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거버넌스보다 30, 40대 기관장 할당제 어떤가
품앗이 평가위원 대신 실력있는 젊은 과학자로 구성
모래알 같은 과학계 아닌 같이 목소리 내며 변화 시작

이준석 돌풍 거세다. 당 대표 경선을 넘어 대권주자 선호도에서도 수십년 경력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을 제끼고 단숨에 4위로 올라섰다. 후원금 1억5000만원 모금도 사흘만에 끝냈다. 세대, 지역, 이념을 넘은 돌풍이 초강풍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왜일까. 이준석 돌풍을 두고 정책 전문가는 기득권의 종말, 586세대(386세대였던) 정치인들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본 2030세대의 반격으로 해석했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만연된 기득권의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변화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오늘(6일)은 66회 현충일이다. 36년의 일본 침략에서 해방되고 1948년 정부수립이 이뤄진지 채 2년도 안돼 일어난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한국전쟁으로 40만 이상의 국군이 사망했고 일반 시민의 사망까지 포함하면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애국지사 묘역이 있다. 일제침략시기 활약한 열사, 지사들의 묘역이다. 묘비명 뒤에 적힌 그들의 사망 나이는 불과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꿈을 향해 젊음의 열정을 발산할 아름다운 나이지만 불꽃같은 삶, 찰나의 삶을 국가에 헌신했다. 그들의 숭고한 헌신이 오늘날 한국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젊은피의 헌신은 헛되지 않았다. 한국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산업부흥, 경제발전 등 압축적으로 성장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지금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선두를 차지하며 세계 경제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 결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유례없는 국가로 세계 각국의 롤모델이 됐다. 

정치와 민주화도 발전을 거듭해 왔다. 독재정치, 군부정치를 지나 과도기를 거치며 여야간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등 성숙된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런 바탕과 저력들이 IMF 위기,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의 역할이다. 시대, 상황적 변화에 따른 기준으로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대, 그들의 역할이 오늘날 한국이 있기까지 기여한 부분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정치적, 이념적인 기준으로 재단해버리면 또 다른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 

◆ 젊은 피 2030세대의 목소리

이번 정부 출범시 많은 국민이 같이 촛불을 들었다. 구시대적 적폐정치에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며 이번 정권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4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젊은피들이 다시 깃발을 들었다. 그동안 어른으로 인정해 왔던 기득권 정치에 대한 실망,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는 기성세대의 정치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준석 열풍은 기성세대에 각성을 촉구하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 중 하나의 사례일 수 있다. MZ(80~90년대생)세대들은 지금의 기성세대와 다른 삶을 살았다. 안정된 생활속에서 부모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쏟는 것은 물론 반응도 분명하다. 글로벌 무대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기성세대들이 만든 제도, 정치에 억눌리고 갇혔다가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득권의 욕심, 몰지각한 이기심을 향한 반격인 것이다.

이준석은 올해 만 36세(1985년생)다. KAIST 수리과학과에 잠시 몸담았다가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창업 후 교육나눔 활동을 펼쳐 왔다. 그의 정치 입문은 여러 말들이 있지만 20대에 시작됐다. 1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치계에서 학습하며 경험을 쌓은 셈이다. 

그는 기성 정치인과 다른 정치 표상을 추구한다. 캠프사무실, 지원차량, 문자홍보 사절 등 기존 정치의 대표적인 모습부터 걷어냈다. 그리고 경쟁자 끌어내리기보다 공약에 집중한다. 기성정치인이 파당, 당리당략의 정치에 치우쳐 올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에 비해 그는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실수도 있겠지만 그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때문이지 젊은층은 물론 전 세대를 아우르며 단숨에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혹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한국 정치계는 뉴페이스에 대한 기대가 여러번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선거철마다 안철수, 반기문 등 각 분야 전문가,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 여러 이유로 정당별로 영입된다. 유권자들의 기대감도 크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인물은 정치 신인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치계에 휘둘리며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반면 이준석은 젊지만 정치 신인은 아니다. 10여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저력있는 젊은 정치인이다. 

◆ 기득권 세력, 과학계도 크게 다르지 않아

이준석 돌풍 소식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과학계의 최근 상황도 반추해보게 됐다. 연구현장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PBS(과제중심제도), 과도하게 수직적인 문화와 제도, R&R(역할과 책임)을 되돌아보게 된다. 여기에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현직(당시) 기관장 간 갈등.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의 본부장 인사,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공금 유용 사례 등등도 떠오른다. 

