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최문기·곽지혜 7일 '과학의 달' 특별 좌담
철학자의 제언 "과학은 원리, 원리 구현이 기술"
"한국은 기술강국, 이젠 과학화의 길로 나아가야"
"과학자, 연구서 '왜'라는 질문 던져야 결과 달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상하는 능력이 과학 정신"
"나를 넘어 시대문제 본다는 '시각 확장' 의미 커"

지난 7일 대덕넷이 주최한 '과학과 철학의 만남' 특별좌담회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곽지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장,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대담을 나눴다. [사진=김효원 기자]
지난 7일 대덕넷이 주최한 '과학과 철학의 만남' 특별좌담회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곽지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장,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대담을 나눴다. [사진=김효원 기자]
과학과 철학의 첫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철학자는 과학을 정의하고, 과학자는 연구 활동에 철학적 질문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공통점을 찾았다. 철학자는 "과학은 원리이고 기술은 원리의 구현"이라며 "기술강국으로서 도달한 발전 높이로 봤을 때 과학화·철학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과학자는 연구 활동에 철학적 질문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지난 7일 대덕넷은 '과학의 달' 특별 좌담회에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와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곽지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장을 초청했다. 과학과 철학에 대한 이해로 시작한 좌담회는 철학적 질문 필요성, 지식인 역할 등 자연스레 주제가 확장됐다. 

최진석 교수는 과거에 일군 '기술 강국' 타이틀에 머무르면 도태되고, 과학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술 강국으로서 도달한 높이까지 도달한 만큼, 국가적으로 과학적 성과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 교수가 언급하는 과학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아직 해석되지 않은 세계로 건너가려는 특성을 지닌다고 했다. 이런 과학 정신이 발휘될 때 국가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특히 최 교수는 과학자가 지식인이라는 이야기에 공감하며, 시대가 지닌 문제 자체 보다도 나를 넘어 시대가 아파하는 문제를 보는 시각 확장이 더 의미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뿐만 아니라 누구나 조금 더 위대해지려면 야망, 포부, 꿈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문기 전 장관은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며 일궈낸 TDX(한국형 전전자교환기) 국산화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과학과 기술은 시대를 바꾸는 일이라며 연구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조언했다. 또 미래 문제를 예측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KAIST 글로벌기술사업화센터를 만들어 대전 지역 기업들이 글로벌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중이다.

곽지혜 소장은 연구 현장에서 과학, 기술, 공학을 혼재하고 있다며 각 영역을 특화할 수 있는 정책 조정 능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자 대다수가 기초-응용-상용화 등 각 분야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이 다른 만큼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날 좌담회는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됐다. 사회는 이석봉 대덕넷 대표가 맡아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아래는 좌담회 전문.
 
Q. 과학자로서 철학에 관심이 있으신지, 철학자로서 과학에 관심이 있으신지 이야기를 시작해본다면.

▲ 곽지혜 = 과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박사 학위를 지칭하는 PhD(Doctor of Philosophy)에 철학이라는 단어가 있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전부 철학을 근간에 두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옛날 과학자들도 철학과 예술을 했고 학문의 근원이 같다고 생각한다. 고전 철학까진 아니지만 대학 시절 철학 수업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연구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그게 철학하고 연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수단이 아니고 왜 하는지 생각해보는 과정이 있다. 그게 전부 철학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 최진석 = 말씀하신 대로 왜 그런지를 묻는 것, 철학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철학적으로만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니라 모든 지적 활동에 제일 중요한 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다. 왜라는 질문은 철학에서 주로 다루는 것 같지만, 모든 지적 활동에서 반드시 물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철학과 과학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높이에 있느냐인 것 같다. 

과학. 기술보다는 높은 단계의 과학을 말한다면, 과학이나 철학은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높은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적, 철학적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저는 관심을 많이 갖는다. 

