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소비국에서 지식 생산국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과학 예산 100조 시대 과학자들의 연구 인생 철학 기본서

천하흥망 필부유책
: 세상이 흥하고 망하는 것에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염무 중국 사상가).

일신독립, 일가독립, 일국독립
: 개인이 바로 서고, 집안이 바로 서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후쿠자와 유키치 저자 '학문의 권장').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가 5월 3일 출간됐다. [사진=북루덴스 제공]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가 5월 3일 출간됐다. [사진=북루덴스 제공]
국가란 공동체와 구성원인 개인은 상생 관계이다.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개인의 각성과 실천이 그 밑바탕이 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도약의 끝점에 서 있다. 임진왜란 이후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식민지, 분단, 한국 전쟁, 경제개발, 민주화 등등의 온갖 역정을 거치며 패러다임 전환점에 서 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도전점이 그렇듯이 우리는 추락이냐, 도약이냐는 기로에 다시 섰다.

돌이켜 보면 조선조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부터 망국에 이른 1910년까지 3백여년은 쇠락 일변도의 우하향 노정이었다. 식민지를 거쳐 해방이 된 1945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약간의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추세로는 우상향하는 흥국의 여정이었다.

그런데 민주화 원년이라는 1987년으로부터 한 세대가 넘게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존재 자체에 도전을 받고 있다. 취업난에 저출산, 양극화, 외교 고립, 눈덩이 국가 빚 등등 내우외환으로 앞날이 불투명하다. 

이 위기를 잘 넘기면 재도약의 기반이 될 것이고, 발 걸리면 아르헨티나 사례에서 보듯 그저그런 여러나라가 가운데 하나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들 하고 있다.

도약이든 추락이든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몇몇의 리더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사는 한 명 한 명이 다 책임이 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다른 나라가 내 인생에, 우리 운명에 개입하게 만들면 안된다. 특히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는 나라의 명운에 미치는 영향이 큰 존재인만큼 시대에 대해 예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고 장차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 나왔다.

실천 철학자인 최진석 새말새몸짓 이사장이 쓴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이다. 철학이면서 추상적이지 않고, 현실을 논하면서 역사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등 객관성을 취하려 애쓴다.

책머리는 자기 부정에서 빚어진 '몸살'로 시작된다. 평범한 사람도 그렇지만 철학자도 자기 부정은 힘들었던 모양이다. 머리로 생각했던 이상과 몸으로 부딪힌 '날 것' 사이에 큰 간극이 있음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젊은 날, 인생의 새로운 무대로 찾아간 하얼빈에서의 경험을 독백하듯 풀어놓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1990년대 전후는 한국 사회에는 자본주의와 박정희란 통치자에 대해 부정의 시각이 강했다.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에게는 자연히 사회주의와 김일성이란 대체재가 대안으로 상정됐다. 

최진석이란 젊은이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듯 하다. 하얼빈으로 간 것도 전공인 철학을 공부하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대안으로 생각한 사회주의를 보다 알기 위해 간 것일수도 있다. 그곳에서 북한 유학생도 만나고 동포애로 그들과 친해지려 여러 시도도 했다. 하지만 눈으로 본 현실은 이상과 너무나 달랐다. 가난과 감시, 통제. 이 3단어로 그는 사회주의의, 북한 체제의 특징을 요약한다.

생각과 현실의 차이는 사람을 절망하게 한다. 생각하는 것은 사는 것이기에 그것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절감할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부정이다. 현실이 잘못된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이 어디로 가겠는가? 부정 다음에 오는 반응은 좌절이다. 심적 충격을 받으며 의욕을 상실한다.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심하면 우울증이나 현실 도피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좌절은 새로운 현실을 수용하며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수 있다. 장자가 이야기한 나를 장례 지내는 것, 오상아(吾喪我)라고 할까.

하얼빈에 도착한지 100일만에 까닭도 모르는 심한 몸살을 계기로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현실 부정만이 대안이 아니고, 잘못된 점을 정면으로 부딪히며 관찰하고, 개선점을 찾아 수정하는 것이 오히려 훌륭한 해결 방안임을.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는 그러기에 현실 부정에서 출발하지 않고, 내내 우리가 지나온 길에 대한 정확한 관찰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책에는 그가 발표한 글들이 묶여져 있다.

최진석 이사장의 글로 사람들에게 명쾌한 설득력을 지닌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린 '국가란 무엇인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을 혼동하며 무엇이 우선일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처럼 그는 국가가 우선이고, 민족은 그 다음이라고 논리적이면서 감성적으로 설명한다.

또 5.18 특별법으로 여러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할 때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글을 써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 도전이었고, 큰 용기였다. 다른 사람들이 다 침묵하고 있을 때 홀로 광야에서 외쳤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신줄을 잡을 수 있었고, 5.18 관련 유공자 가운데서도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읽기는 현실에 대한 관찰과 비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지향해야할 방향과 목표도 제시한다. 다름 아닌 선도 국가, 혹은 전략 국가. 지식 소비국이 아닌 지식 생산국. 우리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운명을 우리가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인 사람이 돼야한다.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사람들이 많을 때 그 나라는 강한 나라가 된다. 개개인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단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간단하면서 좋은 방법이 독서. 그는 책 읽고 건너가기 운동을 통해 개인의 지적인 태도를 기르자고 말한다. 이 맥락에서 사단법인 새말새몸짓을 세우고 매달 고전을 읽자는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과학예산 100조 시대가 열렸다. 1970년대 불과 12억원이던 연구비가 반세기만에 약 1만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만큼 과학계에 대한 동경과 존경이 커지고, 세계적 연구 결과가 나오는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때 과학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과학자란 어떤 존재이고, 왜 연구를 하고, 연구비를 제공하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보답은 무엇이고, 인류에 기여하는 지식생산이란 무엇일까와 같은 근본적 질문이 아닐까?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뿐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과학자로서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과학자는 지식을 생산하는 존재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이고,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에 지향해야할 목표는 무엇이고,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과학자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관찰하고, 질문하며 내면을 단단하게 해야한다. 이 책은 그 시작점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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