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사이언스코리아 2부-⑤대안은]시대 변화에 따른 역할 필요
"산·학·연의 명확한 역할 정립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출연연이 진작 방향을 잡았더라면 민간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했을텐데. 지금은 출연연이 민간연을 절대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출연연이 중소기업 지원을 한 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원들도 마인드를 바꿔야 합니다. 미래는 히든챔피언이 이끌 것입니다. 출연연이 퍼스트 무버로 중요한 역할을 할 때입니다."(연구원 창업 기업인)
"지금은 별 실효성 없는 R&D가 널부러진게 현실입니다.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재해와 안전에 관해 과학기술계의 역할도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사회문제와 재난 발생 시 출연연도 좀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출연연의 A 박사)
정부출연기관이 방향과 비전을 명확히 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때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각계의 의견이다.
출연연의 연구개발 성과는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간연이 급성장하면서 출연연의 역할론과 무용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국가의 미래와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출연연에 거는 기대는 여전하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출연연의 비전과 방향성을 제대로 확립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
출연연과 민간연은 설립 목적부터 전혀 다르기에 운영철학이나 경영방침도 같을 수가 없다. 양 기관의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연구에 대한 성격과 방향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고 서로 협업할 분야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민간연과 출연연의 정책 담당자들은 서로의 필요성에 따라 협업할 분야를 도출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기관이나 기업의 이익추구에서 벗어나 국가와 지역발전, 경제와 사회문제 해결, 특히 세월호 사고와 같은 재난에도 과학기술이 기여할 수 있도록 출연연 혁신에 적극 기여하고 바람직한 역할과 기능을 찾아가고자 한다.
출연연의 한 정책관계자는 "출연연의 미래 임무와 역할, 산학연의 협력이 필요한 미래기술을 발굴해 혁신네트워크를 활성화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서로 소통하며 기관간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 현재 출연연에 대한 인식과 연구자들의 마인드에 변화를 주는 물꼬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출연연의 역할 방향과 비전 명확히 하고 협업해야
출연연의 설립 목적과 운영 철학은 국가가 지원하되 거버넌스에서는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다. 보장된 자율위에서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연구를 선행해 개발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실제 KIST 설립초기에는 국가의 수장이었던 대통령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연구원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정부는 연구원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과 민간연의 연구 역량이 커지면서 출연연의 연구성과는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일부는 민간연의 성과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출연연의 역할정립이 진작부터 요구돼 왔다. ETRI 출신의 한 연구원 창업자는 "1990년대까지만해도 출연연이 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간연이 돈되는 연구 한가지에 10명을 투입한다면 출연연은 10명이 5가지 연구를 하는 상황이다. 속도에서 출연연이 민간연을 따라 갈 수가 없다"면서 "안되는 환경에서 출연연에게 속도만 내라고 하는 것은 문제만 커지게 한다. 출연연이 제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간연은 주인이 분명하지만 출연연은 주인이 없다. 1990년대 변화가 감지될 때부터 출연연이 방향, 비전을 정해서 가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면서 "그렇다고 출연연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이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인데 정작 중소기업은 연구개발 능력이 안된다. 중소기업 지원을 출연연이 주요 역할로 받아들여야 한다. 연구원들도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진녕 원장은 출연연과 대학, 민간연이 각각의 역할을 분명히 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현재 한국의 산학연은 합창이 아닌 제창을 하고 있다. 대학, 출연연, 민간연 모두가 동일한 응용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학은 기초연구를, 기업은 사업화를 위한 응용연구, 출연연은 목적기초연구와 중소기업 기술지원으로 역할을 정립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또 유 원장은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 산업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씨름에서 들배지기와 같은 경쟁우위의 기술 역량을 확보하는게 필요하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처럼 지식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커넥터 역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출연연의 진정한 위기 인식과 리더십 필요
22일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2014년 국가경쟁력 평가결과' 우리나라는 총 60개국 가운데 26위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4단계나 하락했다. 경제성과나 인프라는 예년 수준을 유지했지만 정부와 기업의 효율성 등 4대 분야별 평가에서 순위가 떨어졌다.
