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2030]②김영기 에스엠인스트루먼트 대표
항우연 신진 연구자서 기업인···17년간 외길 인생  
"이젠 대학 입시 준비할 나이, 더 큰 물에서 놀아야"
"연구자出창업가 선배 역할하고파, 성공해야 하는 이유"

지난 12월 말 만난 김영기 에스엠인스트루먼트 대표. 그가 자체개발한 휴대용 초음파 음향카메라를 들고 있다. 이는 미세한 소리마저 포착, 화면에 시각적으로 표시해준다. 가스 누출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된다. [사진=이유진 기자]
지난 12월 말 만난 김영기 에스엠인스트루먼트 대표. 그가 자체개발한 휴대용 초음파 음향카메라를 들고 있다. 이는 미세한 소리마저 포착, 화면에 시각적으로 표시해준다. 가스 누출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된다. [사진=이유진 기자]
"너 무슨 사고 쳤어?"

17년 전,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던 한 우수연구원이 창업에 나서겠다고 결심했다.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던 음향 관련 시설을 3분의 1 가격, 그것도 전 공정의 80~90% 기술을 전부 국산화해 구축한 인물이었다.

유망한 신진과학자가 사직서를 내겠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주변 인식도 당연했다. 개의치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잘 알았고, 그 수요를 장비로 개발하면 관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17년이 됐네요. 사람으로 치면 슬슬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할 때죠. 그간 쌓아온 경험으로 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인 사회진출을 해야 할 때입니다."

김영기 에스엠인스트루먼트 대표는 덤덤하면서도 결의에 차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려면 성적이 좋아야 할텐데"라며 걱정했지만, 그간의 두꺼운 포트폴리오가 이를 대신했다. 어딘가 모르게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그의 눈빛은 17년의 저력을 보여줬다.    

◆ 대덕의 1세대 소리기업
 

회사 설립 초반 김영기 대표. 그는 2008년 국내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의 기초과학실험 우주임무를 위해 우주인용 소음계측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사진=대덕넷DB]
회사 설립 초반 김영기 대표. 그는 2008년 국내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의 기초과학실험 우주임무를 위해 우주인용 소음계측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사진=대덕넷DB]
에스엠인스트루먼트는 대덕의 1세대 소리기업이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초,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재직하며 '음향가진시설' 구축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 시설은 위성 등 소음에 예민한 장치들을 대상으로 소음환경을 측정하는 용도다.

음향가진시설 기술은 흔하지 않았다. 브라질 유수 연구원마저 미국에 60억원을 주며 설치를 요청할 정도였다. 김 대표는 가격은 대폭 낮추고 대부분의 공정 과정을 국산화시켰다. 2~3년 걸릴 공사기간도 10개월로 줄였다. 그가 '소리박사'로 불리던 이유다.  

"3년 동안 해당 프로젝트를 하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다만 집을 짓는 입장에서 사장과 소통이 잘 안 됐어요. 사장이라 하면 산업계죠. 일을 어떻게 쪼개고 나누고 만드는진 알고 있으니, 사장이 돼 직접 A부터 Z까지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어요. 근사하겠던데요?"

그렇게 연구원에 사직서를 냈다. 퇴직금 1500만원을 들고 "계측기를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설립 초기 10여년 동안은 대기업 용역과제가 주 수입원이었다. 스스로를 제조업 회사라 소개하기도 했다. 수입은 일정하게 들어왔지만 과제만으론 더 큰 물에서 놀 수 없었다.

"불평불만이 많았죠. 이러려고 창업한 게 아닌데···. 우리만의 제품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2015년부터 연구개발을 하고. 2020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죠. 제품 만든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2018년 매출이 바닥을 치기도 했어요."

에스엠인스트루먼트가 독자 개발한 휴대용 초음파 카메라는 이렇게 탄생했다. 소음, 공기 흐름, 가스 종류와 관계없이 즉각적인 전기·가스 누출 검출을 단번에 시각적으로 파악하는 장치다. 

작년 에스엠인스트루먼트의 수입은 재작년 대비 25% 올랐다. 2019년부터 연 상승세다. 여태껏 판매량만 전 세계 1000여대다. 세종 생산라인 구축과 내년 고정식 카메라 구축을 앞두고 있다. 자율주행 등 그 사용범위를 더욱 확장해간다는 계획이다. 

◆ 창업연구자 선배로
 

김영기 대표는 앞으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연구자 출신 후배 창업가들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영기 대표 제공]
김영기 대표는 앞으로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연구자 출신 후배 창업가들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영기 대표 제공]
"17년이면 많이 돌아갔죠. 이제 큰 물에 가서 제대로 해봐야 되지 않겠어요? 주변에 연구자 출신인데 산업계에 가신 분들 많으시잖아요. 후배들에게 조언도 해주시고. 여기까지 왔는데 제가 그 역할을 안 할 순 없죠. 욕심도 있고요. 그게 제가 남은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과거엔 모교와 사회로부터 받았던 혜택들을 돌려준다는 말에 공감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세월이 지나고 보니 빈말은 아닌 거 같다"며 "성공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기업인으로 살아온 길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직장인이었다면 연금 등 여러 안전장치가 있었겠지만, 기업인은 한 번 망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걸 수도 없이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밌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쓸모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었다. 그가 다시 태어나도 기업인을 하겠다는 이유다. 

"박사학위 마치고 한 교수님이 세상은 운칠기삼이라고 하셨어요. 운이 7 기출이 3이요. 그땐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로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알겠어요.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7의 운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등은 해봐야겠어요. 만드는 건 자신 있습니다. 20여년을 해왔으니깐요. 이제 저만 잘 결정하면 됩니다. 현장에서 행복한 기업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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