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과학자 재창출 기획 ②]58세 창업, 시가총액 688억원으로 김완주 박사
연구실 경험 '안전'으로 녹여 은퇴 후 인생 직접 설계 김영만 박사
어려움 컸지만 기술 자신감, 새로운 길 개척하며 제2인생 성공적으로
"사회로부터 고경력자 인정? 연구자 스스로 노력해야"

"연구원 정년 후 연금 받으며 사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좋은 연구 아이템만 있다면 창업에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일반 직장인이 모을 수 없는 자산을 손에 쥘 수도 있으니까요. 많은 연구자가 창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연연 출신들이 활약했으면 좋겠고, 그 무대가 대덕이길 늘 바랍니다."

출연연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연구소를 뛰쳐나와 바이오벤처를 창업한 연구자가 있다. 1세대 바이오벤처 선두기업 씨트리(현 HLB)를 창업한 김완주 박사다. 1998년 당시 58세 나이로 신약개발을 꿈꾸며 연구소 동료 4명과 함께 창업한 그는 출연연 출신 중에서도 성공한 CEO로 꼽힌다. 올해로 만 78세. 약 20여년간 회사를 경영해온 그는 지난해 11월 씨트리 보유 주식을 메디포럼에 모두 넘기며 경영에 손을 뗐다. 그가 최대 주주로 있던 지난해 씨트리 시가총액은 688억원이었다.

김 박사는 독일 유학과 연구생활 후 1977년 귀국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화학연구소 의학연구부장으로 연구생활 중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내 제약기업이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모조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54세 청년 김 박사는 연구소에 사표를 던지고 세상으로 나왔다. 

58세에 바이오기업 '씨트리'를 창업한 김완주 박사. 그는  "많은 연구자가 창업했으면 좋겠다. 출연연 출신들이 활약했으면 좋겠고, 그 무대가 대덕이길 늘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완주 박사]
58세에 바이오기업 '씨트리'를 창업한 김완주 박사. 그는  "많은 연구자가 창업했으면 좋겠다. 출연연 출신들이 활약했으면 좋겠고, 그 무대가 대덕이길 늘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완주 박사]

 

지금이야 50대를 당당히 청년이라 부르지만 20년 전 분위기는 달랐다. 늦은 나이 창업 소식에 주변의 만류가 컸다. 김 박사 자신도 창업은 처음이라 두려움도 앞섰다. 회사 경험이 필요했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곳은 연구소에서 연을 맺었던 한미약품이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다국적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개량제법을 수출했는데 그 주역 중 한 명이 김 박사였다.(기술수출로 받은 성과보수는 향후 씨트리 종잣돈이 됐다) 그는 한미약품 부사장으로 근무하며 바이오연구실을 처음으로 만들면서 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영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4년 후 준비가 됐다고 느낀 김 박사는 화학연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원 4명과 함께 용인의 명지대학교 실험실을 하나 빌려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쟁이었다. 신약개발을 위해 열심히 연구했지만 들어오는 돈이 없어 자금이 부족했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회사들이 견디지 못해 무너졌던 순간이었지만 그는 기회로 삼았다. 신문에서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이 한국에 설립했던 공장을 팔고 생산을 접겠다는 기사를 본 것. 그는 무작정 바이엘 한국지사에 연락해 지사장과 만남을 시도했다. 

공장을 넘겨달라는 제안에 바이엘 측은 처음에 어리둥절했지만 오랜 대화 끝에 저렴한 가격에 넘겼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김 박사도 학교연구실을 넘어 제대로 된 제약회사를 하나 갖게 된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가 IMF 극복을 위해 벤처를 키워드로 다양한 육성정책을 쏟아내며 투자를 받았다. 그렇게 생산설비까지 확보한 김 박사는 R&D를 통해 치매와 파킨슨병 등 퇴행성 노인질환 치료제와 척수소뇌변성증 관련 신약을 개발하는 등 펩타이드 전문 바이오·제약기업으로 씨트리를 성장시켰다. 

