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재관 박사, 한강의 기적 있기까지 산업화 설계
철강공업 육성방안·중화학·조선·자동차·국가표준 수립
"김 박사 제안서 받은 대통령, 과학자 신뢰하며 울타리"
후배들, "평생 대한민국 발전위해 열정·헌신한 과학자"

 대한민국 산업화 설계 주역 김재관 박사(사진 맨 왼쪽)가 포스코 설립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대한민국 산업화 설계 주역 김재관 박사(사진 맨 왼쪽)가 포스코 설립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대선전이 뜨겁다. 후보들은 각종 공약을 내세우며 유권자의 마음 모으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과학분야 공약도 빼놓지 않는다. 기술패권, 국방 안보 등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며 대선 후보들도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겠다고 약속한 듯 강조한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이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의 제안을 얼마나 인지하고 고민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진행된 공동토론회 등에서 과학기술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언급된 부분도 상대 후보를 끌어내리는 방편으로 이용했다. 현장연구자들은 대선후보 대다수에서 과학기술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과학기술 기반의 한국의 미래가 가능할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달 초 한국 산업화의 숨은 주역이었던 과학자를 소개하는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이라는 책이 나왔다. 산업화의 밑그림을 설계하고 개발해야할 필수 기술을 대통령에게 제안 한 과학자 김재관 박사 이야기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발전 토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계획, 김학렬 부총리, 최형섭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KIST 초대 원장)의 과학기술 설계, 박태준 회장의 포스코와 POSTECH 건립, 정주영, 이병철 기업인 등만 많이 회자됐던게 사실이다. 이 책은 그 이면의 과학자의 역할에 주목했다.

김재관 박사는 산업화를 위한 한국종합제철소 건립, 중화학공업, 국산 자동차 기술개발, 그리고 한국의 시간과 시각, 국가 표준을 마련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더 나은 근무 조건의 독일 연구소와 독일 기업 자리를 마다하고 해외유치 1호 과학자 18명의 한 사람으로 고국행을 선택했다. 대통령은 과학자에게 든든한 신뢰를 보냈고 과학자는 국가 발전에 기꺼이 헌신했다. 그는 산업화 이후 선진화까지 국가의 100년 미래를 설계했다. 해외선진 과학을 먼저 접하며 가난한 고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염원했던 과학자 김재관 박사의 집념이었다.

그들의 뜨거운 헌신으로 한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속가능한가에는 의문이 남는게 사실이다. 때문에 과학기술계에서는 3월 9일 치러지는 20대 대선에 관심이 높다. 대선후보자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대통령과 과학자의 통찰력, 신뢰, 실행이 어떻게 작동되며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보여준다. 과학계 인사들은 김재관 박사를 산업화·선진화의 숨은 영웅, 과학자로 평가하며 일독을 권했다. 

◆ 독일 유학생 '종합제철 기획안' 대통령에게 

1964년 독일 뮌헨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교민, 유학생 80여명과 조찬 모임을 가졌다. 이날 김재관 박사는 독일의 선진 산업을 보면서 구상한 '한국 철강산업 기획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설명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2년뒤 KIST를 설립하고 김재관 박사는 1호 해외유치과학자로 한국으로 돌아와 철강, 중화학, 조선, 자동차, 표준화에 기여한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1964년 독일 뮌헨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교민, 유학생 80여명과 조찬 모임을 가졌다. 이날 김재관 박사는 독일의 선진 산업을 보면서 구상한 '한국 철강산업 기획안'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설명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2년뒤 KIST를 설립하고 김재관 박사는 1호 해외유치과학자로 한국으로 돌아와 철강, 중화학, 조선, 자동차, 표준화에 기여한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오늘날 한국의 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오징어와 가발, 뜨개질 제품을 수출하던 나라가 자동차, 조선을 넘어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최고 실력을 인정받으며 수출을 이끌고 있다. 산업화에 이어 선진화로 첨단 과학기술 강국 '대한민국'으로 우뚝섰다.

