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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관의 아·사·과 9] 어떻게 죽을 것인가

단순 생명연장 거부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
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대덕넷은 수요일 격주로 '최병관의 아·사·과'를 연재합니다. '아주 사적인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 도서를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저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 실장으로 올해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병관 작가의 과학 서평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언제부터인가 나는 주로 과학책을 읽었다. 그러다 과학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하는 책을 발견했다. 고(故) 최성일의 '어느 인문주의자의 과학책 읽기'에서 저자는 과학책의 범주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책이란 이런 것들이다. (1)과학자의 자서전, 전기·평전 (2)과학의 역사적 고전과 현대 고전 (3)과학의 특정 분야와 이슈를 다룬 책 (4)수학이 포함된다 (5)의학도 가능하다.(p 17)

고 최성일의 과학책 정의에 따라 나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과학책으로 분류하고 서평을 쓴다. 예전의 경우 의사가 쓴 책을 과연 과학책으로 분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품었지만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쓴 아툴 가완디는 누구인지 먼저 살펴보자. 그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보건대학 교수로 있는 인도계 미국인 의사다. 첫 저서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은 내셔널 북 어워드 최종 후보에 올랐고, '닥터, 좋은 의사를 말하다'는 2007년 아마존 10대 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체크! 체크리스트' 역시 베스트셀러에 올라 저술가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떤 책인가? 그는 서문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인이 경험하는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나이들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는 게 어떤 건지, 의학이 이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또 변화시키지 못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유한성에 대처하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현실을 어떻게 왜곡시켰는지를 살펴볼 것이다.(pp 19~20)

아툴 가완디는 외과 일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어 중년에 이르자 자신과 환자들의 현재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의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삶과 죽음' '죽음의 방법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악성 종양에 걸린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면 차리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아버지의 의지를 확인하고 그의 임종을 지킨다. 이런 가족의 마지막 과정을 통해 저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더해간다.

그는 누구나 겪지만 쉽게 입에 담지 못하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노년의 삶의 질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뉴욕 외곽 체이스 요양원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 요양원은 환자들을 위해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요양원은 잉꼬 100마리, 타깃이라는 이름의 그레이하운드와 진저라는 이름의 작은 개, 고양이 4마리와 토끼 한 무리, 그리고 달걀을 낳는 암탉들을 들여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백 개의 화분, 날로 번성하는 채소밭과 꽃밭 정원도 새로 마련했다.

이를 통해 체이스 요양원은 아툴 가완디가 말하는 3가지 역병인 무료함, 외로움, 무력감을 치유할 방법을 찾아간다. 적어도 완전히 치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애써 볼 가치는 있지 않겠느냐고 항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 전문가들은 체이스 요양원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의학적 문제를 인문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고찰한 책을 읽으면서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 살아있다고 하는 이 순간은 물론이고, 이 순간이 지나면 머지않아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것을 인식한다. 책은 그런 측면에서 많은 공감을 일으킨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중간에서 살짝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빨리 책읽기를 끝내고 싶은데 중간에 계속해서 같은 얘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아직 나에게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 책이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읽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할 무렵,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한 어르신을 자주 마주쳤다. 그 어르신은 허리가 거의 90도로 꺽인채 지팡이를 짚고 이곳저곳을 산책하곤 했다.

다른 때 같으면 무심코 지나쳤겠지만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할때라서 어르신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전에는 간단히 목례만 했지만 이제 나는 "안녕하세요?"하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하지만 어르신은 귀가 어두운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지나쳤다. 그런데 며칠새 어르신을 뵙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나?'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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