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준공···용수공급, 홍수조절, 수력발전 기여
콘크리트댐 건설 계획이었지만, 정주영 회장 '사력댐' 설득
당시 철근·시멘트 없어 흙·모래·자갈로 댐 건설···"낭비는 죄악"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1일로 타계 20주기를 맞았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화의 주역입니다. 해방 이후 격동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중공업, 조선, 건설, 자동차 신화를 썼습니다. '현대'라는 기업을 통해 전후 국가를 바로 세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랬고 부산항을 비롯한 항만들, 수많은 교량들, 원자력 발전소가 그랬습니다. 

국가 발전의 중요한 역할만큼 회자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춘천 소양강댐입니다.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였던 터라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발전 전략은 수도권, 중앙, 집중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소양강댐은 수도권에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수도권에 생활, 농·공업 용수 공급뿐만 아니라 홍수 조절, 전력 생산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춘천 소양강댐에는 정주영 회장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대덕넷이 지역 현장을 찾아 그 시대정신을 읽어보았습니다. 3월 22일은 또 세계 물의 날이어서 의미를 더합니다. <편집자 주>

소양강댐은 1967년 4월 15일 착공에 들어갔다. 당시 3대 국책사업이 경부고속도로(1970년), 소양강댐(1973년), 서울 지하철 1호선(1974년)이었다. 소양강댐이 국가 개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강유역종합개발계획에 따라 홍수조절, 용수공급, 수력발전을 위한 다목적댐으로 1973년 10월 15일 준공됐다. 6년 6개월 만에 만들어진 성과다. 이듬해 8월부터 운영한 소양강댐은 그간 국가 발전에 물꼬를 텄다. 

지난 11일 춘천시 소양강댐을 찾았다. 댐 높이만 123m, 길이는 530m였다. 강기호 소양강댐 지사장은 "소양강댐은 계획 홍수위 기준으로 물 29억t을 저장할 수 있다"며 "서울 면적 4.5m를 덮을 수 있는 물의 양"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소양강댐은 당시 국가 명운을 걸고 한 사업"이라며 "공사비 270억원은 현재 환산 가치로 60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 소양강댐에 깃든 '정주영 정신'

"나는 나라가 가난하건 부자이건 간에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국가의 시설물 건설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효율적인 시설이 되도록 설계되고 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더 낮은 금액으로 더 효율적인 공사를 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어이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공사를 해야 하는가.

정부 공사든 민간 공사든 되도록 공사 금액을 늘리는 연구만 하는 업자들이 꽤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건설'은 더 싸고 신속한 공사를 위한 대안 제시를 꽤 자주 내놓아서 정부나 건설업계의 심기를 많이 건드렸다. 

나는 어떤 정부든 결국 국가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신념으로 줄기차게 대안 제도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이 노력은 결국 1977년 정부가 대안 입찰 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리의 대안으로 시행됐던 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1967년도 소양강댐 공사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中 (정주영 著)>
 

정주영 회장의 '이 땅에 태어나서' 책 표지, 출판사는 솔. [사진=김인한 기자]
정주영 회장의 '이 땅에 태어나서' 책 표지, 출판사는 솔. [사진=김인한 기자]
소양강댐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한창이었다. 국가 인프라 확충이 이뤄지던 시기였고 이를 주도하는 관(官)의 힘은 컸다. 건설업자가 정부 발주 공사에 대안을 내놓는 분위기는 전례가 없었다. 소양강댐은 당초 콘크리트댐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으나, 정주영 회장의 제안으로 '사력(沙礫)댐'으로 건설됐다. 

소양강댐은 대일 청구권 자금이 일부 투입되는 공사로 일본공영이라는 회사가 설계에서 기술, 용역까지 맡았다. 일본공영은 댐에 관해선 세계적 기업이었고, 소양강댐을 콘크리트댐으로 건설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당시 국내엔 제철소가 없어 철근을 수입하고 있었고, 시멘트도 부족해 콘크리트댐은 국가 형편에 감당할 수 없다고 봤다. 또 이를 산간벽지까지 운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때 소양강댐 지천에 널린 흙, 자갈, 모래로 사력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한 것이다. 정 회장은 그의 저서에서 소양강댐을 '모욕 받으면서 시작한 공사'라고 표현했다.

