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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이민화上]시대사명 선두에서 불태웠던 66년

자신보다 공동체···의료·벤처 생태계 기틀 닦아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도전 정신만이 살길"
"세계시장, 기업 간 경쟁 아닌 생태계 간 경쟁"
이민화는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을 기업 이념으로 삼고 '불가능에 대한 도전정신'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지원한다는 기업가정신의 필요성을 피력해왔다. 그가 창업한 메디슨에선 직원 300명 중 사장 100명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이민화는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을 기업 이념으로 삼고 '불가능에 대한 도전정신'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지원한다는 기업가정신의 필요성을 피력해왔다. 그가 창업한 메디슨에선 직원 300명 중 사장 100명이 쏟아져 나왔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대덕넷은 지난달 3일 영면한 故 이민화 회장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았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공동체를 우선시 여겼고,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개척자였습니다. 시대를 앞서 보며 끊임없이 미래를 그렸습니다. 고인의 정신을 계승해 고인이 꿈꿨던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독자 여러분께 두 편의 기사를 전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1990년 여름 저녁. 메디슨 지정 호프집에선 직원들이 맥주잔을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타 부서 직원과 인사를 하고 합석해 얘기를 나눴다. 영업부 직원은 병원 관계자를 불러 초음파 진단기를 세일즈 했다. 직원 누구든 공짜로 술을 마시고, 일면식도 없던 이들과 얘기를 나누던 곳이 메디슨 지정 호프집이었다. 이민화는 개방과 소통을 통해 자연스러운 연결을 만들었다. 연결 속에서 생태계가 구축되고, 창조가 만들어진다는 취지에서다. 

메디슨은 살아 움직이는 회사였다. 1985년 7월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로 시작해 창업 5년 만에 국내 시장을 석권하고, 이후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상용화해 경쟁사인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를 따돌렸다. 1996년 1월에는 코스피(한국거래소)에 입성했다. 2000년 초 유가증권 평가액은 1조 5000억원에 다다랐다. 없던 기술로 세계를 개척하기 위한 승부수는 개개인의 '도전정신'이었다. 메디슨 역사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역사다.  

이민화는 시대를 앞서봤다. 단순한 샐러리맨이 아닌 도전적 개인이 모여, 벤처를 만들고 이들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가 강조한 '초(超)생명기업'이다. 이민화는 줄곧 "전 세계는 단일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 생태계 간 경쟁으로 변화했다. 아무리 뛰어난 기업도 공룡처럼 거대해지면 반드시 비효율적이게 된다. 따라서 기업도 끊임없는 자기증식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메디슨에선 직원 300명 중 사장 100명이 쏟아져 나왔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메디슨 사내벤처로 메디페이스를 창업했던 최승욱 아이알엠 대표는 "메디슨에선 기술이 있고, 한 팀에 10명만 되면 독립을 하라고 했다"며 "메디페이스는 내부 인원 4명이 외부와 합작해 독립한 경우다. 고인은 느슨한 연대를 강조했고, 의료산업 분야에서 연합 전선을 구축해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메디슨으로부터의 독립은 고립이 아니고 협력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 공동 이익 위해 희생할 줄 알던, 이민화

이민화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은 많다. 그중 원칙에 충실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세상에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은 나의 평생 나침반이 되었다." 그가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했던 이유도 이러한 유년시절 교육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 지인들은 이민화를 "자신보다 남을 생각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공공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사진은 오른쪽부터 이민화, 부친, 형.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이민화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은 많다. 그중 원칙에 충실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세상에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은 나의 평생 나침반이 되었다." 그가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했던 이유도 이러한 유년시절 교육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 지인들은 이민화를 "자신보다 남을 생각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공공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사진은 오른쪽부터 이민화, 부친, 형.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이민화는 어린 시절부터 도전정신과 공동체 의식이 남달랐다. 부친 영향을 받았다. 군인이면서 곡사포 개발 과학자인 부친을 도와 포 초기속도를 계산하고, 손으로 물건 만드는 일에 익숙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된 배경도 이러한 유년 시절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부친은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강조했다. 이민화는 생전 "세상에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부친의 가르침은 나의 평생 나침반이 됐다"고 했다. 그 영향을 받은 이민화는 지인들로부터 "자신보다 남을 생각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공공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2002년 메디슨 부도는 이민화가 공공의 이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보여준다. 배종태 KAIST 교수는 "2000년 말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유가증권 평가액 1조 5000억원에 달하던 메디슨 주식 보유 가치는 10분의 1로 하락하고, 이와는 별개로 부채는 3600억원으로 불어났다"면서 "참모진은 이민화 대표에게 거품이 꺼지기 전 코스닥에 상장된 자회사 지분 일부를 처분해 부채를 갚으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따르지 않았다. 1조 5000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 경우 코스닥의 소액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민화의 메디슨 이야기는 의료산업과 벤처 역사로 이어진다. 없던 기술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부딪히던 이민화는 본능적으로 공동체의 필요성과 상생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1995년 12월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5년 봉직한다. 벤처기업 투자 촉진을 위해 1996년 코스닥 설립을 주도하고, 1997년 벤처기업 육성을 촉진하고자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 제정에 기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1년에는 디지털 의료 서비스·제품을 만드는 기업들과 연합해 병원을 통째로 수출하고자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을 설립하기도 했다.

