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AI·컴퓨터과학 강호' 대다수가 지역에 뿌리
KAIST 내부 "AI 신임 교원 뽑기 어렵고, 분위기 악영향" 우려
캐나다 워털루·오타와·에드먼튼 지역 무관 AI 기술 경쟁력↑

KAIST AI 대학원 개원식이 지난해 8월 26일 학술문화관(E9)에서 개최됐다. 당시 정송 초대 원장이 AI 대학원 비전을 소개한 바 있다. [사진=김인한 기자]
KAIST AI 대학원 개원식이 지난해 8월 26일 학술문화관(E9)에서 개최됐다. 당시 정송 초대 원장이 AI 대학원 비전을 소개했다. 당시 정 원장은 본지와의 취임 인터뷰에서 AI를 지역에도 스며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KAIST 인공지능(AI) 대학원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지역을 떠나 서울로 이전한다는 결정과 관련, 학내외에서 무리수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KAIST 대전 본원에선 급증하는 AI 교육 수요 감당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AI 대학원 서울 이전으로 대전 본원에 AI 신임 교원 확보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SNS(소셜네트워크)상에선 글로벌 기업이 미국과 캐나다 지역 대학의 AI와 컴퓨터과학에 투자하기 위해 찾아가는 사례를 들며 '묻지마 서울행'을 비판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KAIST 전산학부는 신성철 총장에게 AI 대학원 서울 이전이 초래할 악영향을 1000자 분량으로 정리해 전달했다. 이 글에는 신 총장이 AI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발전기금 500억원을 유치한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면서도 AI 대학원 이전으로 초래할 학내 문제를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개별 분리된 소규모 학문 조직으로 세계 최우수 교육과 연구를 하기 어렵다"며 "현재 KAIST 여러 학과에서 AI 교육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인재 양성을 위해서라도 AI 대학원 교수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로 이전한 AI 대학원과 대전 본원은 너무 크게 비교되며 앞으로 신임 교원 확보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더 큰 문제는 서울 선호도가 높은 학생들이 적지 않아 우수 학생들이 서울에 있는 AI 대학원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학내에 서울 진출이 우월하다는 인식을 줘 대전 본원의 교육과 연구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캐나다·미국 인구 10~30만에도 AI 경쟁력 

SNS상에선 KAIST가 AI 대학원 서울 이전 논리를 반박하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KAIST는 AI 대학원 이전 논리로 글로벌 경쟁을 위한 '인재' 'AI 컴퓨팅 인프라' '데이터' 확보가 필요한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러나 SNS상에선 글로벌 대기업이 AI와 컴퓨터과학 연구를 선도하는 캐나다·미국 지역 대학에 투자하는 사례를 들며 "실력이 있으면 지역이 어디든 찾아온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KAIST 교수 한 명이 SNS상에 'AI 대학원 서울 이전 논쟁'과 관련 논평을 구하자, 관련 댓글이 15건 이상 달렸다. AI 대학원 서울 이전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관련 댓글에는 "전 세계 컴퓨터과학 명문대 대다수가 지역에 있다"며 "AI 분야에서 앞서가는 대학이 주로 캐나다 대학들인데 글로벌 대기업이 지역을 직접 찾아 투자하고 있다"는 내용이 달렸다. 

전 세계 컴퓨터과학(CS) 랭킹에서도 지역 때문에 연구 역량이 저해되는 일은 없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과 캐나다 워털루대학은 최상위권에 랭크하고 있다. 이 지역들에선 AI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면서, 대학 근처에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카네기멜론대학이 위치한 미국 피츠버그 지역은 인구 30만이고, 캐나다 워털루는 10만명 내외다. 

캐나다 AI 클러스터 중 하나인 에드먼튼도 인구가 97만명이다. 이 지역에는 강화학습 창시자 중 한 명인 리처드 서튼(Richard S. Sutton) 앨버타 대학 교수가 있다. 강화학습은 '인간 vs AI 바둑대국'으로 알려진 알파고가 사용했던 기술이다. AI 고수가 지역에 있으니 에드먼튼 지역에 구글 딥마인드 연구소가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 

캐나다 AI 클러스터인 토론토와 몬트리올에도 AI 고수가 있으니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이곳을 찾아와 투자를 단행했다.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토론토 대학 교수와 요슈아 벤지오(Yoshua Bengio) 몬트리올 대학 교수가 AI 석학이다. 구글은 2016년 '알고리즘 학습을 위한 몬트리올 연구소'(MILA)에 총 450만 달러(50억원)를 투자했다. 구글은 캐나다 고등연구원(CIFAR)과 토론토 컴퓨터 사이언스 대학 인근에 위치한 토론토 벡터 연구소(Vector Institute)에도 500만 달러(55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2016년 말 캐나다 오타와에 알렉사(Alexa) 개발팀 사무실을 확장했다. 알렉사 플랫폼이 모든 기기에 연결되는 대화형 음성 서비스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2016년 기준) 오타와 인구는 93만명. 적어도 미국과 캐나다에선 지역 때문에 AI 역량을 강화할 수 없다는 논리는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다.
 

KAIST AI 대학원 이전을 둘러싸고 SNS(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목소리들. [사진=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KAIST AI 대학원 이전을 둘러싸고 SNS(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언급되고 있는 목소리들. [사진=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 "이젠 '묻지마 서울행' 벗어날 때도···"

SNS상에선 KAIST가 내세운 논리가 인재 확보 측면에선 유효할지 몰라도, 서울을 가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없어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확산됐다. 특히 대기업과 협업도 지역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 연구자는 "KAIST 입장에서 서울에 대학원을 이전하면 교원이나 학생 모집하는데 유리하긴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POSTECH(포항공과대) UNIST(울산과학기술원)도 서울에 AI 대학원을 설립해야 하는가"라며 "서울에 있는 기업들과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데, 반대로 남아 있는 KAIST 타 학과와 협력이 어려워지는 면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출연연 연구자는 "KAIST가 지금껏 대전에 있다고 경쟁력에서 밀린 적이 없는데 굳이 이전을 추진하는 배경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파트타임 대학원생이 늘어나는 장점은 생기겠지만, 이 때문에 풀타임 학생 중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주거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관계자는 "KAIST AI 대학원 이전 논쟁은 지극히 당연한, 한국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이젠 서울이라는 화려함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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