"설계 변경을 하느라고 담당자들은 온 세계의 댐 자료는 다 모았다. 자료를 모아보니 2차 세계대전 이후 1백m가 넘는 댐은 대개 사력댐으로 만드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했다. 나는 건설부에 우리가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에 대안으로 내놓을 것이 있다고 전하고 곧 들어가서 사력댐 대안을 제시했다. 그때까지 일개 건설업자가 정부 발주 공사에 대안이라는 것을 내놓은 전례가 없었다. 고분고분, 그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것이 정부에 약한 건설업자의 기본자세였다. 

그런데 세계 굴지의 댐 건설 회사 일본공영의 설계안에 일개 청부업자가 대안이라니, 더구나 수자원개발공사에서 기본 계획 심사가 끝나고 건설부 승인까지 난, 이미 확정된 공사 설계였다. 당연히 관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반감으로 관이 펄펄 뛰었고, 세계 굴지라는 자부심이 정면 도전을 당한 일본공영도 가만있지 않았다. 삿대질에다, 주제도 모르고 죽으려고 용쓰느냐 등의 모욕에다, 아무튼 그때 나는 일개 청부업자가 주제 파악을 못 해서 당할 수 있는 일은 다 당했고, 먹을 수 있는 욕은 다 먹었다."

◆ 갖은 수모 겪었지만···결국 사력댐으로

정주영 회장은 그의 저서에 일본공영과 건설부, 수자원개발공사(現 K-water), 현대건설 4자 연석회의에서도 기술자들이 기를 못 폈다고 썼다. 정주영 회장이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득에도 "당신 어디서 댐 공부를 했냐" "무식한 소리 하지도 마라" "그게 어디서 배운 소리냐" "어떤 사람이 당신 선생이냐"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건설부 장관 보고를 받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해 과정을 재검증했다. 결과적으로 콘크리트 설계보다 건설비용이 30% 줄어들고, 소양강댐 인근 암반이 약해 콘크리트댐보다 사력댐이 낫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양강댐이 지천에 널린 흙, 모래, 자갈로 댐을 만들게 된 배경이다. 그 이후로 정부는 1977년부터 건설업체들이 대안을 내놓은 입찰 방식을 채택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정 회장은 그의 저서에 이런 소신을 밝혔다. 

"정부가 '현대'를 껄끄러워하는데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모색한 예산 절감 대안을 제시해서 국가에 보탬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듭된 정치적인 격변 속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결국은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현대'로 인정받으며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어떤 정부든 결국 국가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신념으로 줄기차게 대안 제도를 제도로서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 "낭비는 생각 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죄악"

정주영 회장은 사업을 일군 초창기에는 '돈 벌어 밥이나 실컷 먹고 살자'는 현실적인 소망이 전부였다고 한다. 나, 가족들, 직원들만 챙기면서 살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일이 커지면서 생각의 테두리도 점점 커졌다고 기록했다. 그는 국가 예산이든 시간이든 낭비를 싫어했다. 그런 의지로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누구의 것이든, 개인 것이든, 나라 것이든, 시간이든, 돈이든, 어쨌든 낭비는 생각 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일종의 죄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국졸이 내 학력의 전부이고, 나는 문장가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될만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다. 또 평생 일만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새겨질 어떤 고귀한 철학을 터득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라고 두 생애, 세 생애 동안 이룬 일들이 아니다. 한 생애에 그만한 일들을 해놓고 떠난 것이다.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환경, 우수성의 차이로 물론 누구나 다 한 생애에 그만한 일들을 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적당히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나름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소양강댐 정보. 클릭하시면 확대가 가능합니다. [사진=K-water 소양강댐지사 제공]
소양강댐 정보. 클릭하시면 확대가 가능합니다. [사진=K-water 소양강댐지사 제공]
소양강댐 담수식 기념 비석. [사진=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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