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난 케이이치 주한 일본대사관에 前 과학관(科学官)

주한일본대사관 아난 케이이치 전 서기관.[사진=아난 서기관]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한일본대사관 아난 케이이치 서기관입니다. 제가 일본대사관에서 과학을 담당하고 있다는 인연으로 매달 한 번씩 대덕넷에 '日과학통신'이라는 코너를 통해 일본 과학에 관한 최신 뉴스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임기 3년을 모두 채우고 저는 올 7월에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日과학통신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편집을 담당해 주신 대덕넷 편집부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한국에서 과학기술에 관한 과제를 담당해 왔고, 특히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문제에 주력해 왔습니다. 이 문제는 많은 한국 국민께서 걱정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지금도 여전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힘들어하는 후쿠시마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 왔습니다.  

6년여의 검토 기간을 거쳐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원전 부지에 계속 늘어나고 있는 처리수를 처리하기 위하여 해양 방출을 결정하였고, 그 안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또, 도쿄 전력은 이 기본방침에 입각하여 검토를 진행하였고, 7월 22일에는 독립 규제 당국인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해양 방출에 대한 실시 계획과 필요한 설비 건설 등에 관한 인가를 취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인가를 받았다고 해서 즉시 해양으로 방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도쿄전력은 설비 설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사용 전 검사를 받아야 하며 그 밖에도 처리수 방출을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들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것이 완료될 때까지 해양 방출은 시행되지 않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물을 해양으로 방출하는 것은 전례와 실적을 갖춘 처분 방법입니다. 규제 기준을 엄격하게 준수한다는 전제 하에 지금까지도 실시되어 오고 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관리 하에 실시되는 해양 방출은 가동중인 전세계의 원전에서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또 확실하고 안정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의 경우, 처분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처리수에 포함된 삼중수소(트리튬) 이외의 방사성 물질을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의 권고에 따라 정해진 일본의 규제 기준을 밑돌도록 다핵종제거설비 등(ALPS)을 통해 정화합니다. ALPS 등으로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에 대해서도 큰 폭으로 희석하여 규제기준을 크게 밑도는 농도로 만듭니다. 그런 다음 연간 삼중수소 방출량이 통상 운전 시를 초과하지 않는 수준으로 방출합니다. 

또, 해양 환경에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조치와 함께 방출 후에도 해역 모니터링을 계속적으로 실시하여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치를 강구합니다.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 대한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현재 IAEA는 일본의 처리수 해양 방출 계획과 이와 관련된 활동 상황에 대하여 국제적인 안전기준에 비추어 리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금년 4월 IAEA는 처리수의 안전성에 관하여 도쿄전력과 그 담당 부처인 경제산업성을 대상으로 한 리뷰 결과를 공표한 바 있습니다.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지난 5월 방일 때 "우리 IAEA는 처리수가 태평양으로 방출될 때 그것이 국제적인 기준에 완전히 적합한 형태로(in full conformity with the international standards) 실시될 것이며 방출은 환경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는다(it will not cause any harm to the environment)고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IAEA는 규제당국인 원자력규제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리뷰도 실시하고 있으며, 6월에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리뷰들은 앞으로도 계속 시행되어 그 결과가 일본의 대처에 반영될 것이며, IAEA는 해양 방출 전에 포괄적인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도 긴밀히 의사소통을 해 왔습니다. 제가 있는 서울의 일본대사관이나 도쿄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혹은 양국 외교 당국 간에 직접적으로 과학적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히 도쿄 전력이나 관계 부처가 참가한 가운데 작년 12월과 금년 1월, 6월 총 3회의 온라인 회의 형식의 의사 소통을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대처는 한국과의 지리적 근접성,한국 국민 여러분의 우려, 양국간 관계의 중요성 등을 바탕으로 실시한 것입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IAEA의 리뷰에 조언을 해 주시는 국제 전문가 그룹에도 한국인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IAEA가 지난해 11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근해에서 실시한 해양 모니터링에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응은 투명성을 높인다는 관점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논의해 나간다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한일 양국간의 큰 움직임 속에서 한국의 행정기관은 물론 연구자, 언론, 어업관계자, 소비자단체 등 폭넓게 관계자들 이야기를 나눠왔습니다. 한국과의 대화 창구를 넓히고 한일 간에 '열린' 관계를 만드는 것이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리수 문제와 같은 과학 문제에 대한 '열린 사회'의 중요성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처리수를 비롯한 방사선 영향 문제는 과학과 비과학의 구별이 어렵고 비과학적인 주장이 마치 과학적인 것처럼 확산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의 구별 조건으로 반증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즉, 오류를 체크할 수 있는 것이 과학의 조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처리수 문제를 예로 들면 일본이 방사성 물질을 해양에 방출하면 한국에 반드시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편, 해수에는 자연 상태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으며(물론 우리의 인체나 식품에도), 해양 방출되는 처리수의 영향은 후쿠시마 근해에서도 원래 포함되어 있는 방사능 물질과 비교해도 극히 적다 혹은 세계의 다른 원자력 시설에서도 안전하게 해양 방출이 실시되고 있다고 반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서 무조건 논의를 거부한다면 이 주장은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포퍼의 논의는 이러한 과학의 특징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학이 반증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즉 과학의 비판적 방법, 비판적 이성은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회에서만 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열린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제가 만난 분들은 누구든 기꺼이 저와 의견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물론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께서 주신 의견은 배울 부분도 많아 일본에서 진행하고 있는 검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본측의 담당자와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요. 또, 연구자 중에는 적지 않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하여 여론에 이를 알리려는 분들도 계시어, 과학자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에 경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양국 정부 간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긴밀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등 열린 관계가 진전되고 있고 저도 조금이나마 거기에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수산물에 미치는 영향 등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앞으로도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한일 간의 ‘열린 관계’가 지속되기를 기대합니다.  

대덕넷의 독자 대부분은 과학자나 과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일 듯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도 이 처리수 문제에 과학적인 시각에서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이 문제의 해결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스스로가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임기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처리수 이외에도 한일 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 남아 있겠지만,앞으로 양국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는 일본에서 응원하고 있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필자 약력:도쿄대학에서 진화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일본 문부과학성에서 우주개발, 원자력협력, 나가사키대학에서 감염증 연구거점 정비 담당 등을 거쳐 2019년부터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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