Q. 세계를 관리하고 통제한다는 표현을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통제를 조금 더 설명한다면. 

▲ 최진석 = 우리는 시선이 높아지고 높아지고 높아지는 과정을 '추상'이라고 한다. 추상적인 단계. 학계에선 수학을 이공계 영역으로 본다. 수학이 과학 중에선 가장 추상적인 과목이다. 수학보다는 철학이 추상적이다. 통제한다고 할 때 인간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통제 중에서 가장 높은 차원의 통제를 우리가 철학이라고 한다. 시선이 가장 높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가장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철학이 추상적이다 보니 가끔 알맹이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과학적 진보가 채워지지 않은 철학은 가끔 헛소리일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추상적인 사유, 고도의 사유를 하더라도 이것이 시대를 놓치거나 맥락을 놓치거나 헛소리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과학적 성취를 흡수해야 한다. 과학을 연구하는 분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과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들이 어디까지인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굉장히 위험하거나 허무맹랑할 수 있다. 그래서 저는 과학을 중시한다. 

저는 철학과 과학이 활동 방식으로는 같다고 본다. 방법론과 내용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추상적 사유의 높이는 어느 정도 같다고 본다. 서양에서는 16세기 망원경이 발명됐다. 인간이 망원경을 가지면서 감각을 넘어서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과학의 핵심은 저는 감각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의 단계에 있을 때 그걸 기능이나 기술이라고 한다. 

인간한테 가장 큰 도전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아직 해석되지 않은 세계로 건너가려는 일이다. 굉장한 모험이면서 무서운 일이다. 과학적 탐구, 과학적 태도라는 건 결정적으로 무엇과 관련이 있냐면 도전과 관련된다. 과학의 핵심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세계를 펼치는 일이라고 본다.

Q. 과학이란 이전에 없던 파괴적 혁신(breakthrough)을 일궈낸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장 경험을 말씀해주신다면. 

▲ 최문기 = 레벨의 차이는 있겠지만 망원경을 발견한 것과 비슷할 것 같다. 레벨은 낮다고 보여지는데,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TDX(한국형 전전자교환기)를 개발했다. 그 기술 개념은 50~60년 전에 나왔고, 개념을 실현하고 구현한 것이 60년 뒤였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니깐 직접 신호를 처리하는 것이 없고, 잡음이 없고 속도가 빨라졌다. 디지털 시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우리가 인터넷을 보편화해서 쓸 수 있는 시대하고 쓸 수 없었던 시대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다른 세상이다. 인터넷 보편화로 삶을 완전히 달리하는 형태가 아니었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모든 정보를 저장하게 됐다. 반도체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인터넷과 반도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면서 앞장서서 뛰었던 경험이 보람이 있다.

▲ 곽지혜 = 요즘은 과학, 기술, 공학을 혼재하고 있다. 보직자가 될수록 지적 호기심하고는 멀어지고 과학이 사회에 어떻게 쓰일지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연구 현장에선 과학적 발견부터 상용화까지 많은 부분을 요구해서 힘든 부분이 있다. 과학적 발견은 감각을 뛰어넘는 부분이고 철학과 연결된다. 

예컨대 태양전지를 개발할 때 태양광을 좁은 면적에서 잘 활용하려면 한계의 효율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 안에는 사실 광 스펙트럼을 어떤 물질로 조합해야 하느냐부터 시작된다. 진짜 과학적인 레벨이다. 과학적인 레벨부터 상용레벨까지 호기심과 철학적인 고민, 국가적 책무까지 짧은 시간에 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 

Q. 왜라는 질문이 일의 진척을 얼마나 바꾸나. 

▲ 최문기 = 왜 해야 하느냐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연구 결과가 달라진다. 그걸 생각해야 여러 가지 방향으로 전개하고 다음 길이 정해진다. 

▲ 곽지혜 = 왜가 충분하지 않으면 과제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마다 욕망이 다르다. 개인적 호기심을 추구하는 사람은 국가적 사회적으로 동떨어진 경우도 있다. 예컨대 원자를 들여다보는게 흥미로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연구자들은 이전에 없던 발견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네이처, 사이언스에 논문을 내고 싶은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국가적으로 기여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과학적 발견도 필요한데 돈 되는 기술도 필요하고 국가적 목표도 달성해야 한다면 상위 수준에서 매니징해야 한다. 상위 수준에서 매니징되고, 구성원들을 단계별로 나누면 좋겠다. 상위 수준에서 매니징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 최진석 = 호기심을 기반으로 어떤 일관된 의식 활동, 이걸 생각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개입되지 않으면 일정한 방향성이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걸 의식 활동이라고 한다. 우리가 생각이라고 할 때는 방향성, 지속성, 전략적 의식 활동을 말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이다. 철학과 과학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고 인간에게 중요한 점이다. 

