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IBS 본원에서 온라인 퇴임식 개최
의대 나와 연구원으로···"연구 인생 행복했다"
노도영 원장 "기초과학 토대 마련해줬다"

흔적 

퍼지르고 앉으니 내 자리던데 
일어나 둘러보면 흔적도 없어
앞을 보고 걸으니 내 길이던데
멈춰 돌아보면 자국도 없네.

국내 1호 뇌 과학자 신희섭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사회성 뇌과학 그룹 단장이 연구 현장을 떠나며 읊은 서울대 후배의 시다. 그는 23일 IBS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따로 스승이 없이 열정만으로 뇌 분야 연구를 시작해 수많은 동료와 선후배 과학자분들 덕에 이만큼 올 수 있었다"며 "젊은 연구자분들을 보며 늘어지지 않고 끝까지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행복한 연구자의 길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국내 기초과학의 초석을 닦은 신희섭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사회성 뇌과학 그룹 단장이 23일 IBS 본원에서 온라인 퇴임식을 가졌다. [사진=이유진 기자]
국내 기초과학의 초석을 닦은 신희섭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사회성 뇌과학 그룹 단장이 23일 IBS 본원에서 온라인 퇴임식을 가졌다. [사진=이유진 기자]
기초연구진흥법 제정과 함께 한국 기초연구 역사가 시작되던 1991년, 신 단장은 한국으로 귀국해 뇌 연구에 몰두했다. 국내 기초과학연구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노도영 IBS 원장은 "두 가지로 신 단장님의 연구업적을 생각해보면, 일생을 바쳐 뇌 과학 분야 한 우물을 팠다는 것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 기초과학에 틀을 세우고자 한 도전정신"이라며 "이제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후배 과학자들에게 영감이 되는 국내 1호 과학자로 남아줬으면 한다"고 축사했다. 

IBS 초대 원장인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IBS 원장직에 들어서면서 설립 취지에 맞게 가장 유능한 과학자를 모시려 했다. 그때 제일 먼저 찾아간 분이 신 단장님"이라며 "IBS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온 데엔 신 단장님의 공이 제일 크다. 앞으로도 세계 과학계에 기여하시길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진 KIST 원장은 "신 단장님 덕분에 KIST에 기초과학연구 토대가 마련됐다"며 "의사, 과학자로서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 신 단장님의 이번 퇴임식이 연구 일생의 마침표가 아닌 새로운 연구 연장선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고 했다.

◆ 의대 출신 과학자

신 단장은 1974년도 서울대 의대 졸업 이후 미국 코넬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형적인 의사의 길로 들어서던 그는 이 무렵 의사가 아닌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그중에서도 유전학에 관심 있었던 그는 '뇌'라는 인류 난제에 도전했다. 

신 단장은 MIT(메사추세츠공대)와 POSTECH(포항공과대) 교수, KIST 책임연구원·뇌과학연구소장 역임 후 2012년 IBS 최초 연구단장으로 선정됐다. 46년간 기초과학자의 삶을 살아온 신 단장은 기억, 감정, 공감 등 인지기능 발생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뇌 연구에 유전학을 도입하기도 했다.

신 단장은 "의대를 졸업하며 정해진 의사의 길을 따라가기 싫어 연구자 길에 들어섰었다"라며 "오롯이 연구에 내 일생을 쏟아붓는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연구에 임했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그는 "연구자로 살아오며 옆을 지켜준 가족에게 미안함도 있지만, 연구자는 연구에 어느 정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내 연구 인생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  뇌 질환 치료제 개발 목표

간질이나 운동마비 등 뇌 신경질환 발병원인을 유전자 수준에서 규명한 신 단장의 연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 8여년간 IBS에서 197편 이상의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게재하며 꾸준한 연구성과를 내보였다. 

신 단장은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06년 과학기술부 1호 국가과학자에 선정됐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호암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으며 한국 기초과학계 초석으로 평가되고 있다.

퇴임 후 신 단장은 산업계 분야서 활동할 예정이라 밝혔다. 그는 "그간의 연구 기량을 바탕으로 뇌 질환 치료제 개발에 기여해 글로벌 수준의 치료기술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평생 꿈속에서 사는 게 익숙해 어려울 수 있겠지만 기대해달라"고 표했다.

끝으로 그는 "후배 연구자들이 더 깊이, 더 높게 나아가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다"라면서 "평생을 지향해온 '몰두하되 집착하지 않는다'를 이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향후 이창준 단장이 이끌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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