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주 STEPI 부연구위원, 2035년 과학기술계 '4가지 시나리오' 제시
12월 미래혁신 전망 따른 現 과학기술 정책 가이드라인 발표 예정

2035년 자원이 풍부하고 연구개방성이 극대화된 낙관적 시나리오와 국제적 경제공황에 연구 인프라가 붕괴된 비관적 시나리오가 대비된다. <그래픽 = 대덕넷 이지현 디자이너>
2035년 자원이 풍부하고 연구개방성이 극대화된 낙관적 시나리오와 국제적 경제공황에 연구 인프라가 붕괴된 비관적 시나리오가 대비된다. <그래픽 = 대덕넷 이지현 디자이너>

#. 2035년 낙관적 시나리오
2017년 한국은 첫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다. 2035년에는 이미 다수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글로벌 과학강국이다. 연구개발 투자가 증가하면서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연구가 활성화된다. 연구 행정 절차는 사라지며, 국가 연구소나 대학이라는 물리적 연구공간의 중요성이 줄어든다.

#. 2035년 비관적 시나리오
국제적 경제공항이 도래해 정부는 한정된 자원의 일부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게 된다. 제2의 KIST가 등장하는데 과학자 중 절반이 노인이다. 자원이 부족한만큼 연구개발 성과평가가 강화된다. 연구 인프라가 붕괴되고, 지식의 유통은 대단히 어렵다.

지금부터 20년 후인 2035년 한국 과학기술계는 어떤 모습일까?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미래 혁신전망 방법론 개발 및 적용 조사연구'에서 제시한 미래 시나리오들을 보면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혁신전망 매핑 분석과 참여 워크숍 방법론을 바탕으로 문헌리뷰, 사례조사, 매핑분석, 파일럿 테스트 실행·평가 절차에 따라 시뮬레이션 한 결과다.

가까운 미래 혁신의 변화를 대응하기 위해 시스템 단위의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번 연구는 4가지 측면의 미래 패턴을 미리 엿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진이 2035년 미래 시나리오의 중심 축으로 삼은 변수는 연구개방성의 정도와 자원 투입 정도 2가지다. 연구의 개방성이 적극적이냐 폐쇄적이냐와 자원이 빈곤하느냐 풍요롭냐에 따라 4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됐다.

연구진이 발표한 4가지 시나리오는 ▲지구를 구하라(자원이 풍요롭고 연구개방성이 심화된 환경) ▲내가 제일 잘나가(자원이 풍요롭고 연구칸막이가 강화된 환경) ▲우리동네 실험방(자원이 빈곤하고 연구개방성이 강화된 환경 ▲영광의 재현을 위하여(자원이 빈곤하고 연구칸막이가 심화된 환경) 등이다.

연구책임자 홍성주 STEPI 부연구위원은 2035년 4가지 시나리오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오는 12월 미래 혁신전망에 따른 과학기술 정책의 미래준비 가이드라인을 함께 제시할 예정이다.

STEPI 연구진이 제시한 2035년 4가지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 첫 번째 시나리오…지구를 구하라

미래 혁신전망 워크숍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사진=STEPI)
미래 혁신전망 워크숍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사진=STEPI)

2014년 데이비드 펜들베리는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아시아 과학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한국도 2020년 이후에는 노벨상 수상의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2035년, 한국은 이미 다수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글로벌 과학 강국이다.

2017년 첫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한국은 정부, 민간 모두 연구개발에 대한 자원투자를 더 늘렸다. GDP의 10%를 연구개발에 쓰면서, 한국 과학자의 활동 영역이 넓어진다. 이와 같은 현상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증가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에서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여론은 대단히 긍정적이다. 이와 함께 뛰어난 한국 연구자와 협력하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과 기관의 프로포즈가 거세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풍부해지자 전 지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가 증가한다. 이러한 과제는 글로벌 차원의 연구 네트워크로 수행되므로, 국내 연구개발 제도도 바뀐다. 글로벌 표준에 따르게 될 새로운 연구개발 제도는 연구행위 상 큰 부정사항이 없는 한 연구자의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로 작용한다. 연구자간의 협력이나 물품 구입 등 연구 수행에 필요한 일들로부터 서류 작업과 행정 절차는 사라지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에 대한 지원을 놓고 심사하는 일도 없어진다. 새로움을 전문가들이 심사하고 평가한다는 게 의미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 자체가 하나의 과학기술시스템이 사회로 확장된 모의실험사회로 전화한다. 새로움과 탁월성을 추구하는 연구자들이 늘자 지구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구도 확장된다.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화성 연구실과 같은 주제는 초등 교육의 실험탐구 수행에 보편화된다.

