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과 1세대 벤처人]①김용주 레고켐 대표
1983년 대덕 첫 출근 "연구단지서 일해야겠다 맘먹어"
후배 이끌고 인재 유입, 바이오 도시 타이틀 기여
"여기만큼 좋은 곳 없지만···머물고 싶은 대덕 됐으면"
올해는 대덕연구단지 출범 50주년입니다. 1973년 연구학원도시로 지정 고시된 후 국가연구개발 집적지로 한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하며 창업 생태계가 형성되기까지 많은 분야의 인물들이 역할을 했습니다. 그중 1세대 기업인들은 딥테크 창업으로 후배들에게 영감을 주며 없는 길을 개척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대덕넷(HelloDD)은 대덕연구단지 출범 50주년을 맞아 대덕의 1세대 기업인들을 조명합니다. 분야별 대표 기업인들을 한 명씩 릴레이 보도할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
"76년도에 한국화학연구원이 생겼는데, 대학원생 때 와서 보고 꼭 이곳 연구단지에서 일해야겠다 했어요. LG화학으로 첫 출근한 날 첫 애가 100일이었는데, 지금은 42살이네요. 그간 연구단지 발전사를 모두 함께한 셈이죠."
2006년, 대덕의 LG화학(구 LG생명과학)에 근무하던 핵심 인력들이 나와 바이오 벤처를 창업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다. 레고켐은 작년 말 기준 총 12건의 대규모 기술이전을 체결하며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중국·미국 등에서 임상 진입에 성공, 글로벌제약사들과의 파트너십까지 순항 중이다. 작년 3월 미국 보스턴 현지법인 '안티바디켐 바이오사이언스(ACB)'를 설립, 자체 임상을 추진 중이다.
◆ 대덕에서의 40년
김 대표는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사장이다. 그만큼 글로벌 빅파마를 목표로 달려온 그의 40년 신약개발 인생에 여유란 없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후배들을 위하고 아낀다. 최근 그가 알테오젠, 수젠텍, 펩트론과 함께 80억원을 출연하고 이를 기반으로 솔리더스가 300억~500억원의 바이오투자 펀드를 만든 사례도 이같은 후배사랑에서 비롯됐다. 자본조달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특히 대전지역의 후배 바이오벤처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유다.
"저녁 친목자리에서 최근 바이오기업들의 자금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의기투합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회사들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기존 투자유치로 연구과제 진행에는 무리가 없는 상황이고···.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경우 후배기업들이 타격받고 나아가 자금조달 시장에서 K바이오의 생태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라 판단돼서 결정했습니다."
기자의 물음에 김 대표가 무심한 듯 답했다. 그 속엔 자기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후배 바이오벤처인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6명의 LG화학 동료들이 창업 당시 그를 따라 보따리를 싼 이유를 조금은 알 듯했다. 김 대표는 박태교 전 최고기술책임자가 회사를 나가 인투셀을 창업할 당시 창업자금을 선뜻 투자하기도 했다.
◆ "앞으로 대덕은···"
"현장을 지켜야 롱런합니다. 대덕만큼 사업하기 좋은 데가 없어요. 제가 미국 샌디에이고에 3년 있었는데, 거기 못지않게 대덕이 좋습니다. 여기 인프라가 얼마나 좋아요.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모여있어야 해요."
다만 그는 "외형적인 것만 좋다"고 단언했다.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속속 대전을 떠나고 있지만, 특구나 대전시는 이에 대해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들이 특구를 계속 떠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깊이 생각해봐야 해요. 젊은이들을 데려오려면 그들의 실질적인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합니다. 여기서 결혼해서 애까지 낳고 싶게끔 해줘야죠. 그런 부분에선 아쉬움이 큽니다. 올해가 대덕특구 50주년인데···기업이 머물고 싶은 동네가 됐으면 해요."
◆ "신약개발 40년, 참 재밌게 살았다"
김 대표의 눈빛과 표정에서 강단이 묻어났다. 칠순을 앞둔 나이라곤 믿기지 않을 패기였다. 이런 그의 확실하고 강인한 비전엔 두 명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남석 박사와 심상철 KAIST 교수다.
그에 따르면 최 박사는 김 대표에게 지도자의 덕목을 일깨워줬다. 최 박사는 지도자란 최소 10년 앞을 내다보고 동료들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했다. 좋은 일엔 뒤로 물러나고 나쁜 일엔 앞장서야 하는 게 지도자임을 알려줬다. 김 대표는 "시대와 상관없이 꿰뚫는 조언"이라고 되돌아봤다.
심 교수는 김 대표의 지도교수였다. 당시 심 교수는 흔히 빡세기로 소문나있었다. 김 대표의 결혼 소식에도 비교적 시간이 널널한 연말에 하라고 할 정도였다. 문제를 물어보면 "니 일"이라며 한 번도 답을 알려준 적이 없다고 한다. 김 대표는 "화학의 재미란 걸 처음 알려주신 분이자, 내 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해주신 분"이라고 추억했다.
"우린 끼인세대에요. 밑에선 구닥다리라 불리고 위에선 아직 멀었다고 하는 세대죠. 그래도 전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당시 LG화학은 선진국 기술 받아오려고 굽신거리고, 심지어 받아와도 따라 하질 못했어요. 지금은 강대국들과 어깨는 부딪히잖아요. 미국은 100년 했을 이 모든 역사를 저는 한 번에 겪었으니 얼마나 좋아요. 신약개발 40년을 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대한민국이 앞으로 살아갈 길이잖요. 잘 닦아서 후배들에게 물려줘야죠."
그는 글로벌 빅파마를 향한 길목 어디에서든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는 순간 회사는 망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만큼 단시간에 이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특구에서 보낸 지난 40여년을 돌이켜보면 참 재밌게 산 거 같아요. 남들은 힘들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저는 한 번도 힘들거나 지루했던 적이 없어요. 나머지 시간들도 지난 40년처럼 즐겁게 잘 놀다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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