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
'과학자의 글쓰기' 저자···'아주 사적인 과학' 연재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은 2019년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했다. 그는 기술경영학 박사로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사진=대덕넷 DB]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은 2019년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했다. 그는 기술경영학 박사로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사진=대덕넷 DB]
매일 매일 벌어지는 일상의 과학  

『시크릿 하우스』는 일상 속에서 매일 매일 벌어지는 흥미롭고 끔찍한 과학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자에게 이 책을 소개한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의 추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저자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유명 작가이다. 그는 칼럼니스트이자 역사학자, 미래학자, 비즈니스 자문가 등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그의 첫 책 『시크릿 하우스』는 1986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그는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E=mc2』 외에도 『시크릿 패밀리』,『마담 사이언티스트』 등을 내기도 했다.

『시크릿 하우스』는 하루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상의 과학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각 장은 아침, 한낮, 늦은 오후, 초저녁, 저녁, 취침 등으로 구분된다. 독자들은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본인의 하루를 생각하며 책을 읽으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오전 7시, 기상 시간이다. 자명종 소리가 더 이상의 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주인공 남자의 발이 침대 밖으로 나와 바닥에 닿는다. 그 무게로 마룻바닥이 살짝 눌려 흔들리자, 연못의 수면파처럼 사방으로 진동이 뻗어 나가 벽에 다다른다.

갑자기 가해진 무게로 집 전체가 약간 눌린다. 마루 판자와 맞닿은 벽 맨 아래층 벽돌도 충격으로 인해 4만분의 1센티미터 정도 움츠러들게 된다. 워낙 작은 수치라서 건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뿐이다.

이제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만약 주인공이 여성이라면 립스틱을 바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립스틱에는 유난히 반짝거리는 물질이 있다. 립스틱에서는 이게 포인트다. 이 반짝거리는 것은 무엇일까?
 
립스틱에서 반짝거리는 것은 바로 생선 비늘이다. 비늘은 생선 포장 공장에 가면 허다하게 남아돈다. 이 비늘을 모아 암모니아에 적신 뒤 다른 물질과 섞어 넣으면 립스틱 완성이다. 

오전에 출출해져 감자 칩을 간식으로 먹는다고 가정해 보자. 감자 칩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자 중 하나이다. 감자 칩의 생명은 바삭함이다. 축축한 감자 칩은 상상할 수 없다. 바삭한 음식은 그렇지 않은 음식보다 큰 소음을 내는 속성이 있다. 바사삭~바사삭~ 밀폐 봉지는 바삭한 음식을 담기 위한 최고의 저장 수단이다.

식품 유동학자(음식의 식감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바삭한 음식이 가져야 할 몇 가지 필수 조건을 얘기한다. 그중 제일 조건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감자 칩을 먹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다? 다른 음식보다 훨씬 높은 음역의 소리를 내야 한다. 고주파의 파열음을 발생시켜야 감자 칩은 더욱 감자 칩답게 맛있어진다.

『시크릿 하우스』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재채기를 공부해 보자. 미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단백질을 지니도록 진화했는데, 재채기를 일으켜 밖으로 퍼져 나가 새로운 숙주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진화됐다.

그럼 재채기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재채기는 무려 시속 65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간다고 한다. 이는 보퍼트 풍력(1805년 영국 해군장교 보퍼트가 고안한 바람 관측 계급으로서 0~17단계가 있으며 숫자가 클수록 센 바람이다.) 계급에서 큰바람이라고 분류하는 8단계에 속한다. 이 단계의 바람은 나무의 잔가지를 부러뜨릴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하루 중 화장실에 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세인은 화장실을 '네세사리움'이라고 불렀고, 요즘은 '손 씻는 곳'이나 '세면실'이라고 부른다. 이번에는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해보자.

화장실에서 사람들은 보통 '일'을 본 후 변기 레버를 돌리거나 누른다. 그러면 변기의 물이 내려갈 때 내용물과 물은 하수구로 빨려 내려간다. 그런데 물이 뱅글뱅글 돌다가 내려가기 때문에 윗부분에는 잠시 거품과 포말이 막처럼 생겨난다. 두께는 수십 분의 1센터미터밖에 되지 않는 막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변기 물이 내려갈 때 생긴 포말은 물이 쓸려나가는 동안 따로 떨어져 공기 중에 걸렸다가 위로 솟구치게 된다. 마치 미세한 안개가 분사되는 듯하지만, 너무 옅어서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지는 않을 뿐이다. 간혹 어렴풋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50억에서 100억 개 정도의 미세한 물방울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물을 내리는 동안 변기 뚜껑을 닫아 두면 조금은 막을 수 있지만 이것도 완벽하지 않다. 필자는 『시크릿 하우스』에서 이 부분을 읽은 후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 때, 항상 변기 뚜껑을 덮는다. 50억에서 100억 개의 물방울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이 물방울이 위생적이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목욕과 욕조와 관련된 이야기도 흥미롭다. 대부분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목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봤더니, 남자는 대부분 거의 목욕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들은 불가피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 욕조에 들어간다. 대부분 남자들은 목욕을 싫어한다. 강요하지 않아도 목욕을 하는 이들은 십대 소녀,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주 씻는 성인 여성들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궁정의 여인들이 틈날 때마다 옷을 벗어 던지고 근처 개울로 뛰어들곤 하는데, 이것은 영화제작배급협회 검열실의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영화에 야한 볼거리를 끼워 넣고자 하는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현대식 욕조가 고안된 것도 19세기 초 정신병원이라고 한다. 일종의 처벌 도구였다. 19세기 말에 간편한 온수 공급 체계가 보급되고 나서야, 욕조가 가정으로 들어오게 됐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187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쇠로 된 '목욕 헬멧'을 쓸 것을 권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전 이야기지만 흥미롭다. 목욕을 위해 헬멧을 썼다니!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후기에서 『시크릿 하우스』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평범한 어느 하루, 우리가 흥겹게 지내거나 끙끙대며 하루를 나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묘사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얘기한다. 『시크릿 하우스』는 저자의 의도대로 잘 기획된 책이어서 과학책을 쓰려는 사람들이 벤치마킹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