호기심이 왜 필요하냐. 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은 불편함을 해소한 결과다. 문제를 해결한 결과다. 과학 선진국, 기술 선진국이라는 말은 불편함과 문제를 먼저 해결했다는 의미다. 과학적이건 기술적이건 심지어 기능적인 문제까지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불편함을 해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먼저 불편함과 문제를 발견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다른 말로 호기심이 발동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으면 과학적 진보나 기술적 진보가 불가능하다. 호기심이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먼저 본 사람들이 정해 놓은 과업을 대신 수행하거나 조금 더 개선하는 일만 할 수 있다. 단순히 과학적 진보나 기술적 진보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자유, 독립성, 풍요로움을 결정 짓는 일이다. 

▲ 최문기 =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 수준이 많이 발전했다. 선도국가 수준으로 넘어가고 있다. 제가 볼 땐 선도국가로 넘어가기 전 단계다. 선도국가는 몇 년 뒤 어떤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미리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과학기술계는 논문 쓰는 일이 주된 일이다. 현재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이다. 미래, 훗날을 생각해서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느냐와 같은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과학기술계와 자원 투입하는 사람들 입장과 연구 결과를 기다리는 시장과 괴리감이 있다.

Q. 호기심, 불편함도 사람의 경험과 사고의 한도 내에서 나오지 않나. 개인차도 있겠다. 

▲ 최진석 = 개인차가 굉장히 많다. 지적 인식 높이가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호기심이 얼마나 과격한가 결정된다. 장관님 말씀하신 대로 자원의 배분과 투입 효과에 대한 문제는 과학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학계도 지배하는 생각 같다. 

그런데 자원 투입과 효과, 실효성에 집착하면 비실효적인 업적들이 막히는 결과들이 생긴다. 실효적이냐 비실효적이냐를 따지는 기준이 있다. 기준은 이미 있는 것이다. 이미 있는 기준을 가지고 실효성, 비실효성을 따지기 때문에 실효성을 너무 과하게 따지면 정해진 기준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일은 어려워진다. 여기에는 굉장한 딜레마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들. 호기심은 단계적으로 발휘된다. 호기심이라는 건 내일부터 호기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해서 발휘되는 게 아니라 이전 단계를 철저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철저한 구현을 통해 어떤 임계점이나 한계들이 보이고, 임계점과 한계가 다시 도전 목표가 된다. 이런 질서 정연한 호기심이 발휘될 수 있을 것 같다. 

▲ 곽지혜 = 대형과제 협업의 측면에선 사람의 개인의 욕망이 잘 모였으면 좋겠다. 연구자들 욕망이 다르다. 원천적 호기심으로 논문을 계속 쓰고 싶은 분이 있다. 그리고 연구 결과를 돈이 되게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가진 분이 있다. 연구 현장에서 개개인의 욕망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적 목표, 개인적 목표가 발휘될 수 있도록 매니징이 잘 돼야 한다. 부처에서 과제를 줄 때도 한 방향으로만 요구해선 안 된다. 

Q. 과학자, 철학자들 모두 지식인이다. 과학자와 철학자가 시대가 지닌 문제나 사회 문제 해결하는 부분에 힘을 합쳐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데 연구 현장을 보면 시대 문제를 생각하는 건 거리가 있어 보인다. 지식인으로서 과학자가 시대 문제를 풀어가는 부분을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나. 

▲ 곽지혜 = 아까 과학 없이 철학 하는 사람들이 헛소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도 어떤 분들은 세상하고 너무 단절돼서 자기 궁금한 것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연구 결과로 나온 결과들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다. 내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면, 시대와 동떨어질 수 있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문가라는 미명 아래 한 부분에만 매몰되는 사례도 있다. 사회와 담을 쌓고 과학을 할 수는 없다. 철학 없이 과학을 할 수 없다. 사회적 어젠다와 연계가 되어야 과학도 호기심에 기반한 발견이든,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최문기 = 우리가 과학자로서 국민 세금을 받아서 일을 해나가는 일은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성과를 내는 일이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고, 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국민들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봐야 한다. 제일 쉬운 예로 미세먼지가 오랫동안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분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결과가 많지 않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주류가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초적인 발견부터 상용화까지 나아가는게 직선적인 방식이다. 그게 효율적이다. 내가 연구한 결과를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자유롭게 하는 부분도 좋은데, 그건 곡선적인 방식이다. 이 방식은 어떤 경우에는 필요한 부분을 해결하지 못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연구하고 발명한다면 국민들에게 필요한 문제, 기업들에게 필요한 연구 하면 좋지 않을까. 짧은 길로 가려는 노력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 최진석 = 우리가 기술적 성과나 기술적 결과를 해내는 일은 지금까지 잘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과학적 성과나 과학적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건 아닌가. 

