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가을의 일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 연구실의 책상 위에 A4 종이 한 장이 놓였다. 우리와 협력해 '나로호' 개발에 나서겠다고 약속한 러시아의 계약서 초안이었다. 앞서 당시 우주발사체연구부장을 맡았던 조광래 전 항공우주연구원장은 러시아를 포함해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인도 등의 발사체 기술 선진국들에게 기술협력을 제안했다. 그나마 러시아가 유일하게 긍정적인 의사를 보내왔다. 계약서 초안의 골자는 '대한민국이 개발하려는 발사체의 1단을 러시아가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조 부장을 필두로 고정환, 한상엽, 옥
기획
이유진 기자
2024.04.21 17:00
-
우리나라를 이동통신 강국에 올려놓은 CDMA 기술.[영상= ETRI]1997년 2월 어느날, 이동통신 서비스 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을 최초로 개발한 미국의 벤처기업 퀄컴 연구진이 내한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을 찾아왔다.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한국의 이동통신서비스 표준에 채택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우리나라가 CDMA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미국, 일본, 유럽 등 과학기술 강국들간에는 시장 선점을 위한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치열했다. 모토로라, 노키아, 에릭슨, 퀄컴 등 당시 내로라하는 통신기업들이 다 뛰어들었다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4.14 17:15
-
“하늘이 열렸다.”8일 오후 12시 24분 18초(현시지간, GMT 4월 8일 18시 24분 18초) 멕시코 코와윌라 주의 작은 도시 무스키스의 한 호텔 옥상. 잔뜩 구름이 낀 하늘을 절망스럽게 바라보던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회장 오준호 KAIST 석좌교수) 멕시코개기일식원정단원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일부는 두 팔을 높이 벌려 하늘에 감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기일식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 전체를 가리는 현상이다. 태양은 달보다 약 400배 더 크지만 지구와 거리도 약 400배 더 멀어 지구에서는 태양과
기획
지명훈 기자
2024.04.09 20:28
-
제법 한기가 느껴지는 1993년 가을이었다.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6연구동의 한 실험실에 'CDMA 작전본부' 문패가 붙었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은 이동통신 서비스 방식의 하나이다. 연구진 각각에 삐삐(무선호출기) 하나씩이 제공됐다. 삐삐 음이 울리면 늦은 밤, 새벽 상관없이 연구실로 와야 한다는 지상명령이었다. 마침내 전쟁이 시작됐다.“새벽에 출근하고 밤에 별보며 퇴근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려고 누웠다가 삐삐음에 그냥 그대로 작전본부로 뛰어간 날이 허다했어요."한기철 당시 ETRI 이동통신 개통연구부장은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4.07 15:40
-
"’시분할 전자교환기(TDX, Time Division Exchange)’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고 최순달 소장은 "240억원을 지원하면 개발할 수 있다는 거냐"는 오명 당시 체신부 차관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다른 부처는 물론 소관 부처인 체신부마저 반신반의하던 터였다. 최 소장은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 전자교환기의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며, 만약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3.31 17:28
-
저 먼 우주에는 '신성(nova)'이란 현상이 있다. 지구에서 너무 멀어 보이지 않다가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사라질 때 비로소 관찰되는 별이다. 과학철학에는 신성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가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코페르니쿠스 혁명)한 1543년 이전의 유럽 천문학 관측기록에는 신성이 없다. 이에 비해 이 기간 중국의 천문학 기록에는 신성이 많이 등장한다. 자전하는 지구에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과학철학의 분석은 이렇다. 천계(달 위쪽)의 불변성 또는 완벽성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 영향을 받은 유럽
기획
지명훈 기자
2024.03.25 17:47
-
"조국을 위해 좋은 일이니 도와드리겠다."1971년 일본 도쿄대에서 근무하던 고 김철우 박사는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 휴직계를 던졌다. 박정희 정부의 끈질긴 설득을 마침내 수락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공업화를 본격 추진하면서 포항종합제철소(지금의 포스코) 건설을 추진 중이었다.당시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이 그를 찾아와서 간곡히 도움을 청했다. 롯데의 신격호 사장도 "박대통령이 한국에서 제철소를 해보라 엄명했다.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친분이 있던 윤동석 서울대 교수는 일본으로 건너와 귀국을 종용했다