회사 경영과 R&D에 집중하면서도 그는 여러 바이오인들과 바이오벤처협회를 만들어 후배들의 창업을 독려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세계화를 위한 컨설팅과 연구만 하던 회사들이 어떻게 제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지 자문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여 년을 출연연에서, 또 20여 년을 경영인으로 살아온 그는 씨트리를 메디포럼제약에 약 206억에 인계했다. 현재는 회사 경영에 손을 떼고 남양주시에서 은퇴 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화학연 동문회장으로도 활동하며 대전을 자주 오간다는 그는 "기회가 좋은 만큼 안정된 직장에 안주하지 말고 창업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연구자들 창업을 장려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지원은 충분하니 이제는 연구자들이 나설 때"라며 "연구소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아이템을 꼭 가져라"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과거엔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 영웅이 됐지만. 이제는 사람을 많이 살리는 사람이 영웅이 돼야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신약개발"이라며 "여기에 창업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은 대전뿐이다. 대덕연구단지의 많은 연구자가 창업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연구실 안전관리 중요성 강조한 과학자, 은퇴 후 제2인생 설계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출연연 은퇴 후 전국의 연구실 안전관리를 도맡으며 바쁘게 지내는 과학자도 있다. 김영만 박사다. KIST에서 은퇴한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 도입에 기여한 연구자 중 한 명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연구실의 안전관리를 위해 제주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년에 40회 이상씩 전국을 돌며 연구자들의 인생 설계를 위한 강의 등으로 더 바쁜 날을 보냈다. 

김영만 박사는 전국의 연구실 안전관리를 도맡아하고 있다. 과기부의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사진=김지영 기자]
김영만 박사는 전국의 연구실 안전관리를 도맡아하고 있다. 과기부의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사진=김지영 기자]

김 박사에 따르면 과거 KIST 실험실 안전관리는 행정부서에서 일부 맡았지만 화학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위험한 시약들을 관리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화학·화공을 전공자로 평소 실험실 안전에 관심이 많던 그는 실험실 안전진단에 자진해 동행하며 안전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언을하기 시작했다. 신입연구원들에도 시약이 흘렀을 때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 등 소소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실제로 연구실 사고가 눈에 띄게 줄자 안전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야겠다고 느꼈다. 한국인정기구(KOLAS)에서 국가표준제도 확립과 산업표준화제도 등을 위해 다양한 인증제도를 만드는 것처럼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를 만들어 실험실 안전도 국제적으로 인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2012년 김영만 박사를 책임연구자로 총 5명의 연구자가 우수연구실 인증제 도입방안과 심사기준, 추진방안을 마련했다. 시범사업에서 반응이 좋자 과기부가 정식으로 인증하는 사업이 됐다. 2013년 16개 연구실이 인증을 받았고 다음 해에는 24개, 그다음 해에는 36개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만 약 150개 기관이 인증을 받았다. 우리 학교가, 우리 연구실이 인증을 받았다고 보도자료를 쏟아내며 자랑하는 기관도 늘어났다. 김 박사도 그만큼 바빠졌다. 

인증제는 안전한 연구실 문화를 정착하는데도 기여했지만 고경력 연구자들의 일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연구실 특성에 맞는 3~4명 대부분이 고경력과학자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은퇴를 준비 중인 고경력 과학자들에게 그는 안전관리위원이라는 직업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김 박사는 "연구실 안전과 관련된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연구현장에서 보고 느낀 노하우와 경험을 안전과 결부시켜 그 분야의 안전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관리 우수연구실 인증제'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증받는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금도 시간 날 때마다 연구실 동료들과 만나 인증제의 시스템 개선을 위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전문분야를 살려 인생이모작에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온실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실패를 한 사례도 적지 않다. 기업 경험과 금융 지식 없이 무작정 창업을 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퇴직 후 기업으로 갔지만, 연구소 문화에 익숙한 연구자와 기업 간 눈높이가 달라 R&D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다. 창업 한 후배들에게 기술고문으로 이름을 올려달라 부탁해 정부지원금만 타가는 경우도 있다.

출연연 은퇴 후 기업을 운영 중인 P박사는 "선배들이 기술고문으로 이름만 올려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이라 회사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제대로 기술이나 비결이 전수되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적지않다"고 토로했다. 

과학자의 창업이나 은퇴 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다양한 시스템이 운영 중이지만 실패를 줄이기 위해 연구자 자신도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연말 개인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논문만 쓰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연구 열정이 그런 쪽으로 흘러가 버리면 누가 그 연구자를 고경력자로 인정해줄까. 누군가가 데려가주길 바라지만 말고 우리 스스로 정말 필요한 연구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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