◆ 이민화 "도전정신만이 살길"

척박했던 의료산업 토양에서 그는 세계 시장으로 나아간 '개척자'였다.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경쟁사인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를 따돌렸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척박했던 의료산업 토양에서 그는 세계 시장으로 나아간 '개척자'였다.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경쟁사인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를 따돌렸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1986년 7월, 이민화는 첫 창립기념일을 앞두고 '메디슨 기업 이념'이란 문구를 썼다. 그 옆으로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을 적었다. 척박했던 의료 산업 토양에서 그는 세계 시장 개척을 꿈꿨다. 이전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선 '불가능에 대한 도전정신'을 고취시키는 일밖에 없다고 정의했다. 

이민화는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지원하고자 '폭의 관리'를 강조했다. 폭의 관리는 상한선 또는 하한선만을 통제할 뿐 나머지는 자율에 맡기는 관리다. 그는 "선의 관리는 철저한 교육, 세심한 통제에 의해 빈틈없이 관리함을 의미한다. 선의 관리 방식으로는 실패를 줄일 수 있지만, 새로운 경험과 이를 통한 학습을 할 수 없고 직원의 역량을 강화할 수 없다. 폭의 관리에서는 도전과 학습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늘 강조했다.

메디슨은 기업가를 키우는 기업이었다.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불확실한 목표를 설정하고, 기업가처럼 행동하도록 했다. 개인은 도전과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조직은 지원했다. 개인은 도전을 통해 자아실현과 역량을 쌓아가고,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메디슨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메디다스, 메디코아, 메디페이스, 유비케어 등 30여 개 회사를 배출하고, 이후 손자 회사 등이 나오면서 100개 이상의 자회사가 생겼다. 

메디슨 공동 창업자였던 조영신 메디코아 대표는 "메디슨에선 도전을 장려하기 위해 실패에 대한 지원을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지만, 모든 실패를 지원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도전이 없는 실패, 반복되는 실패, 학습이 없는 실패는 지원하지 않았다. 이전에 없던 기술을 만들기 위해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계획, 목표를 세우도록 했고 이를 격려하는 분위기에서 수많은 벤처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화는 1990년대 후반 본인이 작성한 '메디슨 기업 이념'에 이러한 문구를 썼다. "1985년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을 꿈꾸며 멋모르고 세계에 부딪치면서 얻은 깨달음은 도전의 기업가정신만이 승부수라는 것이다. 메디슨맨 누구나 메디슨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사장이 되겠다는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구성원은 기술적으로 업계 1인자가 되기 위해 부단한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회사는 구성원들의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지원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을 추격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최대치에 달했다면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익숙한 길을 벗어나 없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시대를 진단한다. 지금이야말로 '이민화 정신'이 가장 절실한 때가 아닐까.
 
◆ 이민화의 66년

1993년 창립 8주년을 맞던 시기.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1993년 창립 8주년을 맞던 시기.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이민화는 KAIST 초음파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이전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경쟁사가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던 중 이민화는 연구실에서 같이 연구한 이들에게 "아무도 안 하면 우리가 직접하자"며 창업을 독려했고, 1985년 7월 메디슨을 창업했다. 메디슨 창업은 초음파 진단기 기술개발을 넘어 의료 산업, 벤처 역사의 시작점이 됐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이민화는 KAIST 초음파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을 이전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거절 당했다. 경쟁사가 미국 GE,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던 중 이민화는 연구실에서 같이 연구한 이들에게 "아무도 안 하면 우리가 직접하자"며 창업을 독려했고, 1985년 7월 메디슨을 창업했다. 메디슨 창업은 초음파 진단기 기술개발을 넘어 의료 산업, 벤처 역사의 시작점이 됐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1953년 12월 8일 대구 출생
1969년 3월 ~ 1972년 2월 서울 중앙고등학교
1972년 3월 ~ 1976년 2월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1976년 3월 ~ 1978년 2월 KAIST 전기및전자공학 석사
1978년 3월 ~ 1982년 3월 대한전선 연구원
1982년 3월 ~ 1986년 2월 KAIST 전기및전자공학 박사 (초음파연구실)
1985년 7월 ~ 2001년 10월 국내 1세대 벤처기업 메디슨 설립, 대표이사
*MEDISON(메디슨)=MEDIcal(의료용) + SONics(초음파)
1991년 4월 제1회 벤처기업 대상
1995년 5월 ~ 2000년 3월 사법개혁위원회 위원
1995년 12월 ~ 2000년 2월 벤처기업협회 설립, 초대회장
1996년 1월 메디슨 코스피 상장
1996년 7월 코스닥 설립 주도
1997년 2월 IR52 장영실상 수상
1997년 8월 벤처기업육성에관한특별조치법 제정 기여
1997년 12월 금탑산업훈장 수상
1998년 4월 ~ 2000년 3월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1999년 12월 1억불 수출의 탑 수상
1999년 6월 아시아 밀레니엄리더 20인 선정
2006년 6월 ~ 2009년 5월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
2006년 12월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 선정
2008년 10월 유라시안네트워크 이사장
2009년 7월 ~ 2010년 11월 기업호민관(중소기업옴부즈만, 규제개혁)
2009년 6월 KAIST 초빙 교수, KAIST IP영재기업인교육원 자문위원장
2010년 12월 '한국의 100대 기술인' 선정
2011년 2월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설립, 이사장
2013년 7월 창조경제연구회 설립, 이사장
2015년 8월 '한국 경제를 일으킨 기업인 70인' 선정
2019년 8월 3일 별세

​*도룡벤처포럼, KAIST 창업원, 대덕넷이 오는 19일 오후 6시 30분부터 KAIST 본원 이민화홀에서 故이민화 회장의 추모 모임을 거행합니다. 고인의 정신과 넋을 기리고 싶은 분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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