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③KIST유럽연구소 정체성 확립나선 이호성 소장
"한국·독일 장점 융합한 연구소 모델 설립 목표"…올해도 도전은 계속된다

한국과 유럽의 나노분야 연구자들이 공동연구 논의를 위해 워크숍을 개최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KIST 유럽연구소에서 열린 워크숍.
한국과 유럽의 나노분야 연구자들이 공동연구 논의를 위해 워크숍을 개최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KIST 유럽연구소에서 열린 워크숍.
어느때보다 바쁜 시간이었던 연말연시. 이호성 KIST유럽연구소장은 독일과 한국을 두번이나 오가는 비행을 감수했다. KIST유럽연구소의 당초 설립 정체성을 확립하고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에서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숨가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이호성 소장을 대덕넷이 만났다. 2012년 9월 부임이후 한국과 유럽 연구자간 네트워크 형성과 KIST유럽연구소 설립 목적, 비전 완성을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하는 그에게 독일과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과 KIST 유럽연구소의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현지인으로 구성된 KIST유럽연구소의 정체성 찾기

이호성 KIST유럽연구소장.
이호성 KIST유럽연구소장.
이 소장이 독일 생활 1년4개월을 지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은 KIST유럽연구소의 설립 목적과 정체성 확립이다. 방향 설정이 정확해야 업무 추진에도 속도를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1년여만에 만난 이 소장의 표정은 사실 그리 밝지 못했다. KIST유럽연구소 설립 목적과 정체성부터 흔들린다는 생각에 한국식 평가기준을 적용하려는 정부 관계자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기 때문이다.

KIST유럽연구소는 독일 자브리켄에 위치해 있으며 독일 법인으로 등록돼 있다. 연구원들도 대부분 현지에서 뽑았으니 독일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외적인 조건으로 보면 독일계 연구소다.

그러나 경영자인 소장은 한국에서 파견나온 사람이고 예산의 대부분은 한국정부에서 지원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독일의 연구소로 역할을 해야할지, 한국의 연구소로 한국식으로 역할을 해야할지 정체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특히 매년 실시되는 기관평가에서 한국정부출연연의 산하기관으로 놓고 평가를 하게되면서 KIST유럽연구소의 설립목적과 정체성은 더욱 모호해진다.

이 소장은 "KIST유럽연구소는 독일에 위치했지만 영문 이름은 KIST Germany가 아니고 KIST Europe이다. 연구소 창립에 참여했던 분들은 우리 연구소의 활동범위를 독일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유럽 전체로 확장되기를 바랬던 것이 분명하다"며 "양국의 과학기술 정책과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KIST유럽연구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설립 취지에 맞는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한국과 한국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한국의 장점과 독일의 장점이 결합된 성공적인 연구소 모델을 만들고 싶었던 목표가 제대로 이뤄질지 모르겠다"며 말끝을 흐려 그의 고뇌를 짐작케 했다.

◆"믿고 맡기는 독일, 히든챔피언 성공 비결" 

이호성 소장이 독일생활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평가제도다.

"독일에서는 연구자와 연구기관을 매년 평가하지 않더라. 또 출연연 수장의 경우 거의 종신직으로 믿고 맡긴다. 미래 연구분야도 연구소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물론 신뢰가 없으면 쉽지 않다. 이런 신뢰 속에서 탄탄한 성과들이 나오고 결국 독일이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굳건한 경제강국의 자리를 지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개발된 기술이 시장에 선보이고 상용화가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국의 과학기술 현장에서는 매년 평가하고 결과물을 종용하면서 졸속의 결과물들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 이 소장의 주장이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처럼 짧은 기간에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 평가 구조에서는 당연히 밀도가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연구결과 상당부분에서 기술이 떨어지고 산업체에서 사업화하기를 꺼리게 된다"면서 단기적인 평가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낙하산 인사로 출연연의 수장이 결정되고 상위기관마다 다른 철학을 가진 한국 과학기술 정책부처의 현실도 꼬집었다.

독일의 프라운호퍼 소장의 임기는 최장 18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중장기 연구체계가 가능한 기반이 된다. 과학기술은 지속성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연구소 수장이 교체될 즈음에는 2년 이상의 오버랩 기간을 갖는다. 전임 소장과 후임 소장의 인수인계로 인한 누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탄탄한 연구 성과를 위해서는 전임, 후임의 수장이 같은 철학으로 목표를 이뤄가야 하는데 한국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낙하산 인사가 출연연의 수장으로 오게되고 연구 철학과 흐름이 단절되며 결국 연구방향마저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이 소장은 "연구는 마라톤이다. 혼자 뛸 수 도 있고 42.195km를 나눠 달릴 수도 있다. 다만 나눠달릴 때는 목표와 철학이 동일하고 바톤터치가 제대로 될 때 성과가 제대로 날 수 있다"면서 "독일은 이런 문화가 역사가 되고 쌓이면서 오늘날 히든챔피언 강국으로 우뚝 설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 소장은 "정부가 바뀔때마다 달라지거나 늘어나는 상위기관들이 출연연에 다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갈등구조가 형성되고 결국 연구소들은 우왕좌왕하게 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만다"면서 "기업과 달리 출연연은 공공기관이다보니 상위기관이 너무 많다. 이들마다 다른 철학, 다른 방침을 요구하면서 출연연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더 어렵게 한다"고 주장했다.

