. 아, 물론 딱 1년만 더 놀고 나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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