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양명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사진= 대덕넷DB]
                     양명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사진= 대덕넷DB]
지난 12월 12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의 “대한민국 과학기술 혁신과 구조개혁의 의미” 관련 강연을 들었다. 모든 내용을 공감하는 것은 아니나, 고뇌의 흔적이 묻어나서 좋았고,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여 본다. 그런데, 연구개발 카르텔의 실례로 제시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사용후 핵원료 관련 연구”를 “연구내용은 거의 동일한데, 제목만 일부 바꾸어서 과제를 수주”한 적폐로 제시한 것 보고, 일반인의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 (여기서, “사용후 핵원료”라 적은 것은 “사용후핵연료”를 의미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59년 설립된 이래 원자력 관련 광범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원자력기술의 핵심은 원자로(nuclear reactor)기술과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기술이다. 원자로기술은 1980년대 초부터 시작된 원자로기술자립 사업을 통하여 발전용 및 연구용 원자로부터 중소형 원자로 까지 기술자립을 이루었고, 아랍에미레이트, 요르단에 원자력시스템 수출 성과를 달성하였다.

핵연료주기기술분야는 우라늄 채광, 변환, 농축, 핵연료가공, 사용후핵연료 처리 및 방사성폐기물 처분 분야 등을 포함한다. 현재, 우리나라 핵연료주기기술 분야의 기술수준은 핵연료 가공기술의 국산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우라늄-235 함량을 증가시키는 우라늄 농축분야와 사용후핵연료에서 잔류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취출하여 재활용하는 재처리분야는 핵무기 제조와 직접 연관될 수 있어서 연구수행에 막대한 국제적 제약이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 및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등으로 우라늄 원료가격의 폭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우라늄 농축기술의 개발이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으나,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국제사회가 우라늄 농축기술개발을 용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용후핵연료관리 문제는 바로 발 앞에 떨어진 불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타다 남은 우라늄이 약 92 퍼센트, 새로 생긴 플루토늄이 약 2 퍼센트, 페기물이 약 6 퍼센트 존재한다. 쉽게 생각하면, 우라륨과 플루토늄을 회수하여 재사용하고, 폐기물만 심지층에 파 뭍으면 폐기물 양도 줄고, 방폐장 부지도 줄이고 경제적 잇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여러 사안이 겹쳐 있다. 회수된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현재의 상용 발전로보다는 개발 중인 미래형 발전로에 이용하여야 효과성이 배가 될 수 있고, 핵물질 회수공정에서 발생되는 순수 플루토늄은 핵무기 제조의 핵심 원료이며,  이러한 모든 처리공정은 고 방사성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특수 차폐연구시설에서 원격작업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사용후핵연료의 화학물성 등 기초 연구부터, 사용후핵연료 가공기술, 원격취급기술 및 차폐연구시설 관련 모든 기술을 민감기술로 분류하여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관련 기술개발을 제안할 때마다 검토하고, 국제적 제약을 가하고 있다.

원자로기술의 국산화 단계에서 이미 체험했듯이, 우리가 자체적 기술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상용화를 추진하면, 외국의 기술패권 회사는 막대한 금액의 로얄티와 사업비를 요구한다. 핵연료주기기슬도 우리가 핵심 원천, 전략기술을 확보하고 있을 때 정당한 의견제시와 합당한 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국가연구소 성격인 정부출연연구소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사업화시켜 국가경제에 기여는 물론, 미래기술에 대한 핵심 전략기술을 확보함으로써 국가의 전략적 결정에 도움을 주는 과학기술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 핵연료주기의 핵심 기술개발을 위하여 모든 사항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70년대부터 프랑스와 재처리 기술협력, 벨기에 및 캐나다와 혼합핵연료 기술협력, 1990년대 미국, 캐나다, IAEA와 사용후핵연료 건식처리 기술협력, 2010년대까지 미국과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협력 연구 등을 많은 국제적 제약 및 어려움을 뚫고 이어오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를 미래의 자원으로 볼 것인지, 또는 폐기물로 간주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내외 전문가들도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관련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여야 한다는 것은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없다.

대외적으로 설명할 때, 모든 것이 공개되는 현 상황에서는 연구내용을 일부러 모호하게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전문가 심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설혹, 비슷한 연구내용으로 제목만 바꿔서 연구과제를 수주하여도 참여 연구원은 추가로 받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없다. 국가적 사명감을 가지고, 국제사회의 견제를 뚫고 매일 매일 연구과제 성공을 위하여 고뇌를 거듭하는 과학기술인을 한마디의 말로서 욕보이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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