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사진=대덕넷DB]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사진=대덕넷DB]
독선과 아집으로 변질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짓눌렸던 미국의 과학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8년 전 아폴로 17호가 달에서 가져온 월석(月石)을 백악관 집무실에 전면 배치했다. '과학과 진실'을 국정의 중심에 세우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에게 과학은 세계 최악의 감염 대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고, 흔들리고 있는 '글로벌 리더'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가장 절박한 선택이다. 국정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린 우리 과학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간절하다.

◆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과학강국의 현실

미국 과학계의 입장에서 트럼프의 퇴진과 바이든의 등장은 '긴 국가적 악몽의 끝'이다. 실제로 지난 4년 동안 미국 과학은 끔찍한 악몽에 빠져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1억 명이 감염되고, 214만 명이 사망한 코로나19를 중국이 만들어낸 '거짓'(hoax)이라고 우기던 트럼프의 억지가 만들어낸 현실은 참혹하다.

전 세계 감염자의 25.8%와 사망자의 20.1%가 미국에서 발생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공중보건 체계를 갖추고 있는 미국의 과학에게는 치욕적인 일이다. 심지어 진단키트의 개발도 우리보다 2달 이상 늦었고, 마스크・보호복・장갑・면봉 등의 기본적인 방역물품도 생산하지 못했다.
  
국익을 팔아먹는 '간첩'으로 내몰린 과학자들도 있었다. 하버드대의 화학・생물화학 학과장이었던 찰스 리버 교수가 그랬다. 세계적인 나노 과학자가 미국의 기술을 중국에 팔아넘긴 혐의로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고 말았다.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국계와 이슬람계 과학자들과 학생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환경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왔던 환경보호청(EPA)은 기후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돌팔이의 손에 넘어갔다. 과학자들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EPA의 정책 결정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돼버렸다. 기상청(NWS)이 허리케인 예보가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던 국립보건원(NIH)・질병예방관리센터(CDC)・식품의약국(FDA)의 위상도 크게 추락해버렸다.
  
미국 과학계가 바이든의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81명이 공개적으로 바이든을 지지했고, 3600명의 과학자들이 트럼프의 과학정책을 비판하는 온라인 성명을 발표했다. 과학 단체와 학술지까지 나서서 바이든을 지지했다. 과학중심의 국정 운영을 앞세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어깨가 몹시 무겁다. 트럼프가 확산시켜놓은 반과학적・반지성적 우월주의・고립주의・혐오주의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 우울증에 걸려버린 우리 과학기술

국가경제와 국민안전을 떠맡아 왔던 우리의 과학은 독선과 괴담으로 볼품없이 추락해버렸다. 과학기술 행정은 연구 대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선무당들에게 점령당해버렸다. 코로나 방역은 총리, 소부장은 경제부총리, 에너지는 환경부로 넘어가버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언론보도용 사진에만 등장한다. 전임 과기부 장관의 핵심 업무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내각의 인간적 소통 활성화였다는 황당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현실은 참혹하다. 지난 60년 동안 그야말로 피와 땀으로 이룩해놓은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은 국민안전과 환경보호에 떠밀려 폐기되고 있다. 우리 땅의 원전은 국민안전을 위협하는 흉물이라면서 UAE에 우리가 건설한 원전은 '바라카'(신의 축복)라고 외치는 자가당착도 서슴치 않는다. 강추위로 전력수요가 치솟을 때 태양광・풍력이 생산한 전력은 고작 1.0%뿐이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에 덮인 태양광은 보기에는 좋았겠지만 전력생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K-방역의 공로도 빼앗겨 버렸다. 세계 최초로 RT-PCR 진단키트를 개발한 바이오벤처의 공로는 엉뚱하게 '민주주의'와 '투명성'에게 넘어가 버렸다. 방역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한 의료계에게 돌아온 것은 난데없는 '공공의료' 개혁이었다. 일상생활과 종교활동까지 포기하면서 방역에 협조한 국민들은 안전성도 확인되지 않은 백신을 먼저 맞아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무지랭이로 전락해버렸다. 마지못해 국민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던 정은경 청장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오히려 백신 확보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고, 이제는 학술논문의 내용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야단법석이다.
  
광우병 수준을 넘어서는 괴담도 넘쳐난다. 월성 주민 한 사람의 몸에서 삼중수소가 2그램이나 검출됐다는 주장이 언론에 당당하게 보도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원전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삼중수소의 총량이 2그램이다.) '우주의 75%가 수소'라는 구호가 국민들에게 수소 에너지는 '공짜'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신재생은 모두 '친환경'이라는 착각이 에너지 정책을 비현실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애써 만들어놓은 4대강 보에도 팩트보다 억지와 괴담이 넘쳐난다.
  
과학자들의 현실도 참혹하기는 마찬가지다. 과기부가 과학자들의 감시 기구로 전락해버렸다. 세계 최고의 연구소와 연구비 짬짬이를 했다던 원로 과학자는 결국 검찰로부터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사무실을 너무 화려하게 꾸몄다고 옷을 벗은 과학자도 있었고, 연구비 관리를 잘못했다고 재판에 넘겨진 과학자도 적지 않다. 사과는 물론 유감 표명도 없었다. 오히려 당시의 담당자들은 화려하게 영전을 해버렸다. 과학기술계 인사가 '모욕적'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 과학자들도 진정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바이든의 과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미국의 과학자들의 만들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패거리 작당으로 급조되는 밀실 '캠프'는 과학자들이 함부로 기웃거릴 곳이 아니다. 그렇다고 겉으로만 요란한 '대연합'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진정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걱정하는 건강하고 건전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과학자의 고고한 '품격'은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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