이전에 비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하락했지만 평가 대상 60개국에 포함되기까지 과학기술을 기반한 경제성장 등이 밑거름이 됐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정부가 바뀌고 정책이 달라지면서 연구현장 환경도 변화를 맞았다. 연구현장의 연구원들도 사명감에 대한 인식과 마인드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서로의 접점을 찾고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연연의 한 박사는 관료들의 입맛에 따라 과학기술 정책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했다. 그는 "제대로 된 전문가 그룹을 구축해서 국가 R&D 로드맵을 세우고, 그에 맞춰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목표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으니 줏대없이 흔들릴 수 밖에 없지 않은가"라면서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비전문가들이 출연연을 좌지우지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출연연의 연구원은 "과학자들도 뚝심이 있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이렇게 가야 한다라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면서 "서남표 KAIST 총장이 다른 건 모르겠지만 뚝심은 있었다. 정부를 대상으로 협상해서 과제를 따냈다. 출연연은 어떠한가. 기관장들, 스스로의 위상을 깎아 먹고 있다. 리더의 리더십, 과학자의 뚝심이 맞아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K연구원의 관계자는 "출연연의 진정한 위기는 연구정책, 연구기획-계획조정에 관한 거버넌스를 상실한 채 공무원들의 손과 발이 되는데 익숙해지면서 왜 연구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말 자기돈을 들여서라도 그 연구를 할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인지, 혹여 그런 주제라도 그렇게 루즈한 일정과 목표로 달려갈 것인지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문과 위주 관료 중심 과기 정책으로는 해결 못해"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공계 인재를 중용하는 흐름과 반대로 정부의 이공계 홀대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이상민 의원에 따르면, 50개 정부부처 3급 이상 고위공무원 1244명 중 이공계 출신은 10.4%인 129명에 불과하다. 장관급에서는 미래부·환경부·원자력위원장 등 3명, 차관급에서는 9명 뿐이다.
부처별 편중도 심각하다. 과학기술계를 다루는 미래부는 40.5%가 이공계 출신이지만, 정작 국가R&D의 예산을 편성하는 기재부나 주요 국가 의제와 국정패러다임을 관할하는 국무조정실을 비롯해 17개 부처에는 이공계 출신 고위공직자가 전무했다.
오명 동부그룹 제조유통 회장은 지난달 14일 명사초청강연을 위해 ETRI를 방문했을 당시, 과기부총리 경험을 언급하며 "장차관도 이공계 출신이 나와야지 우리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문과 출신에게 이래이래해서 예산을 많이 달라고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이공계 출신들이 기술분야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정부와 국회 등에도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문과출신에 의해 과기 정책이 좌우되다보니 대통령이 '과학기술에 기초한 창조경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제시했지만, 이를 뒷받침하고 실행까지 구체화하는 데는 혼란이 일었다. 또 정책결정권자들이 국가R&D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연구성과를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점도 갈등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한 출연연 연구원은 "문과 출신 관료들은 연구를 돈 집어 넣으면 최고 성과가 나오는 자판기로 안다"면서 "성과를 내라는 압박에 연구원들이 최소한의 바람막이로 최고 성과를 과장해 발표하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
다른 연구원은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강조하면서 미래부를 신설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없다"며 "공무원들은 자기가 자리에 있을 때, 성과를 내라고 한다. 이들에게 연구원은 공장에서 이미 디자인되고 설계된 것을 생산만 하는 단순 노무자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이 안하는 것을 하라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질타했다.
이밖에도 연구현장에서는 "연구과제가 전문가가 아닌 관료들의 입맛에 맞아야 연구비를 받을 수 있다. 이에 맞추려하다보니 행정을 위한 행정업무와 문서작업이 주업이 됐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이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 비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댓글 정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