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1월13일 경제개발 선언 이후 한국사는 성취의 역사
국민소득 1인당 1백 달러 후진국이 3만 달러 선진국으로 도약
시대정신 60년전 불균형 성장에서, 소외지역 역불균형 성장으로 변화
과학기술, 개발연대 '수단'에서 미래 운명 좌우 '주체'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주역' 교체를 

울산공업탑 사진. 1962년 울산공단 기공은 한국 경제성장의 초석을 놓는 일이었다. 이날 치사에서 박정희 의장은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라고 밝혔다.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말이다.[사진= 이석봉 기자] 
울산공업탑 사진. 1962년 울산공단 기공은 한국 경제성장의 초석을 놓는 일이었다. 이날 치사에서 박정희 의장은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라고 밝혔다. 우리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말이다.[사진= 이석봉 기자] 
우리나라는 독특한 나라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게 하나 있다. 경제개발을 시작한 날이다. 산업 선발국인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도 산업화는 시작했지만 정확한 일자는 없다. 여러 원인과 결과가 어우러지며 '혁명'으로 불릴 따름이다.

한국은 경제개발 탄생일이 있다. 바로 1962년1월13일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전이다. 혁명 정부는 경제활력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고뇌를 하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운다. 사회주의 국가는 물론 일본 등 후발 산업국들이 취한 정책을 본뜬 것이다. 나중에 중국도 이 방식을 따른다.

여하튼 우리는 이날 "지금부터 경제개발을 시작합니다"하고 선포를 했다. 바로 이어서 27일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결정 공포하고, 2월3일에는 울산공업단지 기공식을 갖는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스피드이다. 

1차 5개년 계획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 시도한 것이고, 사공이 많았다. 그래서 시행 2년만에 수정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당초 예상보다 훨씬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4~5%대 성장을 계획했으나 결과는 7%대. 1차 성공 체험을 기반으로 2, 3차 등등 가속을 했다. IMF 직전인 1996년까지 7차 5개년 계획을 하고 경제계획은 막을 내린다. 군사정권의 유산이란 멍에를 씌우고 계획경제를 반대한다는 IMF의 권고를 핑계로 삼아서.

그럼에도 1962년 1월13일이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시작이란 팩트는 바꿀 수 없다. 올해 1월13일은 더욱 뜻깊다. 6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로 환갑에 해당하고, 두 세대가 된 것이다. 이런 절목에 사람은 자기 인생을 뒤돌아 보고 미래를 계획한다. 한국 경제도 지난 60년의 성취와 과제를 회고하고 미래를 내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60년의 경제개발사는 여러 자료들이 있어 굳이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본다. 10년전인 50주년때는 많은 기사가 나왔다. 관련 기사들을 링크해둔다.

[관련기사 1]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출범 50주년… 선진국 문턱에 선 대한민국

[관련기사 2] <경제개발50년> '기적 개척' 주역들의 회고

간략하게 보면 1차 때는 경공업을 시작했고, 기간산업을 확충한다. 울산공단도 만들었다. 2차 때는 사회변화를 위해 새마을운동을 시작하고, 경부고속도로를 준공하며, 포철도 기공했다. 3차는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했다. 4차는 기술혁신을, 5차때는 성장에서 안정으로 전환, 6차때는 국민복지 증강, 7차때는 개방 국제화를 표방했다. 수출 주도 성장을 꾀해 1964년 1억 달러 수출, 1970년도 10억 달러 수출, 1977년 100억 달러 수출, 1995년 1000억 달러 수출의 금자탑을 쌓아왔다. 2011년에는 무역규모가 수출입을 합쳐 1조 달러를 기록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무역의 날을 1억 달러 수출 기념인 1964년 11월30일에서 2012년부터 12월5일로 변경했다.

한국 경제 성취의 장정에서 기업인과 공무원,근로자들의 노고가 큰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과학기술인들의 역할은 사실 가려져 있다.

우리가 경공업에서 중화학 공업, 정보산업으로 부가가치가 높아질수록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커졌다. 이에 발맞춰 정부출연연과 대학 등에서 산업계와 연관되며 외국 기술을 국산화시키고, 이후에는 우리만의 기술 개발로 경쟁력 높은 제품들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경제개발 계획이 1962년에 시작하고 바로 만든 것이 과학기술정보원이다. 오늘날 KISTI의 출발점이다. 과학기술정보의 중요성을 감안해 만든 것이고, 초대 원장이 나중에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는 이후락씨이다. 1966년에는 종합연구원인 KIST를 설립하고, 1967년에는 과기처를 만든다. 과기처 설립 직전에 과학기술진흥법을 만들어 과학기술 강화를 꾀했다.

