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태 CEVI 단장 "나눠주기식 지원, 임상 흐지부지"
K방역 주인공 정부 아닌 메르스 시기 연구한 플랫폼
"출연연 개발 물질, 민간 중심 네트워크 예산 투입 필요"

오랜기간 감염병을 연구해온 연구자가 '정부주도'의 나눠주기식 지원으로는 백신, 치료제가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일갈했다.[사진= 이미지 투데이]
오랜기간 감염병을 연구해온 연구자가 '정부주도'의 나눠주기식 지원으로는 백신, 치료제가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일갈했다.[사진= 이미지 투데이]
"한국산 백신요? 못나와요. 정부의 찔끔 쪼개주기식 예산으로 후보물질 임상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 등 감염병은 점점 짧은 주기로 올텐데 아마 다음 감염병에서도 한국은 백신없이 지금처럼 우와좌왕만 할 것입니다. 백신도 결국 자본력 싸움이에요."

그는 작심한 듯 일갈했다. 신종바이러스(CEVI)융합연구단장으로 오랜기간 감염병 연구를 해온 김범태 단장은 정부의 나눠주기식 예산과 규제 우선 제도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가 모든 걸 틀어쥐고 줄 세우기를 반복하는 한 한국은 다음번 감염병에서도 백신 후진국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코로나19 백신으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면에 미국 정부의 사전 규제 제거, 빠른 임상 허가, 임상 지원 등 선제적 대응이 있었던 점을 빗댄 지적이다. 

코로나19 확산은 국가 간 차이를 극명하게 했다. 백신 접종 여부는 가진 나라와 갖지 못한 나라로 구분됐다. 선진국은 남아서 폐기할 정도로 백신을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발생 초기 K방역 모범국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백신 확보는 더디기만 했다. 

김 단장은 "K방역이 가능했던 것은 메르스 시기 진단분야 연구가 이뤄졌고 플랫폼이 있어서 빠르게 나올 수 있었다"면서 "백신이 나올 수 없는 이유는 앞 단계만 지원하다 흐지부지 되면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음 감염병이 오면 우리는 또 다시 백신, 치료제 후진국이 될 것이다. 개발한다고만 하고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후보물질이 개발되면 상품화가 될 수 있는 지원도 필요한데 여전히 쪼개기식 예산으로 그 다음 단계는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문제를 정부에 이야기 하면 그 다음 회의부터 부르지도 않더라. 아마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범태 단장은 국가연구개발 중심축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감염병 연구를 맡은 CEVI연구단을 이끌어왔다. 그는 지난해 말 정년을 마쳤다. 하지만 CEVI연구단은 종료시점까지 단장을 맡게 된다. 김 단장은 그동안 감염병 연구를 주도한 과학자로서 아쉬웠던 일, 감염병 대응을 위한 조언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 나눠주기식 지원과 줄세우기? 정부 역할 아니다

김범태 CEVI 단장이 코로나19에 노출돼 감염된 세포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사진= 대덕넷 DB]
김범태 CEVI 단장이 코로나19에 노출돼 감염된 세포 사진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사진= 대덕넷 DB]
"화이자, 모더나가 발빠르게 코로나19 백신을 내놓을 수 있는데는 미국 정부의 역할이 컸어요. 정부가 사전에 규제를 없애며 임상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죠. 그리고 미국 정부의 지원도 2조원 규모가 넘으면서 빅파마기업들은 자본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륙별, 인종별로 임상을 실시했습니다."

김 단장은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개발 전략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 바이오벤처 바이오엔테크와 화이자의 공동개발 전략에 주목할 것을 조언한다. 한국의 특성상 당장 빅파마 전략으로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화이자의 mRNA백신은 독일 바이오회사와의 공동연구로 탄생했다. 그는 "예전에는 글로벌 제약사가 다 했지만 지금은 기술력 있는 벤처를 발굴해 물질을 이전 받고 그들은 임상 중심으로 한다. 독일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 화이자에 기술을 이전하고 화이자가 공동연구를 통해 백신을 개발하며 임상에 들어갔다"면서 "화이자는 자신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정받는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감염병 대응도 결국 네트워크와 자본력이라고 분석했다. 그에 의하면 국내 산업 규모는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제약분야는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는 그 원인으로 여전히 개인소유로 인식하는 제약사와 정부의 뿌리기식 지원을 지적했다. 예산 규모도 작은데 나눠주기식으로 지원하면서 임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올해 보건의료 연구개발 예산은 1조4687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402억원이 증가했지만 감염병 관련 예산은 5500억원 정도. 감염병 위기대응 역량 강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임상시험 성공률 제고를 위한 전임상, 임상 단계 연구 지원이 다 포함됐다.