2035년 12월 올해의 핫 이슈로 지구적 문제를 해결한 한국의 양성우 박사의 일대기가 다루어진다. 양성우 박사는 2035년 새로운 연구 영웅으로 등극한다. 양 박사와 같은 영웅이 되기 위해 젊은 학생들은 과학자의 꿈을 키운다. 연구개발의 풍족한 자원 공급처의 하나로 수퍼 개인이 증가한다. 거대 다국적 기업가이거나, 어마어마한 우주탐사의 이익을 획득한 수퍼 개인은 연구개발의 최대 후원자다. 이들은 연구자가 어떤 새로운 도전적 성과를 내느냐를 놓고 연구지원을 결정하므로, 연구자들은 그 지원을 얻기 위해 자발적 연구조직을 만든다.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닌 네트워크 형태의 자발적 연구조직은 철저히 능력 거래 기반으로 운영된다. 즉 거래 가능한 능력이 있는 연구자만이 그 네트워크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2035년에는 국가 연구소나 대학이라는 물리적 연구공간의 중요성이 줄어든다. 새로운 연구공간은 네트워크가 되며, 그 네트워크에 속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연구자의 실력이 평가된다. 네트워크에 소속되지 못한 과학자들은 지식의 탁월성을 인정받지 못하기에, 연구 보조자로 전락하거나 과학 연구를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게 된다. 이와 함께 공공 영역에서 연구개발 활동은 쇠퇴한다.

◆ 두 번째 시나리오…내가 제일 잘나가

샤오미의 추격 등 2014년 한국의 경제는 위기론을 몰고 다녔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국가 차원의 개혁 프로그램을 강화한다. 국가의 시장 개입 정책에 힘입어 국내에 기반을 둔 여러 글로벌 기업이 생존에 성공하고 2035년 더 큰 거대기업으로 부상한다. 또한 한국 정부의 정책시장에서 성장한 중소 창업 기업들이 2035년 대기업으로 발전한다. 수많은 거대 기업의 등장과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유한 국가가 된다. 이와 함께 민간이 연구개발의 주요 투자 주체로 부상한다. 글로벌 협력에 활발하게 참여하던 분위기는 위축되고, 국가적 목적이나 국내 기반 기업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공 연구나 지구적 과제들은 사라진다. 민간이 연구개발의 핵심 투자 주체가 되면서 대부분의 공공 연구기관은 민간으로 이양된다.

연구는 상업적 목적 하에서만 허가되며 결과의 공개는 철저하게 통제된다. 그로 인해 연구 문화에서 비밀주의와 칸막이는 더욱 높아진다. 같은 실험 공간을 쓰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동료를 믿지 못하는 불신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자들은 고립적 연구개발을 선호한다. 나홀로 뛰어다니고 인정받는 게 보상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선권 논쟁이 심해지며 그로 인해 살인과 자살이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가 나타난다. 개별 연구자간의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한 연구 카르텔이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카르텔이 결과적으로 연구개발 활동의 독점적 의사결정권을 가짐으로써 연구 칸막이 문화는 악화된다.

나홀로 연구가 연구개발 활동의 대세를 이룬 2035년. 기업의 풍부한 자원을 기반으로 상업화 연구에 성공한 연구자는 거대한 보상을 받게 된다. 그 보상의 규모가 웬만한 기업의 매출 규모와 맞먹게 되면서 연구 재벌이 등장한다. 연구 재벌로 성장한 연구자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강화하며 연구자들 사이에서 귀족주의가 생겨난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연구 카르텔에 포함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연구개발의 공공성은 쇠퇴한다. 연구개발의 성과 평가는 상업화에 따라 결정되어 지식의 공유와 확산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픈소스를 위해 만들어 놓은 IT 플랫폼에는 상식적 차원의 지식 정보만 유통되며,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공의 장에 공개하는 일은 드물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식재산 침해 소송 문제가 오르내린다. 표절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다보니 F=ma를 가르칠 때에도 이것이 아이작 뉴튼의 프린키피아 몇 쪽, 몇 년도를 밝혀야 할 지경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을 출판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른 기관 간의 협력은 믿지 못할 일이므로 산학연이라는 개념도 사라진다. 연구계에서 나이는 의미가 없다. 상업화에 성공해 큰 부를 획득하고 귀족 그룹인 연구 카르텔에 소속되는 게 연구자의 목표가 된다. 그 이전까지 모든 연구자는 계약 조건과 기간 하에서만 연구 활동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세 번째 시나리오…우리동네 실험방

단기적 성장만을 추구해온 한국 경제는 2020년대 퇴보를 시작한다. 고령화와 양극화의 문제를 도외시한 결과, 경제의 버팀목이 될 젊고 활력있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커지며 경제성장을 이끌 긍정심리 자본마저 소진된다. 침체가 지속되자 한국 정부는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된다. 투자가 줄어들면서 연구개발의 유용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거세다. 과학기술을 국가적 성장동력으로 생각했던 국민들은 이제 연구개발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 주었느냐를 물으며 항의한다.

연구개발 투자의 감소로 거대 과학 활동이 줄어든다. 2020년대 말까지 확대되던 대규모의 프로젝트와 프론티어 연구 사업은 문을 닫는다. 이제 연구자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 기반의 연구 활동에 참여한다. 지역 공동체가 풀고자 하는 문제에 과학적 해결 방안을 만들 수 있는가가 연구자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와 함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합형 연구 조직이 구성되는 일이 많다.

