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질본엔 밥차보다 '전문가 권한' 더 시급

문 대통령 11일 질병리본부 깜짝 방문해 식사 대접
질본, 책임만 있고 권한 없어 '골병'···이면까지 봐야
행시 출신 관료 질본 주요보직에, 전문가 중용돼야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저녁 충북 오송에 위치한 질병관리본부를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다. <사진=청와대 제공>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저녁 충북 오송에 위치한 질병관리본부를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전 예고 없던 전격적인 현장 방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저녁 충북 오송에 위치한 질병관리본부를 찾았다. 청와대는 이날 긴급상황센터에서 근무하는 질본 직원들을 위해 갈비찜 등 한식으로 특식 밥차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방역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질본 직원들을 격려한다는 취지였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가 격려하는 마음은 곧바로 국민의 마음"이라며 "하루빨리 (코로나19) 터널을 벗어나 국민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끝까지 열심히 해달라. 앞으로도 질본이 (감염병 대응의) 중심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격려 방문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질본 직원들도 국가 최고 사령탑이 전격 방문해  갈비찜 대접까지 받은 것에 대해 잠시나마 위로가 된 분위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대통령이 그보다 더 중요한 격려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통된 시선은 질본에서 전문가가 기를 못 펴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본 조직은 전문가보다는 오히려 관련 전문 지식이 없는 관료나 장관이 득세해왔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3개라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만한 화두다. 코로나19 초기 중앙방역대책본부(질병관리본부장)가 꾸려졌지만, 위기 경보 격상에 따라 지난 1월 27일 중앙사고수습본부(보건복지부 장관), 2월 2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국무총리)가 생겼다. 기자들 사이에선 중대본, 방대본 구분에 혼동이 생기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동안 컨트롤타워 수장 자리에 전문가가 없다 보니, 정부와 전문가 간 마스크 착용 기준과 입국 금지 유무를 판단하는데 엇박자가 났다. 정 본부장은 "방역하는 입장에선 누구라도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게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소신 발언을 이어왔고, 마스크 착용 기준에 대해서도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관료, 장관, 정치인들은 이와는 상반되거나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반복했다. 

왜 전문가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까. 질본 구조와 연관된다. 질본은 보건복지부가 관장한다. 2003년 창궐한 사스(SARS)에 대한 방역평가보고회 과정에서 신종 전염병에 효율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복지부 산하 국립보건원을 확대 개편해 설립됐다. 이런 이유에서 질본 주요 보직은 복지부 국·과장급 관료가 거쳐 가는 자리로 인식돼 왔다.

정기석 전 질본 본부장(現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질본의 문제점은) 전문가가 아닌 행정고시 출신 복지부 관료들이 주요 보직에 있는 것"이라면서 "복지부가 자기들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곳으로 질본을 이용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 전 본부장은 질본 본부장에게 인사권이 있지만, 주요 보직에는 복지부 입김이 들어간다고 지적한다. 

현실은 어떨까. 질본 내부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인 긴급상황센터, 감염병관리센터 수장은 행정고시 출신 복지부 관료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컨트롤타워 수장으로 있으니 선제적이고 과감한 선제 조치가 나올 리 만무하다. 

현재 질본 긴급상황센터장 A씨는 연세대 사회학과 학사 취득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미국 시라큐스대 맥스웰대학원 박사 학위를 얻었다. 주요 경력은 정책, 국제협력, 보육사업기획, 의료사업지원 등이다. 감염병관리센터장 B씨도 학·석사 모두 행정학으로 취득했고, 박사 학위만 차의과대학교에서 보건학으로 받았다. 주요 경력으로는 재정 운용, 보험급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운영지원 등을 했다. 이전 보직자 다수도 복지부 관료 출신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 방역을 진두지휘할 정은경 본부장이 초기 두 달을 브리핑장에 직접 나섰다. 초기 두 달은 방역에 있어서 '골든 타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대책 마련에 사력을 다해야 할 수장이 확진자 동선 파악, 신천지 신도 현황 파악 등 기초적인 정보를 습득해 언론 대응에 임했다. 긴급상황센터장과 감염병관리센터장이 관련 전문가였다면 이같은 일은 있을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국내에서 롤모델로 자주 언급되는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는 관련 전문가들이 주요 보직에 있다. 또 EIS(Epidemic Intelligence Service)라는 제도를 통해 역학조사 전문 요원도 양성하고 있다. 그만큼 전문가에게 권한과 책임을 막중하게 부여한다. 이공계 출신인 독일 메르켈 총리도 전문가 의견을 인용하며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결국은 전문가 중용이다. 전문가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철저히 실력에 기반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전문가들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 현재 질본은 책임은 막중하지만, 권한은 없다. 최근 질본 현장에서 만나는 직원들에게 애로사항을 물을 때마다 "지금 얘기하고 있는 시간도 아까울 지경"이라며 조바심을 낸다. 전문가들은 방역에 총력을 다하기 위해 1분 1초가 아까운 지경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선 이런 관례부터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 질본에는 밥 대접보다 권한 위임을 통한 전문가 대접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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