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가 아직은 '겨울잠'에 빠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봄이 오는 소리도 조용히 들리고 있다. "벤처캐피탈에 돈이 없다는게 말이 됩니까. 자금은 풍부합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닙니다."

국내 굴지의 창투사 가운데 하나인 K창투사 대전지점장은 벤처투자가 '동면(冬眠)'에 빠져 있는 상태로 진단했다. 2000년 이후 단 한 푼도 대덕밸리에 투자하지 않은 G창투사 관계자도 '기업들의 동향만을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1999년 2백35억원이던 창투사의 대덕밸리에 대한 투자액이 2000년에는 6백31억원으로 3배가량 상승한데 비해 2001년에는 2백18억원으로 상승세가 크게 둔화추세를 보인 바 있으며 이는 올해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창투관계자들의 말이다.

또한 최근에는 대덕밸리의 H기업, E기업 등이 국내 창투사로부터 투자받기를 포기하고 외국 창투사와 접촉을 벌이고 있는 점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최근 경기가 점차 살아나고 있는 추세 속에서 벤처캐피탈들이 이처럼 대덕밸리 투자에 대해 '몸사리기식 동면'에 빠진 이유는 크게 '코스닥 진입장벽의 상승', '벤처비리로 인한 벤처의 신인도 하락' 등으로 압축된다.

'코스닥 진입장벽의 상승'으로 인해 지난해에는 1분기동안 인바이오넷·아이티가 연이어 코스닥 예비심사를 통과하는 실적을 보였지만 올해는 한국인식기술과 오디티가 심사를 청구했을 뿐 아직 이렇다할 실적이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최근 코스닥위원회와 금융당국이 경상손실을 기록해도 사업성만 인정되면 코스닥 등록을 허용하던 벤처기업에 대한 특례조항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중이어서 IPO를 통한 자금회수에 제동이 걸린 점도 크게 작용했다.

'벤처비리로 인한 벤처의 신인도 하락' 측면에서 한 창투사 임원은 "서울에서 연이어 터진 각종 '게이트사건'에 이어 성격은 다소 다르지만 대덕밸리에서도 '다림비젼 사태'가 벌어져 투자위축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지적했다.

벤처캐피탈의 '동면'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올초 중소기업청이 창투사 1백42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총액은 8천5백7억원(1천5백36개 기업)이었고, 올해는 이보다 2배가량 많은 1조6천7백42억원을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벤처캐피탈이 지난 4월말까지 실제로 투자를 집행한 실적은 목표액의 10%선에 그쳤다.

KTB네트워크는 올 1분기에 올해 투자목표액의 11%수준인 1백14억원을 투자했고, 한국기술투자 78억원(13% 수준)과 무한투자 83억원(10%선)도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A창투사의 경우 2001년 연매출액이 4백억원이 넘는 기업 한곳에만 투자를 했다.

'적은 수익률이더라도 안정실적투자를 하겠다'는 생각이다. 창업투자회사도 줄어들고 있다. 투자한 업체가 코스닥에 등록을 하더라도 '보호예수제도' 때문에 투자금액 회수가 어렵고, 최근에는 코스닥등록마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베스텍창투, 씨티코프캐피탈코리아, 그래닛창투, 에이원창투, 아이비벤처캐피탈 등 5개 창투사가 등록면허를 반납했다. 남아 있는 창투사들은 M&A중개회사나 기업구조조정투자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덕밸리에서 해빙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투자를 하지 않았던 K창투사와 G창투사는 각각 40억원, 2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S창투사는 최근 대덕밸리의 A기업과 B기업에 각각 10억원과 5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또한 대덕밸리에는 대전소재 기업들에게 70%이상을 투자하는 대덕밸리벤처투자조합 1·2호에 아직 2백50억원 가량의 자금이 남아있어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KTB네트워크가 업무집행조합원인 1백억원 규모의 제1호 조합은 45억5천6백만원이 잔액으로 남아 있으며 무한기술투자·신보창업투자·플래티넘기술투자가 업무집행조합원으로 참가한 3백억원 규모의 제2호 조합에는 2백5억2천만원의 여유자금이 있다.

창투사 출신의 한 대덕밸리 벤처기업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체 투자분위기는 좋지 않을 것이다"라며 "창투사들 대부분이 '안정 투자'로 돌아서 제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S창투사의 지점장은 "벤처비리가 터지고 IPO가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이 쪽 지역에서 거둔 실적이 미미하더라도 제대로 된 기업만 있다면 초기 기업이라도 투자할 생각이 충분히 있다"며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이 세상이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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