'한강의 기적'은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다. 독일에 유학중이던 김재관 박사가 뮌헨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리 준비한 종합제철육성 기획안을 전달하며 시작됐다. 대통령은 그의 기획안을 허투로 여기지 않고 실행에 힘을 실어주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위상이 달라지는 기반이 된 것이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저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

1964년 12월. 대통령 박정희는 독일(당시 서독) 방문길에 오른다. 대통령과 파독 광부·간호사의 눈물, 한국의 고속도로 구상(독일 아우토반 경험)이 시작된 방문이다. 귀로에 오르기전 박정희 대통령은 뮌헨 숙소에서 독일 유학생과 교민을 위한 조찬을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하고 싶을 말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유학생들은 사전에 국가를 위한 발전적 제안을 하자고 합의를 한 생태였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재관 박사는 국가 건설에 필수인 '한국의 철강공업 육성방안'을 대통령에게 전달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마움을 표하며 "꼭 고려하겠다" 말했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발전의 단초가 된 역사의 한 순간이다.

김재관 박사는 2년 뒤 KIST가 설립되며 1호유치과학자로 귀국한다. 대통령은 김 박사의 기획안을 허투로 여기지 않았다. 김재관 박사가 그린 종합제철소 고로는 103만톤. 그동안 계획안이 50만톤 미만이었던것에 비해 그는 미래를 간파했다. 대일 청구권자금 협상 전면에 나선 김재관 박사는 103만톤 규모의 제철소 설립안을 관철 시킨다. 포스코의 고로 1호의 탄생(이 고로는 지난해 퇴역했다)이다. 

김재관 박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께서 KIST 계획안을 가지고 제철사업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전담팀을 꾸려 기존과 다른 새로운 계획안을 만들었다"면서 "103만톤으로 하면서 한국의 산업발전 토대가 되는 종합제철소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은 만찬 등 자리에서도 만나게 되면 '김 박사 잘 계십니까'라며 각별한 관심을 표할 정도로 과학자를 신뢰했다"고 덧붙였다.

1호 해외유치과학자 18명이 KIST 설립과 함께 고국에서 연구개발을 시작한다. 이들은 당시 대학교수의 3배 월급, 자율적인 연구환경을 보장 받았다. 대통령이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그 이면에는 월남에 파병된 젊은 청년들의 피의 값,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며 고국으로 돈을 송금한 젊은이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대통령의 고민, 과학자들의 열정, 헌신이 오늘날 한국의 산업화의 기반이 됐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1호 해외유치과학자 18명이 KIST 설립과 함께 고국에서 연구개발을 시작한다. 이들은 당시 대학교수의 3배 월급, 자율적인 연구환경을 보장 받았다. 대통령이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됐다. 그 이면에는 월남에 파병된 젊은 청년들의 피의 값,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며 고국으로 돈을 송금한 젊은이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대통령의 고민, 과학자들의 열정, 헌신이 오늘날 한국의 산업화의 기반이 됐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 자동차 기술 독립을 외치다

그는 과학자다. 기계공학으로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독 뮌헨공대 금속(기계재료) 연구소 연구원, 데마크(DEMAG) 기업 기획부에 근무한 경험도 있다. 해외에서 산학연을 거치고 KIST 연구부장과 실장, ADD(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 한국표준과학연구원(당시 한국표준연구소) 원장을 역임했다. 

1972년 청와대 한켠에서 영화가 상영된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부총리 등 각 부처 장관이 함께했다. 상영되는 영화는 북한의 공업화 홍보영상. 박정희 대통령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무거운 얼굴을 했다. 북한의 경제력이 한국을 압도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결단을 내린다. 경공업이 아닌 중화학공업에 속도를 내기로 한것. 그리고 그 중심에 김재관 박사를 세운다. 그를 상공부 초대 중공업차관보로 임명한다. 중화학과 방위산업을 동시에 일으키겠다는 리더의 복안이었다.

