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 청정 극지 지키고자 2달간 '무정박·무보급' 항해연구"
코로나19 이후 외부와 접촉 최소화, 안전하게 연구 중"
"당장은 괜찮지만 장기적 유행, 하계·공동연구 축소 불가피"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아라온이 7월 17일 여수 광양항에서 출항, 2달간 북극을 항해하며 연구조사활동을 시작한다. 승선하는 모든 인원은 7월 1일부터 2주간 자가격리 후 이틀간 배에서 생활하다 출항한다.
남극과 북극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고립돼있어 코로나19에 안전하다고 알려졌지만 바이러스가 한 번 들어오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질 우려가 크다. 이에 아라온은 무정박, 무보급 항해 후 복귀한다.
아라온호에는 연구원들의 사고 질병 등을 관리할 의사가 함께 승선해왔다. 이번에는 코로나19 키트와 음압시설도 설치할 계획이다. 극지연관계자는 "코로나19 환자를 케어할 수 있도록 컨테이너를 활용해 모듈처럼 음압시설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라고 말했다.
아라온은 예정대로 떠나지만 일부 연구 항해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본래 아라온에는 연구원이 처음부터 승선하지 않고, 선원들만 탑승해 출발했다. 이후 연구원들이 비행기 등을 타고 극지에 도착하면 접점 지역에서 만나 3~4차례 연구팀을 교대하며 남극 아문센해, 웨들해 등을 연구해왔다.
올해는 감염 우려 등으로 정박 없이 한국에서 2개 그룹의 연구원을 모두 태우고 바로 연구 항해를 시작한다. 아라온 승선 인원은 85명. 공간이 한정돼있어 어쩔 수 없이 연구팀을 축소해야 한다.
극지연 관계자는 "무정박, 무보급 항해로 연구자들이 배에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됐다. 극지로 향하는 시간이 더 오래걸리긴 하지만 아라온호 내에도 일정 부분 실험장비와 연구공간이 있어 논문작성이나 관련 분야 스터디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남극기지 연구원 "연구 이상 無!"
아라온은 계획대로 출항한다. 그렇다면 남극 기지에 있는 연구원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는 남극에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를 운영 중이다. 세종기지는 12월 초, 장보고기지는 10월 말 월동대를 교체한다. 장보고기지에서 연구 생활 중인 정종일 월동대원은 대덕넷과 서면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이슈되기 전에 남극에 도착해 업무를 수행 중이다. 연구에 코로나19 영향은 없다"면서도 "최대한 외부와 접촉을 방어하며 생활 중"이라고 말했다.
월동대는 극지 연구활동과 기지운영 임무를 수행한다. 인원은 18명 내외, 연구기간은 1년이다.남극의 여름 시즌, 단기간 연구를 위해 기지를 방문하는 연구자들의 연구지원도 월동대의 몫이다.
그에 따르면 장보고 과학기지 주변에는 이탈리아의 마리오주켈리기지, 독일의 곤두아나기지가 있다. 장보고 기지는 상시 운영하지만 다른 기지들은 모두 하계시즌에만 운영해 (남극은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다)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가장 가까운 상시운영 기지로는 장보고 기지에서 약 360 km 떨어진 미국 맥머도 기지가 있다.
대부분 나라가 하계시즌에 기지를 운영하는 이유는 혹독한 겨울남극 날씨때문이다. 해가 뜨지 않는 극야(極夜)와 변덕스러운 날씨 등으로 남극의 겨울은 연구하기 부적합하다. 우리나라 월동대원들도 동계시즌에는 야외 연구 활동보다 설치된 장비들을 점검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등 상시적인 연구를 수행한다.
정 월동대원은 "요즘같은 극야에는 오전 중 실내에서 데이터 확인 및 처리업무를 한다"면서 "해가 뜨지는 않지만 오후에 잠시 여명이 생기는데, 그 때 관측장비가 있는 곳에 방문해 장비 점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월동대가 생활하며 필요한 식자재와 실험 소모품, 기자재 추가 보급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월동대는 1년동안 사용할 각종 자재와 유류 및 식품(냉동, 건식품) 등을 컨테이너에 선적해 입남극한다. 이후 인근 기지나 아라온을 통해 중간 보급받게 돼 있지만 코로나19로 아라온과 인근 기지의 보급이 중단돼 능률적인 재고관리를 통해 연구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아예 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비자를 받으면 가능하지만, 노르웨이까지 직항이 없어 갈아타면서 감염 혹은 해당국 정책에 따른 자가격리 등에 많은 시간이 필요해 이동을 보류한 상태다. 극지연은 다산과학기지에 설치된 기상관측, 기후 관련 장비 등을 원격으로 받아 한국에서 연구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극지연 관계자는 "원래대로라면 지금 다산기지에 갈 연구자들을 모집하지만, 연구에 제약이 있어 내부에서 논의 중이다. 각 나라의 출입국 사정 등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극지 연구는 각 나라가 보유한 쇄빙선이나 연구장비, 연구 노하우 등을 공유하며 국제공동연구를 다양하게 추진한다. 지금 당장은 큰 영향이 없더라도 코로나19 유행이 지속되면 내년 프로젝트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예로 지난해 극지연이 참여키로 한 최대 규모 북극 국제공동연구 프로그램 '모자익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일부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모자익 프로젝트는 다년생 해빙에 정박한 쇄빙연구선(독일의 쇄빙연구선 폴라스턴 호)이 북극점을 포함해 북극해를 13개월간 무동력으로 표류하면서 북극의 환경변화를 종합적으로 관측하는 연구다. 극지연은 아리랑 2, 3, 5호의 위성이 보낸 탐사자료 분석 등 인공위성 원격탐사 분야를 맡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폴라스턴 호는 약 3주간 정박을 포기했다. 북극 주변 항구와 공항이 폐쇄되면서 교대 연구원 이동을 위해 연구지점을 벗어났다. 이로 인해 대기측정과 해빙 얼음 시추 등 일부 프로젝트가 중단된 상황이다.
남극의 기지들도 대부분 교류를 중단하고 있다. 김성진 연구반장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남극 연구기관은 오는 10월부터 내년 3월 중에 계획했던 프로젝트 36개 중 23개를 중단하기로 했다. 이 기관은 성명을 통해 '코로나19가 지구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한 대륙(남극)만 감염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면서 '우리는 이 상태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연구반장은 "극지연구소 내 각 연구부서 별로다양한 국제교류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특별히 어떤 프로젝트가 미뤄지거나 보류 중인지 모두 확인할 수 없지만 기지의 방문이 엄격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 연구인원이 세종기지를 방문해서 수행하는 모든 종류의 국제 공동연구가 미뤄지거나 보류 될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의 기지들이 관측 네트워크와 데이터 공유 등의 국제 교류 프로젝트만 진행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정 월동대원도 "대만대학팀과 기지 주변 가장 높은 멜버른 산에 방문해 장비를 설치하고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키로했지만 장비에 문제가 생겨 올해 말에는 보수가 진행돼야한다"면서 "남극환경은 매우 혹독해 이번 하계시즌에 들어오지 못하면 하늘과 바닷길이 막힌다. 장비를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가는 재설치라는 최악의 상황이 생길 수도있는데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만팀이 들어올 수 없게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대만대학팀의 지시를 받아 보수를 하고싶지만 멜버른 산 운송수단인 헬기도 중단된 상황이라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며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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