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전곡리·임진-한탄강 구석기 주먹도끼···' 학술연구서
"교과서에 '30만년 전에 제작 됐다'고 수록된 전곡리 주먹도끼가
실은 과도한 흥분감 속 외견·희망에 기반한 확대 과장"이라고 지적
고고학계 지난 45년 간 과학적 접근으로 막연한 추정 사실 밝혀내
과학에 '관찰의 이론 의존성'있다면 고고학엔 ‘연구의 희망 의존성’
"선입견과 안일은 과학에나 고고학에나 최대의 적이라는 교훈 시사"

유용욱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 출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지명훈 기자]
유용욱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 출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지명훈 기자]

저 먼 우주에는 '신성(nova)'이란 현상이 있다. 지구에서 너무 멀어 보이지 않다가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사라질 때 비로소 관찰되는 별이다. 과학철학에는 신성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가 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코페르니쿠스 혁명)한 1543년 이전의 유럽 천문학 관측기록에는 신성이 없다. 이에 비해 이 기간 중국의 천문학 기록에는 신성이 많이 등장한다. 

자전하는 지구에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과학철학의 분석은 이렇다. 천계(달 위쪽)의 불변성 또는 완벽성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 영향을 받은 유럽은 신성을 지구 대기권의 잦은 기상현상으로 간주해 기록하지 않았다. 불변은 완전의 속성이다. 이에 비해 중국인들은 천문 현상의 변화를 당연시할 뿐 아니라 길흉 판단의 단서로 파악해 꼬박꼬박 기록했다. 

과학철학은 이처럼 선입견이 지각 자체에 영향을 주거나 똑같이 감지했더라도 해석을 달리하게 만드는 현상을 ‘관찰의 이론 의존성’이라고 부른다. 

유사한 현상이 한국의 고고학계에도 나타났다. 유용욱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등이 참여해 최근 출간한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 연구의 성과와 전망’에는 ‘연구의 희망 의존성’이라 할 만한 고고학계의 허실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1978년은 국내 고고학계의 축제의 해였다. 전곡리(경기 연천군)와 임진-한탄강 유역에서 발견된 주먹도끼가 서양의 아슐리안(Acheulian, 프랑스 지역명) 주먹도끼와 유사한 형태인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국내 고고학계는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50만~15만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미뤄 전곡리 주먹도끼는 30만년 전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고고학계는 서양 우월주의에 쐐기를 박을 만한 사건이라며 흥분했다. 1940년대 미국 하버드 대학의 석학 모비우스(H. L. Movius)는 서양은 주먹도끼 문화권으로, 남부아시아와 동아시아는 찍개 문화권으로 구분하고 동아시아의 고인류는 주먹도끼 같이 발달된 석기를 제작할 수 없을 만큼 ‘문화적으로 지체(culturally retarded)’ 됐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은 인종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당시 대한민국이 동경하던 서구 구석기 유물과 동일한 오브제(주먹도끼)의 발견은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생각 이상으로 훌륭하고 뛰어난 선사 문명을 보유했을 지 모른다’는 과도한 황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고 전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도 고무됐다. 경제개발을 통해 국력신장과 국위선양을 도모하는데 국민의 정서적 자긍심은 중요한 동인이었다. 남북이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던 당시, 유구한 역사의 구석기 유적 발굴은 국가적 자존심이었다. 역사 경쟁은 체제 경쟁의 하나였다. 

그 ‘과도한 흥분감’ 속에 전곡리 유적은 1970년대 말 교과서에 ‘30만 년 전의 구석기 유적’이라고 기술돼 지금에 이른다. 이선복 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교과서 수록이 유적의 지질학적 평가나 연대 측정 결과가 아니라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그 정도는 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정으로 제시됐다 ”고 지적했다. 

전곡리 주먹도끼 모습. [사진= 유용옥 교수]
전곡리 주먹도끼 모습. [사진= 유용옥 교수]

전곡리 유적의 교과서 등재는 자괴심을 자부심으로, 콤플렉스를 프라이드로 치환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후의 연구에서 지각을 마비시키고 관찰과 해석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행스러운 건 흥분 속에서 냉철함을 되찾은 국내 고고학계 일부의 움직임이다. 최초로 전곡리 유적지를 발견한 고 김원용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와 이 전 교수, 그리고 유 교수 등으로 이어지는 후학들이 그 주인공이다.  