KIST의 초기 과학자들은 해외 유학파들을 유치해 구성됐다. 뒤에 유치 과학자라 불리는 이들은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국방 등등 국부를 늘리고 강국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만들고 계획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KIST가 성공적으로 활동하며 보다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대덕연구단지가 1970년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이때도 유치 과학자들이 첨단기술 국산화 등에 큰 역할을 한다. 1980년대 들어서는 특정연구개발 사업이라 하여 원천 및 미래 지향 기술 개발을 시작한다. 이후 1990년대에는 G7 프로젝트라 하여 선도기술 개발에 투자를 했다. 이런 연구들은 고스란히 산업계로 이관되며 제품 경쟁력을 강화에 일조했다.

2000년대 들어와 정보화가 시작되고, 이제 4차 산업혁명, 메타버스, 우주 시대를 맞아 과학기술은 이제 사회의 일부분이 아닌 국방과 외교 등 국가 전체의 생존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 요소가 됐다. 그런 만큼 과학자들도 과거에 경제개발 시대에 전체의 일부분으로서 수단 역할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국가의 방향을 숙고하고, 결정하며, 결과를 만들어 내는 '주체'로서의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겠다.

지난 60년을 뒤돌아 보았을 때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다르다. 60년전 경제개발을 시작하며 내건 명분의 하나가 '불균형 성장'이었다. 자원이 흩어져 있으니 이를 발전 가능한 곳으로 모아 이곳부터 바꿔 나간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지역이 수도권이고, 생산기지로서 동남권에 에너지를 투입했다.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개발의 중심지는 상전벽해로 바뀌었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높아졌다.

전체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격차가 커졌다. 불균형 성장이란 말처럼 특정 지역은 10의 발전이 있었다면 다른 지역은 2, 3으로 미미했다. 급기야 수도권에 모든 인프라와 자원, 사람이 집중되며 지역은 생존의 위기를 맞이했다. 지역 도시권역은 괜찮지만 농어촌 등은 궤멸이 시작됐고, 광역시 등도 시간문제로 소멸을 우려하는게 현실이다.

경제개발을 시작할 당시의 시대정신은 불균형 성장을 통한 선부론(先富論)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민 소득 1인당 100달러 시대에는 당연한 결정이다. 그러나 3만 달러가 넘은 시대에, 더군다나 그 결과로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지역 상황을 감안하면 이제는 불균형에서 역불균형으로 중심추가 옮겨와야 한다.

이제는 중앙 언론들도 인지하고, 수도권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위기감을 느끼는 듯하다. 그동안은 지역의 문제를 해당 지역의 경쟁력 취약으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이 문제가 심화 확대되며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고, 수도권으로 집중하며, 그 결과 수도권에서의 복잡도는 증가하고, 저출산으로 이어졌다. 이 경향이 지속되면 국가 소멸로 연결될 것이라는 인식들이 공감대를 얻기 시작했다.

선진국들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거의 없다. 어느 지역에 살던 소득과 문화 등에 있어 큰 차가 없다. 그러기에 분산돼서 각자의 특성을 살리고, 지역의 특화된 산업을 기반으로 여유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 국토가 넓지 않은만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이웃 일본이나 중국 보다는 더 좋은 여건이기도 하다.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3000km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직사각형에 가까워 훨씬 효율적으로 쓸수 있다. 동해시에서 서해 태안군까지 360km, 남쪽 땅끝마을에서 북쪽 강원도 양구까지 551km이다. 네모형인만큼 바둑판 방식으로 연결이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메타버스 시대에는 이제 수도권 일극에 집중해 사는 것은 그닥 의미가 없다. 사이버 상에 살수 있는 만큼 굳이 많은 비효율과 저출산, 국가 소멸이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수도권만 고집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기술자들의 의식 변화도 중요하다. 그동안은 만들어진 정책과 연구비를 바라보며 그에 맞춰 연구를 해왔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이 시대 변화를 선도하는 주체로서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미 남들보다 앞서서 지역에서 주도적 연구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다. 

경제개발 60주년은 성취의 역사였다. 과학계의 역할도 컸다. 그런 가운데 미래는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방식으로 계속 가면 국가 소멸로 이어진다는 예측이 이미 나왔다. 미래 사회는 과학기술이 국가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이다. 과학자들의 자세도 수동적에서 보다 능동적, 주도적 자세로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의사결정권자가 많이 돼야 하고,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도 전공 못잖게 중요해졌다. 

시대 정신도 불균형 성장에서 그동안 발전에서 소외받은 지역들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전체적인 균형을 찾아가는 역불균형 성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폐허에서 이뤄온 성공 경험이 있다, 앞으로도 잘해낼 것으로 예상들 한다.
 
경제개발 60주년을 맞이하며 과학계의 변신을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제 두 달도 안남은 선거에서 20대 대통령을 누구로 선택할 것인가도 미래를 내다보며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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