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IBS 단장, 자기조립 특성 활용해 분자 다면체 합성
보고된 것 중 가장 커∙∙∙약물 운반체∙광촉매 등 응용 가능

속이 빈 캡슐 형태의 분자 합성. [사진=IBS 제공]
속이 빈 캡슐 형태의 분자 합성. [사진=IBS 제공]

국내 연구진이 신라 시대 귀족들이 놀이로 사용했던 주사위 '주령구'의 독특한 형태를 모방한 분자 그릇을 개발했다.

IBS(기초과학연구원, 원장 노도영)는 김기문 복잡계 자기조립 연구단장(포스텍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활용해 속이 빈 육팔면체 모양의 거대분자를 합성했다고 2일 밝혔다. 크기는 5.3nm로 지금까지 보고된 수많은 분자 다면체 중 가장 크다.

분자 다면체는 레고 블록 같은 여러 개 분자가 결합한 형태다. 특히 속이 빈 분자 다면체는 약물을 내부에 저장∙전달하는 약물 운반체, 광촉매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개발된 대부분 분자 다면체는 크기가 2nm 이하였다. 보통 약물은 2nm, 항체는 5nm 크기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부에 담을 수 있는 분자가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연구진은 2015년 6개의 사각형 포피린(Porphyrin) 분자와 8개의 삼각형 포피린 분자가 스스로 조립해 만드는 다면체 '포피린 박스(P6L8)'를 합성한 바 있다. 이때 합성한 포피린 박스 크기는 약 3nm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보다 지름이 1.8배 큰 스스로 조립되는 분자 다면체를 합성했다.
 
연구진은 주령구의 독특한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주령구를 재현하기 위해 구성 분자의 길이와 각도를 정밀하게 설계했다. 이후 분자의 자기조립 특성을 활용해 12개의 사각형 포피린 분자와 24개의 굽은 막대기형 분자로 구성된 '분자 주령구(P12L24)'를 합성했다.

공동 제1저자인 구재형 연구원은 "거푸집을 만들고 분자 조각들을 꿰맞추는 등 복잡한 단계가 필요했던 기존 합성법과 달리, 분자들이 스스로 조립되는 특성을 활용해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포항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분자 다면체의 정확한 구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분자 주령구가 단백질에 버금가는 거대한 크기이며, 속이 빈 육팔면체 구조임을 원자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어 광촉매로서의 활용 가능성도 확인했다. 빛을 쬐면 전자를 내어주는 포피린 특성을 이용해 화합물을 호두나무 뿌리에서 방출되는 천연물질 '주글론'으로 변환시켰다. 또 합성된 분자 주령구 내부에 막대기처럼 긴 전도성 분자를 담아 약물 운반체로서의 가능성도 입증했다. 전도성 분자 크기는 4nm로 지금까지 이 정도 크기의 분자를 케이지 내부에 담은 시도는 없었다.

김기문 단장은 "자연과 우리가 사는 세계는 화학자에게 새로운 물질을 설계하기 위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는 공간"이라며 "분자 주령구는 내부 커다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응용을 기대할 수 있는 만큼, 생물학적 응용에 필요한 안정성 확보 연구를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켐(Chem, IF 19.687)' 온라인판에 지난달 28일(한국시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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