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사이언스코리아 2부-③민간연 시스템]
나홀로 연구 문화는 이제 그만…오픈이노베이션으로 성과 창출
국책연구기관과 민간기업연구소를 같은 잣대로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면 아래서 이뤄지는 혁신의 정도 차이가 성과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점은 명확하다. 민간기업연구소의 괄목할만한 성장세가 출연연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으로 번지는 가운데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변화는 더이상 필요가 아닌 필수조건이 되어가고 있다.
민간기업연구소의 가장 큰 강점은 목표가 정확하고, 역할이 정립돼 있으며, 이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민간기업연구소를 개방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반면 출연연은 폐쇄적이란 평가를 받는데, 이는 거기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환경과,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면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연구 문화로, 하나의 대안이 되고 있다.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 기업이나 재단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는 비결은 장기적인 지원과 자유로운 융합연구 환경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민간 기업이나 재단에서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점차 증가하는 이유로 장기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자유롭고 안정적인 연구 기회를 제공받고 다양한 분야의 융합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민간기업 소속 노벨상 수상자는 25명으로 물리학상이 19명으로 비중이 가장 높고 민간재단 지원 분야는 생리의학 분야에 집중됐다. 민간기업 소속별로는 미국 벨연구소가 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IBM이 5명, GE가 2명 순이었다. 이들 기업의 수상자 배출 비결은 세계적 우수 인재의 발굴과 활용,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구축, 다양한 분야가 참여하는 융합 연구, 기초연구를 중시하는 기업 철학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재단 중에는 미국의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HHMI; Howard Hughes Medical Institute) 모험연구 지원사업인 '인베스티게이터 프로그램(Investigator program)'이 총 325명의 수혜자 가운데 17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프로그램 지원 후에 노벨상을 수상한 14명은 평균 23.9년 동안 지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연구 성과 창출이 장기적인 철학과 전략을 가지고 진행돼야 하며, 다양한 해외 인력 유입을 통해 기술 융합과 확산을 추구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차두원 KISTEP 정책기획실장은 "정부 기초연구 정책의 보완재 역할을 수행하는 민간의 지원은 유연성, 비관료적인 체계, 장기적인 지원 등으로 인해 최첨단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에게 선호되고 있다"며 "향후 민간 기업과 재단의 기초연구 확대 장려를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홀로 연구 문화는 이제 그만, 협업으로 성과 창출한다
민간연의 가장 큰 특징은 플렉서블한 체계다. 혼자만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 아이디어가 인정되면 협업을 통해 연구 성과를 구체화시키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LG화학기술연구원이다. 자기 것만 최고라는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을 깨고, 과감한 오픈이노베이션을 시도하고 있는 LG화학기술연구원은 현재 자동차용 리튬이온 폴리머 전지, 3D TV 편광필름 원천기술 개발 등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기술 성과들을 연이어 터뜨리며, 국내 산업기술계를 이끌고 있다.
LG화학기술연구원이 과감한 오픈이노베이션을 시도한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각자가 쌓고 있는 기술 노하우를 활용해 집단지성을 발휘해야 더 큰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내부 분석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유진녕 원장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도사라고 불리는 그의 지원은 연구원 내 협업문화를 이끄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현재 LG화학기술연구원 내에서는 연구원들간 서로 아이디어를 토론할 수 있는 온라인 협업 프로그램을 비롯해 현상금을 걸고 기술적 문제해결을 유도하는 프로그램, 전문가가 한자리에 모여 원포인트 자문을 펼치는 전문가 협업 프로그램 등 총 8개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협업 체계의 효과를 가장 먼저 깨달았던 이들은 바로 연구원들이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구문제 해결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 방향성과 효용성을 깨달았고, 업무 효율이나 능력 향상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SK 역시 오픈이노베이션을 활발하게 수행 중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시스템이 정착돼 있는 상황이다.
SK 관계자는 "5년 전부터 촉매 조직을 시작으로 전체 조직을 매트릭스 조직으로 흔들어놨다"며 "관련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프로젝트 할 때 마다 파견식으로 관리한다.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성과를 창출하며, 연구 과제에 대한 솔루션을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가 매월 1회씩 진행하는 '아이스크림& 런타임'이다. 날짜를 미리 공지해 참석 희망자를 중심으로 원장이 직접 회사의 현황과 변화상황, 외부 인사 방문 결과까지 상세히 설명한다. 또 그 자리에서 질의응답을 통해 회사와 연구원간의 신뢰를 높인다.
최근 대대적인 연구조직 개편에 나섰던 삼성.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 확보가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함도 물론이다.
개편의 핵심은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진의 재배치다. 삼성은 분야별 연구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각개 사업단과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로 대거 이동해 실무진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연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삼성은 이번 인력 재배치를 통해 전자소재 분야 연구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연구는 '집중'으로 풀이된다. 소재 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삼성은, 내부 공동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며 미래 신사업 확보 차원의 소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연구원들 사기 진작 중시…성과지향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이유
연구원들 위주로 움직이는 연구원 내 문화도 사기 진작의 중요 이슈다. LG의 경우 연구자와 경영자의 진로가 연구 책임자 시기에 갈려진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지에 대해 직접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 R&D 전문 역량 교육 등 끊임없는 학습으로 뒤쳐지지 않게 대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연구원들의 롤모델을 스스로 만드는 것 역시 좋은 문화의 하나다. 이 곳의 경우 연구위원 3년 마다 평가를 해 정년을 보장케 하는데, 이는 연구에 오랫동안 참여한 과학자에게 부여하는 직책이다. 이들 숫자가 늘면서 연구원들의 롤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다. 혜택은 임원들과 동등하며 정년도 보장한다. 또 연구비, 주차장 등 세심하게 배려한다. 자신이 꿈꾸던 미래가 바로 앞에 있으니, 그런 모든 문화들이 젊은 연구원들에게 자극이 됨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삼성도 연구원들 사기 진작을 위해 기민하고 움직이고 있다. 삼성은 연구원들의 연구 열정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펠로우제도와 자랑스런 삼성인상은 기업의 담장을 넘어서, 산업계에서도 인정해주는 시상 제도로 널리 알려졌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제도는 삼성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상이다. 공적상, 디자인상, 기술상, 특별상 4개 부문으로 나눠 지급되는데, 수상자들에게는 1직급 특별 승진과 1억원의 상금이 각각 주어진다. 재직 중 2회 이상 수상자로 선발될 경우, '삼성 명예의 전당'에 추대될 수 있는 후보 자격도 주어진다.
또 '삼성 펠로우 제도' 기회를 부여해 독자 연구실과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디지털 시대 두뇌 경쟁에 대비한 고급 인재풀을 키워오고 있다.
대학의 석좌교수와 같은 임원급 대우를 하고 연구과제 선정, 연구비 사용 등에서도 자율권을 부여한다. 펠로우에게는 1년간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구비 10억 원을 별도로 지급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스톡옵션, 삼성 주식 등의 지원으로 최고의 대우를 한다. 글로벌 초일류 인재를 위해 그에 맞는 최고 대우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삼성이 제도 지원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바로 사명의식이다. 제도 지원과 공통된 의식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성과 지향 적인 문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삼성 관계자는 "민간연구소는 사업을 위한 연구로 경쟁력에서 밀리면 바로 도태된다. 사업화 마인드와 프로젝트 베이스를 통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는 연구를 하고 있다"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민간연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상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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