중공업차관보를 맡기 이전부터 김재관 박사는 중화학공업 구상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종합제철에 이어 핵심공장 건설, 조선, 그리고 자동차 산업이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자동차 모델 '포니(PONY)'를 구상한다. 시발자동차, 새나라 자동차 회사들이 있었지만 자체기술을 개발하지 않아 수입부품 조립으로 수익성이 낮았다.

김재관 박사는 국산 자동차 '표준형 차제 개발사업 기획서'를 제시한다. 3년에 걸친 기술개발 로드맵과 예산까지 상세히 담았다. 하지만 모두들 "자전거도 못만드는 나라에서 자동차를 만들겠냐"며 회의적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였으니 반대가 당연했다. 김재관 박사는 굽히지 않고 '자동차 기술 독립'을 외쳤다. 대통령도 고민 끝에 김재관을 신뢰하며 결단을 내린다. 

500원 지폐 거북선으로 조선업을 시작한 정주영 회장이었지만 자동차 산업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게 사실이다. 정주영 회장 역시 김재관 박사를 신뢰하며 해보기로 결심한다. 오늘날 한국이 자동차 강국으로 올라선 시발점이다.

"자전거도 못만드는 나라에서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느냐"며 모두가 반대했지만 김재관 박사는 산업화를 위해 국산자동차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대통령에게 외쳤다. 대통령은 고민 끝에 그의 손을 들어준다. 정주영 회장과 김재관 박사의 의기투합으로 첫 선을 보인 국산 자동차 포니1 모델.[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자전거도 못만드는 나라에서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느냐"며 모두가 반대했지만 김재관 박사는 산업화를 위해 국산자동차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대통령에게 외쳤다. 대통령은 고민 끝에 그의 손을 들어준다. 정주영 회장과 김재관 박사의 의기투합으로 첫 선을 보인 국산 자동차 포니1 모델.[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 선진화, 국가표준

1965년 KIST 설립의 계기였던 미국 존슨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만남. 존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했다. 당시 우리는 대통령 전용 비행기도 없어 미국 대통령이 에어포스 원을 보내줬다.  존슨 대통령은 월남 파병을 제안하며 그 대가로 막대한 원조를 제시했다. 담배 세갑을 피울정도로 고민끝에 박정희 대통령은 파병을 결심한다. 

젊은 청년들의 피의 대가는 KIST 건립자금이 되고 연구자들의 월급이 됐다. 최형섭 박사가 초대 소장으로 임명되고 18명의 해외 유치과학자를 유치한다. 김재관 박사는 대통령의 지시로 그 안에 포함됐다. 이들은 대통령의 절대적 빽을 방패 삼아 연구개발에만 집중했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이 본격 싹을 틔우며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기반이 됐다.

1966년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답방하며 선물로 남긴게 있다. 미국표준규격(NBS)이 제공한 진짜 도량형 표준기다. 한국은 1972년이 되도록 표준 제도가 없었다. 기준없이 만들어진 제품은 국제무대에서 인정 받지 못했다. 미국 NBS 조사단은 한국에 측정표준기관 설립을 제안한다. 500만 달러 원조까지 제공하면서 말이다(KIST 설립시 1000만 달러 였으니 중요도를 짐작할만 하다).

김재관 박사는 1974년 상공부 중공업차관보에서 국립공업표준시험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1975년 한국표준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다. 제철산업, 조선산업 등 중화학과 자동차 산업의 근간을 마련한 그는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다. 100년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 NBS와 같은 수준의 1차 표준기관 설립을 관철시켰다. 그리고 한국만의 표준 시간이 없던 시기 국가 표준 시간과 시각을 마련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충북도청 순시를 마치고 일정에 없던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한다. 대덕연구단지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로 박 대통령은 건설 현황을 물었고 유치과학자와 가족이 불편하지 않도록 후생복지 등을 지시했다. 과학을 중요시 여긴 대통령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연구현장을 방문했던 대통령은 그날 유명을 달리한다.