과학과 기술을 우리가 구분해서 써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기술 강국은 맞다. 기술 강국으로 우리는 충분히 잘 해냈다. 이렇게 기술 발전을 빠르게 시킨 나라가 어디에 있었나. 그런데 기술 강국에만 계속 머무르면 쉽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내는 성과들이 과학적 성과이고 과학적 결과여야만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Q. 과학과 철학은 상호보완 내지는 밀접한 관계로 보인다. 

▲ 최진석 = 우리가 정의를 내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은 철저하게 원리적이다.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지배하는 영역이다. 

철학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현실하고 떨어져 있는 것 같다, 비현실적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대답이 많다. 철학은 알기 어렵고 현실로부터 굉장히 멀리 있다. 그런데 현실로부터 멀리 있을수록 영향력과 통제력이 크다. 더하기 빼기는 현실에 가깝다. 3차 방정식은 현실과 멀다. 더하기 빼기보단 3차 방정식 영향력이 더 크다. 

우리가 기술 영역으로만 살면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효과들이 가장 큰 것 같고 실제적인 것 같다. 그런데 기술을 넘어 과학적 행위를 통해 나온 결과들이나 성취들이 훨씬 크다. 왜냐하면 과학은 기본적으로 원리이고, 기술은 원리의 구현이다. 우리가 어떻게 원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지금 우리한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기술은 어느 정도 도달했다. 기술 다음이 무엇이냐. 기술과 과학을 분리하고 봤을 때 과학, 과학으로 우리가 가야 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아편전쟁 이전에는 동양에 과학이 없었다. 그 말은 과학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는 태도를 갖지 못했다는 의미다. 아편전쟁 이전까지 중국이 세계 총생산량 약 32%를 점유했다. 큰 나라였다. 심지어 34%까지 했다. 굉장히 번성하고 큰 나라였다. 화약, 나침반, 인쇄술, 도자기 등 세계 최초는 어지간하면 중국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것들은 과학이 아니고 기술이다. 인류 문명이 기술의 단계까지 진화했을 때, 중국이 기술적인 높이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했지만 과학의 단계로 진입했을 때 서양을 감당하지 못했다. 

아편전쟁 이후로 서양과 동양이 완전히 승패를 나눈 건 뭐냐. 동양은 과학적 태도, 과학적 해석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적 해석 능력, 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감각을 벗어나 있다. 감각을 벗어나 있는 인식 능력, 이것이 훈련되어 있느냐 아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감각을 벗어난 인식 능력을 동양은 훈련받지 못했고, 서양은 훈련받았다.

최초의 과학적 인식 능력의 훈련은 기하학이에에요. 그런데 동양은 기하학이 발전하지 않았어요. 연산대수까지 발전했어요. 연산대수보다는 기하학이 훨씬 멀리 있어요. 그러니깐 우리한테, 과학적 세계관을 습득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적 활동, 이것을 훈련받지 못했다는 것. 기하학, 보이고 만져지지 않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지적 정력을 쏟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깐 우리는 우리가 도달한 발전 높이로 봤을 때, 우리는 이제 과학화, 철학화의 길로 나아가는 도전할 필요가 있다. 
 
Q. 우리가 여전히 감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시대 문제라고 볼 때 지방 소멸 얘기가 나온다. 지방 소멸은 서울 사람한테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의사결정권자는 대개 서울에 있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감각을 뛰어넘어서 한국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고 현안이 어떻다라는 진단이 나와야 하는데 부족하다. 지식인의 책무가 시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지식인들 대부분이 서울에 있고, 대전에 있는 지식인들이라고 볼 수 있는 과학자 분들은 내 것만 한다. 그러다 보니 시대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과학자와 철학자가 힘을 모아서 원리를 찾아보면 어떤가.

