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보영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위원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지난해에 이어 사스코로바이러스-2(SARS-CoV-2)의 과학적 이해와 극복 방안 모색을 위한 '코로나19 과학 리포트 2'를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최근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이러스 변이와 백신‧치료제 개발 관련 연구동향과 쟁점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IBS 과학자들과 국내 전문가들이 전달하는 최전선의 지식과 정보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 종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 과학 리포트2 바로가기> |
◆ 코로나19가 유발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코로나19 감염 두려움 때문에 딸의 결혼식에서 받은 축의금을 모두 세탁기에 돌린 아버지의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아버지의 '돈 세탁'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주변인의 확진 소식 속에서 정신적 피로가 많이 쌓였을 것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오랫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동물 모델을 이용해 공포기억의 생성과 억제를 주제로 연구해왔다. 트라우마로도 불리는 PTSD는 자연 재해, 사고, 전쟁 등 심각한 외상적 사건을 경험했거나 목격한 후 발생하는 정신질환이다(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외상적 사건을 경험한 4명 중 1명 정도는 현저한 건강 및 사회적 기능 장애를 보인다는 통계가 있다. 사건에 노출되면 즉각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며 증상이 완화된다. 이중 소수만이 증상이 장기 지속되는 장애로 발전한다.
2018년 7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일본)의 PTSD 발병 현황과 향후 전망을 분석한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에 따르면 매년 PTSD 발병률은 지속 증가해왔으며,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예상된다(그림1). 코로나19 이전에도 PTSD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었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한 사스와 메르스는 모두 발병 1년 이내에 상황이 종료됐다. 하지만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발병 후 현재까지 종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빠른 속도로 백신이 개발 및 보급됐지만,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일일 사망자의 수는 12,978(5월 27일 기준)명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발생하는 정신질환은 다른 전염병보다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약리학연구소(IRCCS) 연구진은 코로나19 감염 후 산 라파엘레 병원에서 치료를 마친 환자 402명의 정신질환을 한 달간 추적 검사했다. 그 결과, 28% 환자들이 PTSD 증상을 보였으며, 31% 환자에서 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불안감과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도 각각 42%, 40%에 달했다(Mazza et al., 2020).
국내 연구의 결론도 유사하다. 서울대병원 연구진은 코로나19 환자 10명의 정신질환을 회복 1개월 뒤에 조사하여 한국의학연구원(JKMS)에 투고했다. 그 결과, 50%는 치료 기간 동안 우울증이 있었고, 10%는 회복 1개월이 지난 시점까지도 우울증과 PTSD를 겪고 있었다. 특히 40%는 코로나19 '감염 이력'으로 인해 이웃으로부터 차별을 당할까봐 걱정된다고 답했다(Park et al., 2020). 이 같은 국내외 연구결과들은 많은 환자들이 육체적 회복 후에도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 의료 종사자의 PTSD는 더 심각
PTSD에 고통받는 것은 환자뿐만이 아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 연구진은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의료 종사자들의 PTSD 발병률(28.9%)이 환자보다도 더 높으며, 특히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직접 담당하는 이들의 발병률이 가장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Johnson et al., 2020). 의료진 중에서도 간호사들이 더 심한 정신과적 증상과 더 나쁜 수면의 질을 보인다는 연구결과 (Kwon et al., 2020)도 있다. 조선대 연구진은 격리병동을 운영하는 국내 세 곳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3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중 36.7%가 PTSD 발병 위험 수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Moon et al., 2021).
더 큰 문제는 PTSD가 환자와 의료 종사자들을 넘어 주변인들에게까지 번진다는 것이다. 중국 연구진은 소수 확진자와 다수 일반인을 포함해 총 2,091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태를 측정했다. 그 결과, 여성과 감염 위험이 높은 사람들(밀접접촉자, 코로나19 유행 지역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사람) 그리고 수면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PTSD 발병과 높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Sun et al., 2021).
아래의 그림3에서 보듯, 연구진은 PCL-5점수를 통해 PTSD 중증의 정도를 분석했다. PCL-5 는 PTSD Checklist for DSM-5의 약자로 PTSD 증상을 측정하기 위한 20문항 자기보고 설문지를 의미한다. 분석 결과, 설문조사가 시행되기 2주 이내에 코로나19 유행 지역인 우한을 방문하거나 방문자와 접촉한 사람의 PTSD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진자나 밀접접촉자와 접촉한 감염 고위험군은 상대적으로 PTSD 중증도가 확연히 높았다. 이는 일반인들도 코로나19로 인한 PTSD를 겪을 수 있으며, 밀접 접촉 등으로 감염 위험이 높아졌을 때는 PTSD 증상도 더 심해짐을 보여준다. '나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심각해지면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 PTSD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
미국 국립PTSD센터(National Center for PTSD)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7% 정도가 살아가면서 PTSD 진단을 받는다. PTSD 발병률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며, 앞서 살펴본 연구들처럼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는 높게는 30% 이상이 PTSD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치료제 개발이 진행 중이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PTSD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치료한다.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심리치료에는 장시간 노출(Prolonged Exposure), 인지처리요법(Cognitive Processing Therapy), 안구 운동 둔감화 및 재처리(EMDR‧Eye Movement Desensitization and Reprocessing)과 같은 방식이 있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은 EMDR 치료요법의 효과를 세계 최초로 동물실험으로 입증하고, 관련된 새로운 뇌 회로를 발견한 성과를 2019년 네이처(Nature)에 보고한 바 있다(Baek et al., 2019).
코로나19 인포포비아(infophobia)라는 신조어가 있다. 그만큼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심각한 코로나19 상황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심리상태에 악영향을 미친다.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PTSD의 직접적인 치료제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되겠지만 PTSD와 같은 마음의 상처는 훨씬 더 깊고 오래 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방역과 치료에만 전념했다면, 앞으로는 정신질환에도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 필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코로나19 '마음 방역'에 일조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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