기획
김지영 기자
2024.03.22 17:50
-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뒤 현장을 지키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서 '의료대란'이 현실이 됐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제때 수술과 진료 등의 필수적인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해 생명이 위협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의료대란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2000년에는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 시행으로 전국 규모의 의사 파업이 처음 발생했다. 2014년에는 원격 의료를 반대하는 파업, 코로나가 창궐하던 2020년에는 이번과 같이 의대 정원 확대 등 문제로 의사들의 파업도 있었다.그렇다면 인공지능(AI) 로봇이 발전
기획
홍재화 기자
2024.03.19 17:49
-
국내에 가동중인 25개 원자력발전소(2024년 2월 기준, 이하 원전) 마다 보관중인 사용후핵연료가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나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사용후핵연료 처분 특별법안은 여전히 통과되지 못해 20대 국회에 이어 또 다시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친원전 정책을 표방한 현 정부 들어 사용후핵연료 처리에 대한 연구 예산 마저 줄어들어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원자력계에 따르면 국회 계류 중인 사용후핵연료 관련 의안은 4건이고 주로 처리와 보관에 대한 것이다. 이 가운데 사용후핵연료 처분 특별법안은 지난번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3.18 17:55
-
"임자, 수고했어."(고 박정희 대통령) "아닙니다."(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1973년 7월 3일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남구 동해안로 포스코 포항종합제철소. 1기 설비 종합준공식 후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 감격에 젖어 나눈 대화다. 박 대통령이 이어 "이 고로의 불꽃이 국가재건, 민족중흥의 불꽃이야"라고 강조하자 박 회장은 "이 불꽃을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한다. 박 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종합제철소 건설을 기획했다. 그의 구상은 19
기획
김지영 기자
2024.03.17 18:20
-
새 봄을 맞아 대덕넷(Hellodd) 지면이 바뀐 가운데 '사이언스, 세계는 지금'에 강승구 성균관대학교 성균나노과학기술원(SAINT) 및 나노공학과 교수가 합류합니다.강승구 교수는 13년간 미국 IBM 왓슨연구소(IBM T.J. Watson Research Center) 연구원으로 전산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질병을 연구하고 첨단 치료제를 개발했던 활동과 기술 동향, 과학기술 진보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강 교수는 2009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물리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11년부터 미국 뉴욕의 IBM TJ Watso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3.17 17:50
-
"저 푸른 바다 너머로 날아가는 갈매기 나래에 실려서 내 나라로 돌아 가고파···."최근 흥행몰이 중인 영화 ‘건국전쟁’ 주제가의 첫머리입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임진·정유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도공(陶工)들이 조국이 아스라이 보일듯한 바닷가에서 저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할지 모릅니다. 망향의 그리움에 젖은 나머지 말이죠. 기자도 얼마 전 까지는 그랬습니다. 최근 영문 저서 ‘반도체 강국 만들기(Making semiconductor superpower)’를 펴낸 김동원 전 KAIST 교수(과학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기획
지명훈 기자
2024.03.10 14:20
-
새 봄을 맞아 대덕넷(Hellodd) 지면이 새로워집니다. 대덕넷 홈페이지의 내용과 구성을 개편했습니다.'과학, 경계와 너머', '사이언스, 세계는 지금', '과학의 아고라' 등 세파트로 나눠 오피니언을 게재합니다. 필진 6명(가나다순)이 깊이있고 다양한 지식과 담론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좋은 필진을 꾸준히 더 발굴해 나가겠습니다.아울러 ‘21세기 과학기술 도공 열전’ 시리즈를 기획해 오늘(11일자) 톱기사로 첫회인 프롤로그를 내보냅니다.과학기술인 커뮤니티인 대덕과 주변 지역의 문화소식을 전하는 코너(공연/전시/강연/모임)를 마련했
기획
지명훈 기자(편집국장)
2024.03.10 01:31
-