▲ 최진석 = 지식인. 우리는 지식인의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 자기가 하는 전공 분야, 전문가를 넘어서는 어떤 지식인. 저는 지식인에 대한 태도,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건 지식인은 자기한테 필요한 걸 찾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가 아파하는 병을 함께 아파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덤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자가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냐면. 사회 전반이 지닌 문제나 해결 욕구, 이것을 구체적인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벗어난 어떤 대상을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그 높이, 내지는 그 넓이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깐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사회가 가진 특정한 문제, 어떤 문제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벗어나서 그것까지 넘어서 보는 지적인 활동성을 가진다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최문기 = 지극히 당연한 말씀이고 공감한다. 제가 하는 일이 이제까지 R&D는 몇십 년을 해봤다. 그걸 하는 과정에서 저는 33년을 대전에 살았다. 아무도 저보고 대전사람이라고 인식을 안 한다. 그런데 있어 보니깐 그런 문제점이 나타난다. 대전은 산업이 약하다. 근래 와서 산업을 키우자는 분들이 욕망들이 커지니깐 조금 기업들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이 성장하면 대전에 안 있고 서울로 옮겨간다. 

서울로 옮겨가는 요인들이 뭐냐. 당연히 스타트업에서 물건 만들어서 상품을 팔 때 수요자가 많은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가면 기술과 시장에 대한 정보가 많아서 집값 비싸도 옮겨간다. 

제가 본 포인트는 왜 국내시장만 봐야 하느냐였다. 이제는 달라졌다. 사실 세계 시장이 우리 시장이다. 국내 시장보다 세계 시장이 훨씬 크다. 거기로 나아갈 수 있으면 구태여 서울로 옮겨갈 필요가 없다. 사실 대전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서울 가서도 어떤 정보 소스를 찾아가기 힘든데, 해외의 정보 소스를 찾는 건 쉽겠나. 언어적인 문제가 있는데, 어렵다. 

그래서 제 마지막 일인 것 같은데, 대전지역 산업에서 역할을 해야겠다. KAIST에 글로벌 기술사업화센터를 만들었다. 7년 됐다. 산업체 쪽에서 요구가 많다. 해외에서도 수요가 있다. 그 수요를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우리가 잡아 온다. 물건 생산해달라고 기업한테 얘기할 수 있는 것. 그런 상황에선 기업들이 기술이 없더라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기술을 가지고 와서 기술을 제품 만들어서 연결되는 것이다.  

▲ 곽지혜 = 내 기술에 집착하면 세계정세와 동떨어져 있다. 내 기술 중심으로만 세계를 보게 된다. 전체 시장을 지우고 침소봉대할 수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 기술이 최고, 저 기술이 최고라고 할 때 자기 기술만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다. 우리 연구소, 과학, 국가 차원에서 단위를 높여가면서 생각해야 하지 않나. 

내 것만 내 거라고 보지 말고, 전체적 시각으로 보는 것이 지식인 책무라고 생각한다. 내 기술에 집착하지 않고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시야가 넓어지지 않을까. 과학기술자도 정치권 진출 안 해서 과학기술계 바른 방향 제시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러나 과학기술자들에겐 인문학적 통찰력이 많이 좌시돼 배양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권에 진출해도 정책을 펼치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 최진석 = 방금 말씀하신 인문학적 통찰력. 저는 통찰력은 인문학이나 과학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통찰력은 그냥 통찰력이다. 과학에서 핵심도 통찰력을 어떻게 갖느냐. 

곽 박사께서 '네가 하고 있는 이 주제만 보지마, 더 넓게 봐, 연구소와 대한민국 전체를 봐'라는 말씀을 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본다고 해서 보여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내 연구 주제만 보다가 다른 사람 연구 주제도 보고, 우리 연구소를 보게 하는 것. 그 힘이 무엇이냐. 저는 그것이 야망이라고 생각한다. 야망이자 욕망,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통찰력을 발휘하는 건 무엇이냐. 거기에 대해서 강하게 몰입하고 집착하는 거다. 그것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태도를 갖는 것. 그런 태도를 만들어내는 힘이 무엇이냐. 결국 야망이고 꿈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과학이든 철학이든 지적 활동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포부, 야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과학자, 철학자나 정치인이 됐든 조금 더 위대해지는 방법은 뭐냐. 야망을 갖는 것, 포부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왼쪽부터) 
(왼쪽부터)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곽지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재생에너지연구소장,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사진=김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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