김 단장은  "우리가 이미 경험했듯이 감염병은 지속해 발생한다. 그런데 정부는 5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그나마 나눠주기식으로 지원한다"면서 "지금 임상에 들어갔다는 회사들도 실제 백신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그는 실제 임상을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현재 예산으로 임상이 가능할까 의문인데 감염병이 종료되면 누구도 확인하지 않고 흐지부지 될 것이다. 정부주도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K방역의 공도 정부가 아닌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진단키트가 빨리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진단 중심 기업들이 사스, 메르스가 이어지며 연구개발을 지속해 온 덕분이다. CEVI에서도 기존 감염병이었던 메르스 연구개발 플랫폼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성과가 가능했다"면서 "정부는 긴급사용승인 등 나름 역할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기업들을 줄세우기 했다. 데이터를 확인하고 긴급승인을 하면 되는데 줄세우기 하면서 기업들이 해외에서 먼저 승인을 받는 등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고 질타했다. 

김 단장은 고질적인 반짝 지원 예산 문제도 꼽았다. 그는 "우리 연구단은 메르스 연구성과로 후보물질이 나왔지만 더 이상 예산 투입이 안돼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코로나로 연구개발이 이어져 후보물질이 사장되지 않았지만 이처럼 반짝하는 식의 지원으로는 절대 감염병 백신, 치료제가 나올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생물안전 3등급(BL3) 시설의 나눠주기식 설치도 문제로 봤다. 그는 BL3 시설 확대에 앞서 BL4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BL4 실험실은 에볼라 등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를 다룬다. 현재 국내 BL4 시설은 질병관리청 단 한곳에만 설치돼 있다.

김 단장은 "BL3 시설 확대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너무 여기저기 나눠주기식이다. 유지비, 운영인력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연간 1억원이 넘는 운영비가 나오지 않으면 시설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나눠주기식으로는 감염병 대응이 어렵다. 정부출연연기관에 BL4 실험실 건립 추진이 우선"이라고 역설했다. 

◆ 제약도 브랜드 가치

한국은 감염병 대응 백신, 치료제 개발이 불가능한 것일까. 김 단장은 제약분야도 브랜드가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가 분석한 국내 제약사는 지나치게 개인화 돼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M&A가 안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삼성의 휴대폰, LG의 가전, 현대의 자동차처럼 제약분야도 브랜드 가치를 가진 기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내 제약사는 바이오 중소기업 수준이다. 개인화 돼 글로벌 제약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감염병이 다시 오면 역시 우리는 백신 확보를 위해 우왕좌왕 할 것"이라면서 "국내 연구기관에서는 초기연구를 빠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물질의 제품화 단계는 그동안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가 아닌 실질적인 제품화를 할 수 있는 민간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들이 바이오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긍정적이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제조만 하고 있는데 이들 대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국내 기업도 빅파마로 올라 설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예측했다.

국내 대형 병원들의 임상 역량도 높이 평가했다. 김 단장에 의하면 실제 글로벌 빅파마들의 임상이 국내 대형 병원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다. 김 단장은 "국내 의료기기의 성능이 좋고 한국에서 나오는 데이터 신뢰성이 높다"면서 "연구개발 성과를 글로벌 네트워크가 탄탄한 대기업과 병원 클러스터를 통해 제품화 하면 우리나라도 다음 감염병 대응 백신 개발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단장은 끝으로 "정부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 백신 하나 개발하는데 예산이 얼마인줄 아는가? 3조원 규모다. 5000억원 예산으로 다 할 수 없다"면서 "출연연, 대학이 개발하면 민간에서 제품화 하고 임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눠주기가 아니라 똘똘한 후보물질을 선정해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야 백신 후진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부는 규제, 허가 등 걷어 낼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은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구매로 시장을 확보했다"면서 "코로나초기 치료제로 렘데스비르가 쓰인것도 일종의 전략이다. 감염병도 결국 자본력이다. 정부는 예산을 여기저기 뿌리기보다 민간에 맡기고 우리도 시장에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CEVI연구단은 6년여의 연구과정을 마치고 내년 7월 공식 종료된다. 메르스 연구개발 플랫폼을 바탕으로 코로나19 진단,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해 기업에 이전했다. 그동안 함께 했던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은 각자의 위치로 복귀한다.

CEVI융합연구단이 기존에 알려진 사스와 메르스 중화항체 중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해 증식을 막을 수 있는 중화항체를 찾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CEVI융합연구단 단체사진.[사진= 대덕넷 DB]
CEVI융합연구단이 기존에 알려진 사스와 메르스 중화항체 중 코로나19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해 증식을 막을 수 있는 중화항체를 찾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CEVI융합연구단 단체사진.[사진= 대덕넷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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