김재관 박사는 정권이 바뀌며 어수선한 가운데도 대한민국의 산업 지속성을 위한 국가표준 체계 수립에 동분서주한다. 타의에 의해 표준연을 떠났지만 국가 표준체계 필요성을 국회 등에 알리며 1987년 국가표준제도 헌법개정안, 1997년 국가표준기본법 제정을 건의하고 제정토록 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 초석을 다시금 마련한 것이다. 

1979년 10월 26일(이날은 박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한 날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충북도청 방문 후 일정에 없던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건설현황을 질문하고 유치과학자의 후생복지를 챙겼다. 사진은 표준연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관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시간을 맞추고 있는 모습.[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1979년 10월 26일(이날은 박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한 날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충북도청 방문 후 일정에 없던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건설현황을 질문하고 유치과학자의 후생복지를 챙겼다. 사진은 표준연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관 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시간을 맞추고 있는 모습.[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 후배들이 기억하는 '김재관 박사'

"뮌헨대학 선배다. 그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강인한 의지력과 집념을 지닌 분이었다. 우리는 현지 신문기사와 잘 들리지 않는 단파방송에 의존해 나라 걱정을 하던 사이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뮌헨에 방문했을 당시 한줄로 서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김재관 박사가 직접 제본한 두꺼운 책을 꺼내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철강공업육성방안이었다."(채영복 전 과학기술부장관)

"개인적 삶의 다난한 인생행로에 의연해 하시고, 우리사회 갈등의 기쁨, 슬픔, 외로움에도 따뜻한 미소 짓고, 산업의 골격인 철강산업의 꿈에 역사의 씨앗 뿌리시고, 디지털 표준화를 위해 표준법 제정의 횃불이 되시고, 역사의 풍상에 초연하는 바위 산정의 바위가 되어, 대한민국 역사 속에 과학 깃발 휘날리며 축복 속에 영원하소서."(이상희 전 과학기술부장관)

"첫 직장이 표준연이었는데 입소하자마자 미국 국립표준국 주재 기술조정관으로 발령이 났다. 김재관 박사님은 표준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다. 대한민국의 시간, 시각 표준을 수립하며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셨다. 그는 항상 남들이 보지 못하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하는 분이었다. 김재관 박사님이 품으셨던 나라 사랑과 실천의 모습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일생에 큰 행운이었다."(정낙삼 표준연 명예연구원)

"대한민국 근대화의 숨은 영웅이다. 이 책은 한강의 기적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보여주는 숨겨진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100년을 바라보며 기획한 한국의 철강, 자동차, 조선, 국가표준 등 한 과학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 과학자의 통찰이 어떻게 기적을 이뤘는지 알 수 있다. 한 과학자의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과 열정과 헌신이 한강의 기적 성취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밝혀 주고 있다.(신성철 전 KAIST 총장)

김재관 박사의 역할을 소개한 책.[이미지= 김재관 박사 기념관]
김재관 박사의 역할을 소개한 책.[이미지= 김재관 박사 기념관]
◆ 기사 참고 자료
▲홍하상 작가 '뮌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기적_ 한국산업화 설계자 김재관'
김재관 박사 기념관 자료와 사진.
김재관 박사의 VR 기념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김재관 박사의 VR 기념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김재관 박사의 한국철강산업 기획으로 탄생한 103만톤의 철을 생산할 수 있는 포스코 1호 고로 모습. 지난해 수명을 다해 퇴역했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김재관 박사의 한국철강산업 기획으로 탄생한 103만톤의 철을 생산할 수 있는 포스코 1호 고로 모습. 지난해 수명을 다해 퇴역했다.[사진= 김재관 박사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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