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동 교수 "새로운 개념 도전할 시기"
홍병희 대표 "지식습득형 인재만 육성"

이정동 서울대학교 대학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가 '2021 대한민국 과학기술 연차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펼쳤다. [사진=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이정동 서울대학교 대학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가 '2021 대한민국 과학기술 연차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펼쳤다. [사진=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지난 10일 개최한 2021 대한민국 과학기술 연차대회에서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선진국을 추격하는 일을 넘어 선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래 인재는 지식 습득형이 아닌 능동적인 창의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현장의 이야기도 나왔다.

이정동 서울대 대학원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전공 교수는 이날 기조강연하며 "대한민국은 'New to Korea' 사고방식을 벗어나 'New to the world'에 도전해도 될 만큼 성장했다"고 이같이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New to Korea는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기술을 한국에 들여와 변형하거나 그 수준을 따르는 방식이다. 반면 New to World는 어떤 나라도 해보지 않은 기술에 도전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이 교수는 "1970년대 해외로부터 선진 기술을 도입하는 건 아주 어려웠다"면서 "우리나라는 2000년대 선진 기술을 이해하고 개선하는 단계로 올랐고, 지금은 일정 부분에선 선진 기술보다 성능과 비용적으로 뛰어난 자체 기술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현대자동차 이대리 노트 사례를 들었다. 이대리 노트는 1974년 당시 대리 신분의 엔지니어였던 이충구 전 현대자동차 사장에 의해 탄생한 기록물이다. 당시 그는 우리나라 자동차 고유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 회사 '이탈 디자인(Ital Design)'의 설계와 디자인을 노트에 적어 국내에 들여왔다. 이대리 노트는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자리 잡는 밑거름이 됐다.
 

이정동 교수는 '이대리 노트'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가 선진 기술을 해외로 부터 들여오는 과정은 험난했다"고 강조했다. [사진=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제공]
이정동 교수는 '이대리 노트'를 예로 들며 "우리나라가 선진 기술을 해외로 부터 들여오는 과정은 험난했다"고 강조했다. [사진=대한민국과학기술연차대회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 교수는 선진국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전략을 넘어 선진국 로드맵과 관계 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과 우리나라 모두 자율자동차의 표준이 어떻게 될지, 퀀텀 컴퓨팅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면서 "글로벌 선례가 없을 때 우리가 먼저 발을 둬야한다는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과 같은 수준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넘어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개념에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한민국은 세계 트랜드를 이끌어가기 위해 '내가 펼쳐가고 싶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일으켜가는 기업가가 필요하고,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사회가 혁신국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외에도 과학기술인과 기업인을 위해 ▲혁신 친화적인 정부 재정 투입 ▲획기적인 규제 시스템 확립·금융 시스템 개편 ▲스케일업 단계를 지원할 벤처 지원 시스템 ▲시행착오를 인정할 수 있는 리더십을 조언했다.

김희진 유라이크코리아 대표도 이날 이정동 교수 발표 이후 기조강연에 나섰다. 유라이크코리아는 바이오캡슐 하나로 가축 질병을 알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 기업이다. 김 대표는 글로벌 축산업을 선도한 배경으로 한국의 정보기술(IT)과 축산업이 결합된 점을 들었다.

김 대표는 "전세계 축우 약 15억 두수 가운데 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0.37%"라며 "그럼에도 미국, 일본, 호주 등 축산 선진국을 비롯해 전세계 20여 개국에 진출하며 글로벌 축산업을 선도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전세계 모든 가축의 건강을 돌보는 기업으로 발돋움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과학기술 인재, 수동에서 능동으로 

'국격 업그레이드 주역 과학기술 인재' 심포지엄V에서도 지식 습득형이 아닌 능동적 인재(창의적 인재) 필요성이 제기됐다.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서울대 교수)는 2019년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 상황에서 국내 소재 산업과 바이오 산업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연구현장과 혁신벤처기업에는 창의적 인재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줄세우기, 지식탑쌓기 경쟁의 입시 지옥 과정을 거치며 비판없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지식습득형 인재들이 양성된다"면서 "원천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벤처 현장에 뛰어들면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지적했다.

홍 대표는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3차원 인쇄, 나노기술 등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최근 나노소재 기술이 바이오 메디컬 분야에 응용되면서 나노신약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나노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산학연, 연구중심 병원간 인프라와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박기범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국내 산업 성장에 따라 과학기술 인재정책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60년대에는 경공업 중심의 기능인력, 70년대는 중화학공업 성장과 기술인력 양성, 80년에 첨단 산업이 등장하며 연구개발 인력이 양성되기 시작했고 국내 대학에 R&D가 태동됐다. 2000년대에 들어 독자적 과학기술인재 정책이 등장하고 2010년대에 이르러 고급 인재 양성, 창업과 기술사업화가 본격화됐다.

그는 "과거에는 R&D 투자와 과학기술인재양성이 필수 조건으로 상호 보완적이었지만 민간에 취약한 분야(공급 부족) 중심으로 인재가 양성되면서 지금은 인력 배출과 수요 불일치로 신규 박사 인력의 노동시장이 열악해졌다"고 지적했다.

박 박사는 국가주도의 인재정책 영역은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직접개입보다 정책 판단의 기초가 되는 인프라 구축, 간접 지원이 요구된다"면서 "수급전망은 공급정책 수단이 아닌 시장에서 자율적인 조정기제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길애경 대덕넷 취재팀장은 이날 현장 취재 경험담을 공유하며 과학기술계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길 팀장은 특히 이공계 교육이 정답 찾기에서 벗어나 이전에 없던 문제를 만들어내는 교육 혁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를 하고 계신 한 취재원은 미국 유학 시절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정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했지만 미국에선 없는 문제를 만들고 그걸 어떻게 풀어갈지 해결 방향을 찾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당 교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닌 토론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교육도 정답 찾기를 넘어 문제를 만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길 팀장은 또 한국이 UN으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인정 받은 만큼, 과학기술계도 연구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처럼 '이 연구는 왜 해야하는지' '연구가 사회에 어떻게 쓰이고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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