정부가 27일 글로벌 연구개발(R&D) 협력을 총괄할 컨트롤타워를 발족해 글로벌 과학기술 선진국들과 본격적으로 국제공동연구 활성화와 전략적인 투자·협력에 나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오후 2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제1회 '글로벌 R&D 특별위원회(이하 글로벌 특위)'를 열고 글로벌 R&D 추진전략 이행 방안 및 계획 등 4개의 주요 안건을 논의했다고 밝혔다.특위위원장은 26일자로 임명된 류광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맡았다. 과기정통부(간사위원),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부처의 실장급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2.27 17:15
-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글로벌 TOP 전략사업단(전략사업단) 과제를 따내기 위해 날 밤을 눈코뜰새 없이 분주하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관별 고유주제에 집중했던 출연연의 임무 중심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1월 31일 ‘글로벌 TOP전략연구단’ 사업 공고를 내고 제안서 접수에 나섰다. 특정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출연연의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것으로 윤석열 정부의 국가 R&D 시스템 개혁의 핵심이다.그런 만큼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약속했다. 올해 출연연의 주요사업비를 20~30% 삭감했지만 전략연구단에는 1000억원의 신
기획
길애경 기자
2024.02.15 18:20
-
루이 노아이유(Louis Noaille) 스타트업 연구원은 프랑스 남부 깐느에 거주하며 20분 남짓 집에서 떨어진 회사에 다닌다. 루이 연구원이 다니는 회사는 AI·로봇공학·광학 분야의 솔루션을 설계하는 Technext라는 스타트업이다. 프랑스 니스에 소재해 있다. 세계 코딩교육 시장을 타깃으로 새로운 AI 교육 솔루션을 연구하고 있는 루이 연구원은 지난 9일 팔레 데 페스티벌 에 데 콩그레(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es)에서 열린 '세계 인공지능 깐느 페스티벌(WAICF)' 전시관에 참여해 자신의
기획
프랑스 깐느 = 김요셉 기자
2024.02.14 17:37
-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 정부가 미국의 달 탐사 계획(아르테미스) 참여 제안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내놓은 해명이 거짓 논란에 휩싸였다. ‘적극적인 예산확보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냈다가 얼마 후 핵심 해명 내용 일부를 몰래 삭제한 것으로 대덕넷 취재 결과 드러났다. 13일 대덕넷(HelloDD)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말 국내 여러 언론들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비행사가 탑승한 채로 달 궤도를 비행할 아르테미스 2호에 한국의 큐브위성을 실어주겠다고 제안했으
기획
이유진 기자
2024.02.13 17:15
-
"지금의 인공지능은 다르다. 이제 AI는 인간처럼 이해한다." (아담 췌예 쉬리 공동창업자)"우리는 변화의 시대가 아닌, 시대의 변화를 살고 있다."(주세페 드 프랑코 루텍 그룹 대표)"프랑스는 2위나 3위가 되고 싶지 않다. 1등이 되고 싶다."(브루노 르 메르 佛 경제재무장관)지중해 연안의 관광휴양 도시인 프랑스 깐느는 영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누구나 알법한 영화와 배우, 감독의 흔적이 도심 곳곳에 보인다. 1946년 시작돼 올해 77회째를 맞는 깐느 영화제가 매년 5월 2주간에 걸쳐 열리는데, 코로나 팬더믹 이후 최근 3년 사
기획
프랑스 깐느= 김요셉 기자
2024.02.12 15:45
-
2013년 8월 뜨거운 여름날 이른 아침 대덕연구단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식당에 과학자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어떻게 하면 연구소끼리의 벽을 허물고 서로 교류하며 과학을 매개로 즐겨볼 수 있을까? 과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과학자들끼리의 고민은 금새 언론인, 기업인, 교사들에게 전해서 함께 모이게 되었다. 그렇게 모임은 계속되고 아이디어와 열정이 보태져 그해 11월 14일 조직화를 위한 설립위원회 발대식, 2014년 7월에 법인화를 완료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따뜻한과학마
기획
대덕넷
2024.02.09 16:20
-
대덕연구단지에서도 도룡동 신세계백화점과 엑스포과학공원 사이 양지바른 터에 자리잡은 기초과학연구원(IBS). 여기서 갑천을 따라 북쪽으로 차를 달려 대덕산업단지와 봉산동을 지나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터널 2개를 지나면, 세종시에 못 미쳐 오른쪽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신동지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이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큰 길을 따라 1킬로미터(km) 쯤 더 가면, 정면에 파란색 'RAON(라온)' 푯말이 붙은 장방형의 웅장한 회색 콘크리트 게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장차 한국 기초과학의 한 축이자 새로운 희귀동위
기획
대덕넷
2024.02.06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