과학계는 오래된 문제에 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을까. 왜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다. 우선은 기득권층에서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이 보인다. 또 내 문제가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 이기심, 누군가 하겠지하는 의타심도 엿보인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산업발전을 목적으로 수직적, 탑다운의 정책으로 시작됐다. 연구자들은 정부의 출연금으로 연구하고 성과는 그대로 산업계에 적용됐다. 힘들여 마케팅에 나서고 협력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하지만 산업계의 역량이 높아지며 국가연구기관의 역할에 변화가 요구됐다. 그러면서 제도들이 생겨나고 현장에 그대로 적용됐다. 일부에서는 PBS 등으로 실리를 취하며 어려움의 목소리는 모아지지 못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하겠지 하며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도 있다. 

굳어진 제도, 수직적 문화 속에서 항우연 사태같은 일이 발생했다고 현장 연구자는 진단한다. 연구자 간 연구에 집중하는 문화가 조성되기보다 기득권을 움켜쥐려 하면서 연구 현장의 갈등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기성 정치인들이 연륜, 통합 등을 앞세우며 젊은 후보를 비난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인사 조항도 들여다 보자.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은 대부분 과학선진국으로 알려진 미국, 독일의 사례를 모방한다. 국내 연구개발정책 대부분이 미국의 사례를 본따고 기초과학 지원을 위한 IBS(기초과학연구원)는 독일 사례를 도입해 왔다. 그런데 기관장 제도는 여전히 나이, 서열을 중시한다. 해외 연구기관이 30대, 40대 수장을 선발해 60, 70까지 정년을 보장하며 과학기술 연구 방향을 잡아가는 것과 달리 국내는 퇴임했거나 퇴임을 앞둔 인사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한다. 3년 단임으로 임기를 마치며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그야말로 주인없는 곳이 됐다. 과학계 기관장은 보신용 자리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올라온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본부장 공고를 보자. 15년 이상 근무한 자를 지원 자격 조항에 넣어 놓았다(일부에서는 부원장 이상이 포함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연구 현장의 경우 박사,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출연연에 오게 된다(예전에는 석사만 마치고 온 경우도 많았다). 그럼 아무리 빨라도 30대 중 후반이 넘어야 오게 된다. 15년 이상 근무 조항에 맞추려면 적어도 50대를 훌쩍 넘겨야 가능하다. 지금 이대로라면 한국의 과학계에서는 젊은 인재의 활약을 영영 볼 수 없는 구조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학기술분야 과제 선정, 평가, 기관 평가시 선임되는 위원들도 박사학위와 프로필 위주로 선정하는게 대부분이다. 그 분야에 적합한 전문가인지는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비전문가가 평가단에 포함되면서 기관의 특성과 거리가 먼 평가결과를 남기는 웃지못할 사례도 나온다. 이번 KISTEP 사례에서도 '품앗이 방식'으로 전문가를 선정하고 활동비를 챙겨준다는 낡은 행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로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반복된다. 과학계도 이준석 돌풍이 필요한 이유다.

◆ 과학계의 이준석은?

내년이면 20대 대선이 치러진다. 최근 대선 주자로 나선 정치인들이 과학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과학계 현장을 찾는일도 많아졌다. 과학계 내부에서는 거버넌스 문제도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다.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과학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한 연구자는 더 이상 물리적, 형태적 거버넌스로는 답이 없다고 단정한다. 지금처럼 젊은 인재가 활약할 수 없는 구조로는 물리적 조직개편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미다. 과학계도 이준석처럼 젊은 인재가 바람을 일으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거버넌스 개편 논의보다 기관장 선임 시 30, 40대 할당제는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물론 할당제만으로 젊은 과학자가 제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연구자들 간 익숙함, 이기심 대신 미래주역인 젊은 연구자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젊은 연구자도 문제를 회피하는 대신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준비하며 기회를 만드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혼자 할 수 없다면 같은 생각을 가진 연구자간 힘을 모으는 지혜도 요구된다.  더 이상 모래알 같은 과학계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도록 연구자들 스스로도 치열하게 부딪혀야 할 것이다.

국내 과학계는 KIST 설립시기인 1966년을 기준으로 55주년을 넘었다. 머지않아 60주년을 맞게 된다. 대덕연구단지는 1973년 건설기본계획 확정기점으로 내후년이면 50주년을 맞는다. 과학선진국에 비하면 길지 않지만 성숙된 변화의 기점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미래 세대를 위해 오늘의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할 중요한 시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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