과학적 측정법을 도입한 국내 고고학계는 2009년 전곡리 도로 공사 현장에서 채취한 샘플 측정(OSL연대측정법)으로 전곡리 주먹도끼가 발견된 퇴적층이 대략 6만년 전의 것이란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그 이듬해인 2010년 이 전 교수는 전곡리 선사유적지 토층박물관의 탄화목 시료를 측정(AMS연대측정법)해 4만년 전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는 주먹도끼의 대부분이 나온 점토층 바로 위층인 아이라-탄자와(Aira-Tanzawa) 화산재층이 3만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결과도 내놨다.  

유 교수와 충남대 고고학과 구석기프로젝트팀은 충남대박물관에 소장된 전곡리 지표 수습품을 분석해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전곡리 뿐 아니라 임진-한탄강 지역 주먹도끼들이 가장 바닥층인 현무암 층이 아닌, 이 보다 3m가량 더 높은 점토층에서 대부분 발견됐다는 점이다.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들은 그동안 꾸준히 지속돼 2022년 한국고고학회 개별 세션에서 발표됐고 2023년 두 권의 종합 학술 도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유 교수는 “기존에는 전곡리 유적 퇴적층 최하부(현무암층)의 연대가 30만년 전의 것이라는 이유로 전체 유적 연대를 30만년 전으로 간주하고 이 유적에서 발굴된 주먹도끼도 30만년 전의 것으로 끌어 올려보자는 주장(중기갱신세설)이 있었는데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확대 해석에 불과했다”며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착각하고, 그것이 착각이라는 점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집단 최면이었다”고 비판했다. ‘연구의 희망 의존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점이다.

유 교수는 이 대목에서 세기적인 일본 구석기 유적 사기사건을 떠올렸다. 희망에 근거한 연구가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강조하기 위해서다.  

전곡리 주먹도끼 발굴지 지층 단면도. 가장 아래가 현무암층인데 30만년 전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를 전체의 유적 연대로 파악했고 따라서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도 30만년 전의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의 조사 결과 주먹도끼가 출토된 곳은 이 보다 3m 가량 높은 점토층이고 이 점토층 바로 위의 아이라-탄자와(Aira-Tanzawa) 화산재층은 3만년 전까지 연대가 내려간다. [사진= 유용옥 교수]
전곡리 주먹도끼 발굴지 지층 단면도. 가장 아래가 현무암층인데 30만년 전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를 전체의 유적 연대로 파악했고 따라서 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주먹도끼도 30만년 전의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의 조사 결과 주먹도끼가 출토된 곳은 이 보다 3m 가량 높은 점토층이고 이 점토층 바로 위의 아이라-탄자와(Aira-Tanzawa) 화산재층은 3만년 전까지 연대가 내려간다. [사진= 유용옥 교수]

일본의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는 1981년 미야기현에서 4만년 전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견하면서 일약 유명해졌다. 그 때까지 가장 오래된 일본 구석기 유물은 3만년 전의 것이었다. 신이치는 연이은 발굴로 일본 구석기 역사를 무려 70만년 전까지 끌어 올려 ‘신의 손’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가 발견하는 구석기 유적은 모두 사전에 유물을 제작해 땅속에 묻어둔 것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의 추적으로 밝혀졌다.

고고학계에 따르면 신이치가 발굴한 유물은 처음부터 의심스런 구석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주변 국가의 구석기 유물과 너무 달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보기 힘들었다. 또 수십㎞나 떨어진 곳에서 나온 유물이 서로 짝이 맞는 일도 있었다. 가짜임을 의심해 볼 만한 증거가 많았지만, 일본 고고학계는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렸다. 

유 교수는 “전곡리 주먹도끼도 아슐리안 주먹도끼와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중기갱신세에 해당하는 ‘전기 구석기’ 유물로 간주했다. 이는 언론 보도와 박물관 교육자료 및 교과서 수록으로 확산됐고 한국 고고학에 대해 문외한인 해외학자들의 면밀하지 않은 가세로 기정사실로 굳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최근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전곡리 퇴적층을 시료로 당시 유적 내에서 활동하던 고생물들(동물 및 고인류 포함)의 유전자(DNA) 검출 작업을 진행되고 있다”며 “전곡리 거주 고인류의 정확한 종적 구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믿음은 때로 과학의 눈을 가리지만, 다시 과학에 의해 장막이 걷힌다. 

유 교수는 “전곡리 주먹도끼가 서양보다 상당히 늦게 자체적으로 발생한 아시아 극동 유물이라는 인식 전환에 무려 45년이 걸렸다”며 “고고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안일’이라는 브루스 트리거 전 캐나다 맥길대 교수(고고학)의 지적을 다시 새겨볼 만 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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