연구개발의 소규모화∙지역화 현상은 과학의 민주화를 가져온다. 지역에서 진행되는 연구 활동에 지역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연구 결과는 지역에 공유된다. 공동체의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라도 지역기반 실험실에 들어와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실험에 참여할 수 있다. 연구 목적이 지역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면서, 연구 활동은 안분지족의 성격을 띠게 된다. 위대한 업적이나 상업적 성공과 같은 가치는 연구자들에게 과거의 꿈이 되었다. 연구개발은 주로 지역 공동체의 공동 출자 방식으로 지원받는다. 정부 연구소에서 정해진 실험 공간 안에서 일했던 연구 풍토는 없어진다. 지역의 공동 출자를 받게 되는 연구자는 스스로 지역 내에 실험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연구 내용은 지역 공동체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되고 그 성과는 공동체에 귀속된다.

안분지족의 삶과 연구가 결합하며 연륜있는 연구자는 마을의 훈장님과 같이 지역의 지혜로운 어른으로 인식된다. 지역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연구자는 공동체 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게 되고 시민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연구개발 수행자에게 부여하는 명칭도 바뀌는데, 과학자보다는 훈장님, 연구자보다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더 많이 사용된다.

연구과정과 결과로 만들어지는 지식은 공동체 네트워크를 통해 잔잔히 확산된다. 지역공동체에 귀속된 연구 성과라도, 이것이 다른 지역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무상으로 타 지역에 전달된다. 연구 성과가 공유재로서 인식되기에 지리적 경계를 넘어 확산되는 것이다.

◆ 네 번째 시나리오…영광의 재현을 위하여

경제위기로, 천재지변으로, 전쟁으로 또는 바이러스로 세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현자들의 예측이 맞아 떨어진다. 2025년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경제위기가 도래하여 세계 경제는 마비된다. 국제적 경제공황이 온 것이다. 붕괴의 씨앗은 경제 부문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러시아의 핵잠수함 폭발 사고, 아시아 대륙을 강타한 거대 지진, 경기 불황으로 군국주의를 강화한 미국의 전쟁 남발 등 한국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2035년 전세계 모든 국가가 GDP의 하락을 겪고 있고 한국 또한 GDP가 2014년 대비 절반 아래로 떨어진다. 세계적 경기 침체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보호주의를 강화한다.

경제시스템의 마비는 국가의 장벽을 굳게 닫아버린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들의 폐업이 속출한다. 고령화의 심화로 생산 노동인구는 급감하고 정부의 의무지출 증가 압력은 높아진다. 연구개발 부문에 대한 자원유입이 감소하면서 국내 연구개발 시스템은 붕괴된다. 수많던 연구소들이 사라지고 건물의 용도가 변경되어 공공 시설로 활용된다.

이때 다시 국가의 재건을 원하는 사람들이 뭉치게 된다. 이들 중 과학자였던 사람들이 연구 조합을 형성하고 국가 발전의 목표에 맞춘 최소 규모의 연구시스템을 만든다. 정부는 한정된 자원의 일부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게 되는데, 국가적 상황이 열악한 만큼 소수 엘리트 연구자를 우대하고 이들이 산업재건을 이루도록 독려하는 정책을 펼친다. 정부가 거의 유일한 연구개발 투자 주체이므로, 정부의 선택과 집중 논리에 따른 연구개발 목표가 설정된다. 그 결과 제2의 KIST가 등장한다.

연구개발 어젠다는 산업 건설에 활용 가능하도록 설정된다. 정부는 과거 기업을 운영하던 민간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 재건 청사진을 만들고, 민간인들은 정부의 정책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강한 정부, 리더형 정부가 만들어지며, 연구 개발 부문에 대한 최고 통치자의 직접적 관심과 개입이 늘어난다. 2020년까지 유행처럼 번지던 연구개발의 분권화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제2의 KIST는 국가의 핵심 연구조직이자 연구 의사결정체로서 최고통치자 직속으로 만들어진다. 이 연구소에 근무하는 과학자 중 노인이 50%인데, 이들의 평균 연령은 81세다. 경기가 침체된지 10년이 넘고, 그 이전에는 과학기술에 진학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었던 관계로, 2035년에 직업으로서 과학자의 절반을 노인이 채운 것이다. 이 노인 과학자들은 대체로 2014년에 퇴직했던 이들이다. 그 외 비교적 젊은 과학자들 중에는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가 많다. 출신보다는 실력주의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자원이 부족한만큼 연구개발에 대한 성과 평가가 강화된다. 무엇보다 중간평가의 영향력이 높아지는데, 중간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사업은 바로 폐기된다. 그 자금을 다른 사업에 투자해야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식은 사회에 확산되지 않는다. 연구 인프라도 붕괴했기 때문에, 국내와 국제를 망라하여 지식의 유통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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