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글-이 소영 과학칼럼니스트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 밝고 명랑한 멜로디로 친숙한 이 노래의 제목 ‘라 쿠카라차’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 흥겨운 멜로디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겐 충격일 테지만, 사실이다. 영어로 바퀴벌레를 뜻하는 ‘cockroack’ 역시 ‘라 쿠카라차’에서 유래했다.

노래 속 바퀴벌레와 달리 현실세계에는 바퀴벌레는 혐오와 박멸이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바퀴벌레 입장에서는 이런 인간의 생각은 주객이 뒤바뀐 꼴이라 달갑지 않을 게다.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고작 10만년, 하지만 바퀴벌레는 3억5천만년 전 고생대 석탄기부터 지구상에 서식해왔으니 말이다.

바퀴벌레 시각에서는 근래에 나타난 인간이란 존재가 바퀴벌레의 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길지 모를 일이다. 바퀴벌레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3억5천만년을 생존했을 뿐 아니라 화석 속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바퀴벌레는 공룡 등 지구상 대부분의 생명체를 멸종 시킨 빙하기마저 이기고 전세계 곳곳에서 4천 여종이 활발히 번식하고 있다. 바퀴벌레의 놀라운 생명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퀴벌레는 원래 열대지방에 서식했기 때문에 습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지만 먹이와 물만 있으면 웬만한 환경의 제약을 거뜬히 이겨낸다.

물만 있는 경우 24일간 생존하고 먹이와 물, 아무것도 주지 않은 경우에도 8일을 견딘다고 한다. 바퀴가 몸 속에 영양분을 저장해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퀴벌레의 식성 역시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생존률을 높여준다. 잡식성으로 음식물·동물의 사체·오물 등은 물론 종이, 가죽, 머리카락, 비누, 치약, 본드, 손톱 등 먹지 못하는 것이 없다.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바퀴벌레의 운동신경과 학습 능력은 인간에 비해 전혀 뒤 떨어지지 않는다.

밤에 사각거리는 바퀴벌레의 소리에 놀라 불을 켜보면 바퀴벌레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불이 켜 지는 순간 매우 빠른 속도로 숨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바퀴벌레가 이동하는 순간 속도는 최고 시속 150km로 매우 빠르게 움직인다.

또한 바퀴벌레의 감각기관이 정보를 인식해 행동으로 이행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겨우 1,000분의 1초로 사람의 비해 10배 많게는 100배 빠른 반응속도를 가진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이 바퀴벌레를 맨손으로 잡기 어려운 것이다. 이 외에도 바퀴벌레는 자기 몸의 몇 천 배 높이에서 떨어져도 끄떡없는 운동신경을 소유하고 있으며 몸을 회전하는 능력도 지구상 생명체중 가장 빠르다. 게다가 바퀴는 학습능력을 갖추고 있어 자신이 다닌 길을 기억하고,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줄여가기도 한다.

번식력도 대단하다. 바퀴벌레는 알에서 깨어나자 마자 생식활동을 하는데, 단 한번의 생식으로 암컷은 평생 알을 낳을 수가 있다. 한 번에 보통 30~40개의 알을 낳으며 알을 벤 암컷이 죽는 경우에도 알집만 떨어져 나와 살 수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수백 수천마리로 불어난다.

암컷이 독극물을 먹고 죽을 경우 알집에서 해당 독극물에 내성이 생긴 바퀴벌레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핵 폭발 이후에도 살아남을 생명체로 바퀴벌레를 지목하는 것은 이처럼 뛰어난 적응 능력 때문이다. 방사능에 오염된 세계에도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각종 피부 질환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며 병균을 옮기는 악역을 하고 있다. 인류는 우리 삶 곳곳에 침투해있는 이 해충과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3억 5천만년 동안 갈고 닦은 바퀴벌레의 생명력을 이기긴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바퀴벌레의 강인한 생명력은 인류에게는 연구하고 배워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출처: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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