KIST유럽연구소장 취임 후 기념촬영.
KIST유럽연구소장 취임 후 기념촬영.

◆개인별 인사고과로는 융합 연구 어려워

융합이 화두다. 연구분야는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부터 IT, BT 등 각 분야 협업 연구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소간 담장을 허물고 융합 연구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실제 성과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쟁력 있는 연구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고 출연연 위기설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융합연구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이 소장은 개개인마다 평가하는 인사고과 시스템과 과도한 행정적 절차를 들었다.

개인별 인사고과에 따른 성과급 지급으로 연구원간 협업 연구의 발목을 잡고 있고 실제 협업이 이뤄지지 못하게 한다. 또 연구소 상위기관이 늘어나면서 행정절차가 복잡해지고 외형적으로 준비해야할 서류가 많아지면서 규제가 더욱 심해졌다는 것.

이에 비해 독일은 국민 성향상 개인주의가 강하지만 연구체제는 공동연구를 추구한다. 책임도 개인이 아닌 공동체에 물으면서 공동연구와 서로 협력해야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소장은 "국내 울타리 안에서 최고는 의미가 없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연구성과를 내기위해서는 자기것을 포기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일때 가능하다. 융합연구는 그런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상위기관에서는 같은 철학으로 연구시스템을 잘 디자인하고 중복된 시스템을 정리해 전체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책임만 전가하는 지금의 시스템이 아니라 자율성을 통해 효율성,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 도입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IST유럽연구소 다양한 활동, 후속 사업 속속 이어져

지난해 11월 국제협력 중심 도시 벨기에 브뤼셀에 개소한 한-EU연구혁신센터. 올해 2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지난해 11월 국제협력 중심 도시 벨기에 브뤼셀에 개소한 한-EU연구혁신센터. 올해 2월부터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2013년은 이 소장에게는 의미가 크다. 한-EU 네트워크 형성과 기업의 현지 진출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그 후속사업들이 속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한-EU국제협력 전문가 교육훈련 및 양성사업'은 국내 16개 기관의 국제협력 담당자 16명과 독일EU전문가 17명이 한자리에서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소장은 "지난해 미팅은 한국과 유럽 전문가간의 네트워크를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 올해부터는 KIRD와 공동 주관해 매년 진행하기로 했다"면서 기대감을 표시했다.

나노과학분야 한-EU 연구자간 관심분야 공유와 공동연구과제 발굴, 연구협력도 활성화 될 전망이다.

KIST, 생명연, 표준연, 화학연 등 국내 출연연과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자알란트 대학, 벨기에 루벵 대학 등 6개국 19개 기관 9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미나를 열고 나노 소재, 나노 장비, 나노 안전 등의 세션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연구를 위한 논의가 이뤄졌다. 또 KIST유럽연구소는 독일 신물질개발연구소(INM)와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 2개의 공동연구제안서를 기초기술연구회에 제출했다.
 
지난해 11월 초 박근혜 대통령이 한-EU정상회담 참석차 벨기에 브뤼셀에 방문했다. 때를 같이해 브뤼셀에 '한-EU연구혁신센터'가 개소됐다.

이 소장에 의하면 올해 2월부터 센터가 정상 가동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EU 주요 과기정책을 분석하고 인력교류 및 한-EU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제공동연구와 산업협력 및 현지진출을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

KIST유럽연구소의 가교역할로 한국 대학과 유럽 대학 간 복수학위제도 운영될 예정이다.

UST 학생에게 독일 우수대학에서의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향후에는 공동학위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베를린 공대와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며 이를 위해 3~4월께 MOU를 체결할 방침이다.

KIST유럽연구소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사업은 '혼합물 위해성 평가기술 개발'이다.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국내 화학분야 수출기업들의 유럽 및 미국 등 해외 진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KIST유럽연구소에서는 친환경 제품개발을 위한 혼합물 제품기반 위해성 스크리닝 기술을 개발하고 웹기반의 혼합물 분류 및 표시 산정 툴을 개발해 국내 화학분야 수출기업에 제공, 유럽진출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소장은 "독일은 지방분권제에서 시작돼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먼저 등장했고 이에 대한 정책이 활발하다. 산학연 협력 전문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정부 기업을 따로 두고 있다"면서 "KIST유럽연구소에서는 화학물질 안전에 관한 모델을 개발해 기업체에 보급할 계획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유럽 수출 지원을 적극 돕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끝으로 이 소장은 "올해는 유럽이 그동안 유럽개발 7개년 계획으로 시행해온 FP( Framework Programme)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인 'Horizon 2020'에 착수하게 된다. 한국에게도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면서 국내 연구기관과 중소기업의 유럽 진출을 적극 챙길 것을 약속했다.

지난해 11월 UST과학퀴즈 당첨자들이 KIST유럽연구소를 방문했을 당시 이 소장이 연구소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UST과학퀴즈 당첨자들이 KIST유럽연구소를 방문했을 당시 이 소장이 연구소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